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트리피케이션 안에서 살아남기

젠트리피케이션을 들으면 속수무책으로 자신의 터전에서 쫓겨나는 예술가와 소상공인들의 쓸쓸한 뒷모습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런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자체적으로 젠트리피케이션에 맞서려는 노력들이 주목받고 있다.

▲ 연남동에 위치한 ‘어쩌다 가게’의 전경
함께 노력하는 시민들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임대료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례로 연남동에 위치한 ‘어쩌다 가게’가 주목을 받고 있다. 어쩌다 가게의 구조는 조금 특이하다. 2층짜리 단독주택에 총 9개의 가게가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어쩌다 가게를 기획한 안군서 소장은 “건축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모여 ‘좀 덜 나쁜 임대주가 돼보자’는 생각으로 이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2층짜리 단독주택 자체를 임대하고, 이를 또 9개의 가게가 나눠서 임대를 하는 형식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에 자리 잡고 있는 9개 가게 모두가 월세를 분담한다. 안 소장은 “혼자 내면 부담이 되는 임대료를 여럿이 나눠 내기 때문에 부담이 덜하다. 이런 방식으로 비싼 월세를 줄여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고가산책단에서 진행하고 있는 ‘공익형 알박기 프로젝트’ 역시 젠트리피케이션을 막을 수 있는 사례로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고가산책단은 ‘서울역 고가’에 관심 있는 시민들의 모임이다. 최근 서울시는 서울역 고가가 폐쇄되고 그 자리에 공원이 들어설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서울역 고가 부근에 젠트리피케이션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한 고가산책단은 고가 부근의 땅을 미리 매입하는 공익형 알박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고가산책단 조경민 대표는 “땅을 여러 시민이 함께 구매함으로써 공동소유를 하면 사적소유로 인한 투기 등의 난개발을 막는 최소한의 억제력을 갖게 된다”며 이어 “이를 통해 도시의 미래를 위한 필요한 실험들도 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시민과 지자체의 아름다운 공생

시민과 지자체가 함께 젠트리피케이션을 극복해나가는 사례들도 있다. 현재 3년째 진행되고 있는 ‘만리동 예술인 협동조합 주택 사업’은 서울시와 SH공사가 함께 하고 있다. 이 공공임대주택에 거주하고 있는 예술인들은 서울시의 지원을 통해 불안정한 수입과 복지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땅값 상승으로 인해 예술가들이 다른 곳으로 쫓겨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만리동 예술인 협동조합인 막쿱 김웅현 씨는 “주거 안정을 통해 작품활동에 더 매진할 수 있게 됐다”며 “조합원들이 함께 모여 서울시가 더 지원해야 할 점을 논의하는 한편, 세입자들인 예술가가 할 수 있는 활동을 모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막쿱은 올해 ‘오프닝 쇼’와 ‘이상한 달동네 판타지’라는 행사를 진행하며 지역 활성화에도 기여했다. 김웅현 씨는 “건물주와 서울시, 그리고 우리 협동조합간의 상생은 성공적이었다. 우리의 사례로 좀 더 많은 협동조합 모델이 생겨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열린 ‘예술가, 젠트리피케이션 그리고 도시재생’에서 추계예술대 이홍재 문화예술경영대학원장은 “공생의 노력을 시도하는 사례들에는 공간적 포용력, 상호의존성, 참여라고 하는 세 가지 특징이 결합돼있다. 이런 요소들을 잘 활용하면 우리사회는 공존·공생을 할 수 있다. 또한 이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감성적인 답이 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물론 위의 사례들이 젠트리피케이션을 완벽하게 해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시민들끼리, 혹은 시민과 지자체가 함께 상호의존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데에 그 의의가 있을 것이다.

글·사진_ 정수환 선임기자
iialal91@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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