지난달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통위)가 MBC 예능 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하 마리텔)’의 자막이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권고 조치를 내렸다. 방통위의 권고 사항에 따라 마리텔은 권고 이후의 방송에서 초성체 ‘ㅋㅋㅋㅋ’를 ‘크크크크’로 대체하는 등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일각에서는 이런 모습을 두고 ‘교과서 같아졌다’며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초성체 자막이 방송에 처음 등장한 것도 아닌데, 방통위는 왜 이런 결정을 내린걸까? 이에 대해 자칭 ‘글성애자’인 김태현 기자(이하 김)와 맞춤법에 집착하는 ‘과잉교정인간’ 전재영 기자(이하 전)가 이야기를 풀어봤다.

마리텔 방송심의, 애매하다 애매해

전: 평소 맞춤법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조금이라도 헷갈리면 인터넷을 찾아서라도 바른 용어를 사용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내가 보기에도 방통위가 마리텔에 내린 권고 조치는 조금 이상하다. 신조어에 대해 이상하리만치 깐깐하기 때문이다. ‘흑역사’를 왜 ‘어두운 역사’로 고쳐서 내보내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극혐’은 또 왜 ‘극도의 혐오’로 풀어써야 하는가. 이해할 수 없는 권고 사항들이 너무 많다.

김: 전반적으로 동감하는 바다. 그래도 몇몇 권고 사항들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딱 짚어서 이야기하긴 어렵지만 마리텔의 경우 정도가 조금 지나쳤던 점도 있다. ‘미안해’를 소리나는 대로 ‘미아내’로 바꿔 자막에 싣는 등 어문규범을 느슨하게 해 재미를 주는 방식은 이미 ‘무한도전’과 같은 다른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사용하고 있던 방식이다. 다만 마리텔의 경우 방송 내내, 쉬지 않고 이와 같이 어문규범을 파괴하는 자막이 등장한다는 점이 조금 달랐던 것 같다.

전: 딱 짚어서 이야기하기 어려운 이유는 기준이 애매하기 때문인 것 같다. 방송위는 방송 특성상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어문규범을 지키도록 권장하고 있다. 그런데 마리텔처럼 인터넷과 방송의 경계를 허무는 프로그램에서는 어문규범을 느슨하게 적용하는 것이 불가피한 것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힘들다. 이렇게 기준이 애매하다 보니 ‘흑역사’를 ‘어두운 역사’로 고치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검열이 나오는 것 같다.

표준국어대사전,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까

김: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기준이 애매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니 ‘지난달’과 ‘다음 달’이 떠오른다. 기사를 쓰다 보면 참 쓸 일이 많은 단어들인데 ‘지난달’은 표준국어대사전에 하나의 표제어로 오른 합성어이기 때문에 붙여서 쓰는 것이 맞다. 반면 ‘다음 달’은 표준국어대사전에 표제어로 실리지 않았기 때문에 합성어가 아니므로 ‘다음 달’과 같이 띄어서 써야한다. 기준이 참 애매해 올바른 용법을 쓰기가 어렵다.

전: 좋은 지적이다. 최근 ‘미친 국어사전’이라는 책에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을 비판하는 내용이 실렸다. 올바른 국어 사용을 선도해야할 표준국어대사전이 지나치게 부실하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예를 들어 ‘오리알’은 표제어가 아닌데 ‘오리알구이’는 표제어로 실려 있다. ‘오리 알’, ‘오리알구이’와 같이 적는 것이 바른 표기법인 것이다. 이밖에도 ‘내장탕’, ‘심사위원’, ‘머리끈’ 등 일상적으로 한 단어처럼 쓰는 용어들도 ‘내장 탕’, ‘심사 위원’, ‘머리 끈’ 등으로 띄어 적는 것이 올바른 표기법이다. 참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기준이다.

보편타당한 기준이 되어야

김: 방통위나 국립국어원이 올바른 국어 사용의 길잡이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다. 극단적인 이야기긴 하지만 MBC 주말 예능에 욕설이 난무해서야 안 될 일 아니겠는가. 방통위가 마리텔에 내린 권고 조치도 잘못됐다고만 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허술하다고 해서 표준국어대사전을 없애서도 안 될 일이다. 다만 방통위와 국립국어원이 지금보다는 더 보편타당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느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ㅋㅋㅋㅋ’를 방송에서만큼은 꽁꽁 감춰야 한다는 방통위도, ‘심사위원’과 같이 이미 보편적으로 한 단어처럼 쓰이는 말을 하나의 단어로 인정하지 않고 띄어서 쓰라고 권장하는 국립국어원도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전: 맞는 말이다. 기준이 애매한 것은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다 쳐도 좀 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방통위나 국립국어원이 제시하고 있는 기준은 일상생활과 지나치게 동떨어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방통위는 ‘꼰대’라며 인터넷에서 조롱을 받고 표준국어대사전은 ‘미친 국어사전’이라는 꼬리표를 얻은 것 아니겠는가. 신조어나 새로운 용법을 무조건 수용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미 누구나 공감할 만큼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용어나 용법이라면 적어도 이를 반영하려는 노력은 있어야 한다. 자신들의 기준만을 내세우며 전 국민을 모조리 비난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정리_ 전재영 기자 jujaya920@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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