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리아협의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정화 대표

길치에게 베를린 시내 한 가운데 있는 조그만 사무소를 찾아가는 일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지하철을 몇 번이나 반대로 타고서야 코리아협의회(Korea Verband)에 도착할 수 있었다. 코리아협의회는 독일에서 한국에 관한 다양한 의제와 관련해 활동하는 시민단체이다. 특히 세계최초로 위안부 문제에 관한 국제심포지엄을 열기도 했다. “요즘 한일 협상 때문에 정신이 없다”는 코리아협의회 한정화 대표를 만나 위안부 문제 및 한일협상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한국의 많은 학생들은 코리아협의회를 전혀 모르고 있다. 코리아협의회는 어떤 단체인지 소개해달라
코리아협의회는 1990년대 창립돼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논의하고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활동하는 단체다. 내가 대표로 있다보니 사람들이 종종 한인단체라고 오해하기도 하는데 독일시민단체이다. 다양한 주제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주요 활동 중 하나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알리고 있다. 2008년 길원옥 할머니를 초정했고, 2010년 ~ 2012년에는 독일 전역을 순회하며 위안부 문제에 대해 프렌젠테이션을 진행하기도 했다.

12월 28일 한일 위안부 문제 협상 타결 후 국내에서는 여러 논란이 있었다. 이번 협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한일 위안부 합의문에는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로서,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함’이라고 적혀 있다.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를 주도한 것이 정부가 아니라 ‘군의 관여’라고 모호하게 얼버무렸다. 게다가 위안부 문제의 책임이 아니라 위안부 여성의 상처에 책임이 있다고 한다. 사람들이 처음으로 아베가 공식적으로 사과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도의적 책임’은 아베도 많이 언급했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에 의해 강제로 끌려갔다고는 인정하지 않는 문제는 여전하다. 또한 배상 문제도 남아있다. 1995년 일본은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을 모으며 이를 위로금이라 칭했다. 지금도 배상이 아니라 위로금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런 모든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적어도 위안부 할머니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일본 사회에서의 위안부 문제 교육은 이뤄져야 했다. 그런데 관련 내용은 전무하다.

독일에서 협상 소식을 들었을텐데, 독일의 반응은 어떤가
여기서는 독일 통신사 DPA 보도로 한일 협상에 대한 기사가 나갔다. 마치 아베가 사죄를 하고 일본 정부가 배상을 했다는 헤드라인과 톱기사가 나왔다. 그러니까 주변 친구들이 “수십년 째 노력하다가 드디어 성과를 봤는데 어떠냐”고 축하해주더라. 나는 그 내용을 보고 제대로 답도 못했다. 독일사회에서 봤을 때 이번 결과는 정말 말도 안 되는 내용 투성이다. 일전에 근처 꽃가게 아저씨와 이야기하다가 한일 협상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협상 내용을 알려주자 그 분이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답하더라. 상식 있는 독일 사람들이라면 아무도 이번 협상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위안부 문제가 외교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나도 솔직히 위안부 문제에 대해 ‘너무 민족주의적’이라고 생각했다. 독일에서 살다보니, 민족주의에 굉장히 민감했다. 그런데 독일에서 처음 위안부 문제가 대두된 것이 90년대 초 한국과 일본 여성모임이 함께 위안부 문제에 대해 투쟁을 시작하면서부터다. 위안부 문제는 단 한 번도 외교적 걸림돌이 된 적이 없다. 위안부 문제는 오히려 범국가적인 화해의 길이다. 지금도 한국 시민단체와 일본 시민단체가 함께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며 굉장히 가깝게 지낸다. 위안부 문제는 단순히 일본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적인 폭력과 인권침해에 대한 문제다. 한국 군인들도 베트남 전쟁동안 비슷한 일을 자행했다. 만약 한국에서 위안부 문제를 젊은 남성들에게 교육할 수 있었다면, 베트남 전쟁 때 비슷한 일이 되풀이 되진 않았을 것 같다. 그렇기에 위안부 문제는 온 세계가 함께 고민해나가야 할 문제고, 그 과정에서 국가 간 협력이 이뤄질 수 있다.

협상에 따르면 이제 위안부는 국제사회에서 논할 수 없는 문제가 됐다
이제 한국 정부는 스스로의 시민사회를 탄압해야 될 지경이다. 협상안에 따르면 한국정부는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가 거론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예전에는 우리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시민운동을 하면 한국 대사관이 이를 지지 해줬다. 이제는 한국 대사관이 우리가 시민운동을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가 거론되면 안 되니까. 스스로의 시민사회를 억압하게 되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은 몇 년째 부인하고 있다. 위안부 관련 활동을 해도 바뀌는 게 없어 지치지 않는가
절대 아니다. 엄청나게 많이 변했다. 피해자였던 할머니가 이제는 여성운동가가 됐다. 지금까지 전혀 없었던 사례이다. 위안부 할머니와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눠보면 할머니들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2008년도에 길원옥 할머니를 처음 뵀는데, 그때만 해도 여러 사람 앞에서 아픈 기억을 말씀하시는 것을 어려워하시고, 불안해하셨다. 그런데 2년 후 할머니를 다시 만났는데 완전히 변해있더라. 80세나 되신 할머니가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존경스러웠다. 할머니들 대부분 학교도 못 다니시고, 글씨도 못 쓰신다. 그랬던 분이 많은 관객 앞에서 자신의 아픈 이야기를 당당하게 말하신다. 당신 같은 일이 오늘날 여성들에게 일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기에 이렇게 노력하시는 거다. 그런 사명감을 가지고 활동하는 운동가는 전 세계에 또 없을 것이다. 할머니들은 운동을 통해 마음 속 상처들을 스스로 모두 치유했다. 그런데 돈으로 상처를 치유한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전혀 모르는 것이다.

앞으로 코리아협의회는 독일에서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생각인가
다시 협상해야 된다. 절대적으로 무효화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결과가 너무 충격적이기에 오히려 독일 사회에 호소력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각종 독일단체들로부터 협상 무효화에 동의하는 서명을 받으려 한다. 일본·한국 대사관을 찾아가고, 독일 국회의원들까지 만나서 이번 협상에 대한 의견을 달라고 할 생각이다.


정리_ 김태현 기자 taehyeon119@uos.ac.kr
사진 _ 윤진호 기자 jhyoon2007@ 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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