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헌 요구가 정계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새누리당 홍문종 의원은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헌법 개정을 통해 정부체제를 대통령제에서 이원집정부제로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이 국정 전반을 총괄하기보단 외교·통일·국방 등의 업무만을 맡고 이밖의 국가 내 행정업무를 총리가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헌법이 ‘헌’ 법이기 때문일까.

 
중요하기에 까다로운 개헌

헌법은 정부형태 및 작용의 기본원리를 규정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근본 규범이다. 근본 규범인 만큼 헌법은 현재 마련된 법 중 가장 상위법이다. 하지만 만일 시대가 변화해 기존 헌법이 부적절해진다면 헌법의 개정이 필요하다. 이를 개헌이라 말한다.
헌법이 가장 상위법인 만큼 개헌의 절차는 다른 법률 개정에 비해 까다롭다. 개헌안은 대통령 혹은 과반수의 국회 재적의원이 발의할 수 있다. 제안된 개헌안은 20일 이상의 공고 기간을 거쳐 충분한 토의가 이뤄진 후 국회에서 투표에 부쳐진다. 개헌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국회를 통과한 개헌안이 확정되기 위해선 국민투표로 넘어가 과반수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다만 헌법 조항에 개정금지 조항이 있을 경우 개헌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에 대해 우리대학 법학전문대학원 김대환 교수는 “개정금지 조항이 규정하고 있는 내용이 시대정신에 반한다면 개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개정금지 조항을 둔 국민의 뜻을 존중해 해당 조항을 개정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민주 헌법국가의 헌법해석 방법”이라고 말했다.

헌법을 개정할 때 지켜야 할 두 가지 원칙이 있다. 바로 동일성과 계속성이다. 동일성을 깬다는 것은 기존 헌법의 정신과 위배되는 방향으로 헌법이 개정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민주주의 국가에서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헌법이 개정될 때 동일성이 깨졌다고 할 수 있다. 계속성을 깬다는 것은 정상적인 개헌절차에 따라 개헌이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 군부정권에 의해 정상적인 절차를 무시하고 개헌이 강행됐다. 이러한 과거 사례는 정상적인 개헌이었다고 말할 수 없다.

 
9번의 개헌, 8번의 정부형태 개편

우리나라는 1948년 최초의 헌법이 제정된 후 지금까지 총 9번의 개헌을 거쳤다. 우리나라 헌법의 역사는 대부분 정치적 상황과 연관돼 있다. 첫 헌법의 제헌 직전 헌법학자들은 행정부와 의회가 철저히 구분되는 대통령제와 달리 의회에서 행정부를 구성하는 의원내각제를 제안했다. 하지만 이 헌법 기초안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강력한 반대로 제헌 직전 대통령제로 변경됐다. 한 나라의 최고법인 헌법이 당시 유력 인사의 의지에 의해 하루아침에 바뀐 것이다. 이후 발생한 9번의 개헌 중 8번은 정부형태 개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와 같은 사태는 대부분 대통령 등의 국가 지도자가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헌법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등 개헌을 악용하며 발생했다.

현행 헌법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민주적인 개헌으로 평가받는다. 군사정권, 김영삼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협의해 이끌어낸 개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개헌도 많은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 각 주체들이 자신의 집권 가능성을 최대한 보장받기 위해 단기적 관점에서 5년 단임 대통령제로의 개정에만 집중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학계, 법조계, 시민단체 등의 비정치권력의 의견은 배제됐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개헌 논의 역시 국가 통치 체제에만 주목하고 있다. 대통령제보다 의원들의 비례성이 높은 의원내각제로 헌법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 대통령의 임기와 국회의 임기가 5년과 4년으로 상이해 정책의 일관성이 떨어지므로 개헌해야 한다는 주장 등 다양한 방향이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헌법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인 ‘기본권’에 대한 논의는 어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다.

기본권 개헌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기본권 보장은 헌법의 근본 취지 중 하나다. 반면 기본권 조항의 개헌 논의는 그 중요도에 비해 소홀히 다뤄져왔다. 우리나라 현행 헌법에는 범위를 넓히거나 확충돼야 할 기본권 보장이 미비하다.

헌법 제1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 범주에는 외국인 등이 포함되지 않아 모든 사람의 평등권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평등권은 국민뿐 아니라 누구나 기본적으로 보장받아야 하는 자연권이다. 국회 헌법개정자문위원회에서도 ‘인간의 권리는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인정된 것이기에 특별한 경우에는 국민의 권리로 하나 일반적으로 사람의 권리로 통일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며 평등권의 주체를 국민에서 사람으로 변경할 것을 제안했다.

저항권은 기본권을 위협하거나 침해하는 공권력에 대해 대응할 수단이 없는 경우 저항할 수 있는 최후의 권리다. 독일의 경우 독일기본법 제20조 제4항에 ‘모든 독일인은 이러한 질서를 폐지하려는 자에 대해 다른 구제수단이 불가능할 때에는 저항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했다. 저항권은 불법적인 권력행사로부터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헌법에서 저항권에 대한 명확한 근거규정은 미비하다.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는 헌법 전문을 통해 저항권을 도출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대학 법학전문대학원 김대환 교수는 “저항권이 국민이 갖는 권리라는 데는 많은 학자들이 동의한다. 그렇지만 저항권을 헌법상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뿐 아니라 오늘날 정보통신기술의 발전과 함께 개인 정보 유출 등 새로운 유형의 인권침해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정보수준격차에 따른 사회 문제 역시 심각하다. 이에 따라 정보기본권을 신설해 이를 보완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유럽연합기본권헌장과 독일기본법, 세계인권선언 등에는 정보기본권과 관련한 규정이 마련돼 있다. 이에 발맞춰 국회 헌법개정자문위원회에서도 정보기본권을 신설하는 안을 채택했다. 주요 내용에는 알 권리와 정보접근권, 자신의 정보에 관한 결정권, 정보문화향유권 등이 있고 국가가 정보격차 해소를 위해 노력해야함을 명시했다.

이밖에도 김 교수는 “세월호 사태나 시리아 난민 사태 등을 볼 때 위험으로부터 안전할 권리인 안전권이나 피난자를 보호하는 망명권도 함께 논의될 필요가 있다”며 기본권 개정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최진렬 기자 fufwlschl@uos.ac.kr
참고_ 윤대규, 『왜 개헌인가?』, 한울, 2005.
오호택, 『개헌 이야기』, 살림,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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