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트리피케이션 안에서 살아남기

“왜 지금, 젠트리피케이션인가?” 지난달 27일 ‘예술가, 젠트리피케이션 그리고 도시재생’을 주제로 열린 제7회 서울시창작공간 국제심포지엄에서 지리학자 이선영(36) 씨는 위와 같은 말로 물꼬를 텄다. 이선영 씨의 물음에서 알 수 있듯 최근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논의가 뜨겁게 진행되고 있다. 회의실 바깥까지 사람들로 북적였던 심포지엄의 모습은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잘 보여준다. 이렇듯 열띤 논의에 발맞춰 서울시도 최근 ‘젠트리피케이션 종합대책(이하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앵커시설, 분위기 조성이 관건

종합대책은 ▲공론화 ▲상생협약 체결 유도 ▲조례 제정 ▲법률 지원단 구성 ▲앵커시설 운영 ▲서울형 장기안심상가 ▲자산화 전략을 7대 사업으로 삼았다. 서울시는 대학로, 인사동, 신촌, 홍대, 합정, 성미산 마을, 세운상가, 성수동, 해방촌, 북촌, 서촌을 종합대책 대상지역으로 설정하여 종합대책을 시범 운영하기로 했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서울시가 가장 많은 예산을 편성한 ‘앵커시설 운영’이다. 앵커시설은 특정 분야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핵심 지원 시설을 의미한다. 서울시는 대상지역의 고유한 문화 및 정체성을 보존하고 지역 예술가·소상공인 등을 지원하기 위한 시설로서 앵커시설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대학로와 인사동에는 앵커시설 운영이 집중될 전망이다. 대학로의 경우 연극인들을 지원하기 위한 앵커시설로서 창작연극연습공간이 조성된다. 또한 300석 미만의 기존 극장 30개소를 서울시가 임차해 연극인들과 공유하는 서울형 창작극장이 들어선다. 인사동에는 공예문화박물관이 건립돼 체험관, 교육장, 판매장 그리고 공방 등이 자리하게 된다.

서울시는 앵커시설 설치에만 다음 해 예산 199억원을 배정했다. 이는 종합대책 항목에 배정된 예산 중 가장 큰 액수지만 대학로, 인사동, 신촌, 홍대, 합정 등 종합대책 대상 지역으로 지정된 지역의 규모를 생각하면 매우 적은 금액이다. 우리대학 도시사회학과 남기범 교수는 “앵커시설의 역할은 젠트리피케이션을 극복하려는 분위기를 이끌어 나가는 것이다. 앵커시설 그 자체만으로 큰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남 교수는 “하지만 다른 분야에서 활용되는 앵커시설의 경우 보통 해당 분야를 선도하여 변화를 주도하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앵커시설을 통해 기술 개발을 촉진하면 새롭게 개발된 기술로 인해 해당 분야가 전반적으로 활성화되는 식이다. 반면 종합대책에 등장하는 앵커시설의 경우 변화를 억제하는 방향으로 분위기를 이끌어 가야 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앵커시설 운영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설명했다.

 
자산화 전략, 현실적 상황 고려해야

앵커시설 외에 서울시의 종합대책 중 주목할 만한 것으로는 ‘자산화 전략’이 있다. 자산화 전략은 소상공인들이 상가를 임차하지 않고 아예 소유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이다. 서울시는 우리은행과의 협약을 통해 종합대책 대상지역의 소상공인들이 시중 금리보다 저렴한 금리로 대출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서울시는 대출한도를 높이고 최장 15년까지 대출금 상환기한을 늘려 소상공인들의 상가 매입을 지원하기로 했다.
하지만 일부 소상공인들은 해당 정책에 의문을 표시했다. 상가 매입을 위해 대출을 하면 대출이자가 발생하는데, 대출이자나 임대료나 부담스러운 것은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실제 해당 정책이 시행될 경우 소상공인이 5억원을 대출했을 때 대출이자가 월 111만원가량 발생한다. 대출원금까지 생각한다면 소상공인들에게 부담스러울 수 있는 금액이다.

또한 자산화 전략이 한국의 사회적 특성에 적합한지 역시 의문이다. 남 교수는 “한국은 사업장의 이동률이 높고 이동주기가 짧다는 특성이 있다. 사업적 성패와는 별개로 자영업자들의 점포 이동이 잦은 편이다. 이런 특성은 사업을 위해 대출을 받아서라도 직접 건물을 사겠다는 소상공인들의 동기부여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고정된 장소에서 장기간 장사를 할 생각이 아니라면 건물 매입이 망설여질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종합대책, 해결책 될 수 있을까

23일 종합대책이 발표된 시점부터 계속해서 종합대책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들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서울시 장혁재 기획조정실장은 “현 상황에서 젠트리피케이션 종합대책이 어느 정도 영향력을 가질 수 있을지 많은 고민을 했다. 당장 눈에 띄는 성과를 내기는 어렵겠지만 서울시가 공공기관으로서 젠트리피케이션을 해소하기 위한 모델을 제시하는데 의의가 있다. 이 모델이 사회에 확산되는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울시의 말처럼 종합대책이 당장 가시적 성과를 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남 교수는 “서울시의 종합대책은 영국, 프랑스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시행한 대책을 총 망라한 정책인 만큼 완성도가 높다. 다만 한국의 사회적 특성에 잘 들어맞을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며 “보다 근본적인 관점에서 동네 상점보다는 프랜차이즈를 선호하는 한국의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다면 직접적으로 낼 수 있는 성과는 극히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전재영 기자 jujaya920@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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