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신영복 선생님을 기리는 작은 전시회>

▲ 전시포스터
당신이 소주를 좋아한다면 ‘처음처럼’이라는 단어에 익숙함을 느낄 것이다. 소주의 알싸함보다 소주병 겉면을 장식하고 있는 독특한 글씨체에 초점을 맞춰보자. 이는 지난달 별세한 어떤 감옥수 출신 서화작가의 서체이기 때문이다. 이 글씨의 원본서화 ‘처음처럼’에는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입니다”라고 적혀있다. 소주병에도 남아있는 그의 흔적, 서체의 주인공은 故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다. 

그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경제학 강사 생활을 하던 중 간첩으로 몰려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돼 수감생활을 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무야 나무야』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그는 슬프게도 지난 1월 15일 세상과 이별했다. 그를 기억하기 위해 언론과 여러 단체들은 연일 그의 행적을 돌이켜보았다.

출판사 ‘돌베개’도 그 중 하나다. 故신영복 교수의 여러 저서를 출판했던 돌베개는 지난 1월 28일부터 출판사 사옥 1층에서 ‘신영복 선생님을 기리는 작은 전시회’를 열고 있다.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사옥은 뒤에 걸쳐진 작은 산을 벗삼아 故신영복 교수를 찾는 이들에게 안락한 추억터를 제공하고 있었다. 작은 전시회라는 이름에 걸맞은 규모는 기존 전시회와 다른 느낌을 주었다. 또한 전시장은 원래 카페로 이용되는 곳이었기 때문에 전시장이라기 보다는 마치 분위기 좋은 카페처럼 느껴졌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그의 유작들은 고인이 살아생전 전하고 싶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그의 사진들, 신문스크랩 자료, 관련 영상 등이 고인의 삶을 재조명했다.

▲ 전시장 내 故신영복 교수의 서화
그가 직접 썼던 서체와 글 또한 액자에 담겨 그를 찾은 이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특히 故신영복 교수가 수감 시절 옥 중에서 쓴 편지를 엮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초판본을 보는 순간 그의 삶의 애환이 느껴졌다. 책의 겉표지만 보아도 그의 감정이 느껴지는 것은 이 책에 그의 진심어린 생각이 녹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20년 동안 답답한 울타리에 갇혀 나오지 못한 그의 사색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듯했다.

경제학 강사로 촉망받던 그는 감옥에서 그 빛이 바래져 갔고, 그 곳에서 스스로를 낮춤으로써 새롭게 시작하는 법을 깨달았다. 그는 감옥에서의 깨달음을 ‘밑바닥의 철학’이라 이름 붙였다. 그는 책에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교도소가 ‘밑바닥’이라는 사실입니다. (중략) 특히 징역살이에는 무엇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가장 낮은 밑바닥에 세우는 시선과 용기가 요구됩니다”라고 이야기했다. 가장 낮은 밑바닥에서 처음과 같은 마음으로 시작하고자 했던 그의 삶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준다.

고속성장과 효율만을 원하는 시대 속, 우리는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이 살고 있다. 해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다. 학점관리, 스펙쌓기, 취업준비 등으로 눈코뜰새없이 바쁜 것이 우리의 삶이다. 앞만 바라보며 무엇에 쫓기듯 살고 있다. 각자 목표를 설정하고 행복해하던 처음이 언제, 어디였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故신영복 교수를 되새기며 각자의 삶에서 ‘처음’과 ‘밑바닥’을 돌아보는 것은 어떨까.

 


 글_ 장한결 수습기자 uiggg@uos.ac.kr
사진_ 돌베개 제공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