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문역 3번 출구로 나오면 독립운동가와 민주 열사들을 수용했던 서대문형무소가 있다. 그 맞은편에는 더 낡을 수 없을 만큼 낡은 듯한 여인숙 간판들이 보인다. 수인들의 옥살이를 뒷바라지하기 위해 상경한 ‘옥바라지’들을 받아준 여인숙이 북적이던 거리. 일명 무안동 ‘옥바라지 골목’이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과거 김구 선생의 옥살이를 돕기 위해 머물렀다던 곽낙원 여사를 비롯해 도산 안창호 선생의 아내 이혜련 여사, 인혁당 피해자들의 자취를 찾아볼 수는 없었다. 건물마다 ‘공가’라는 빨간 낙인들이 줄을 이었고, 원래 창문이었을 유리는 산산이 깨져있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더했다.

“점포 정리. 그동안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서너 블럭 남짓한 골목길을 걷다 보니 상가 곳곳에 걸려있는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사람이 남아있는 상가는 손에 꼽았다. 붐비는 사람들 때문에 묵을 방이 모자랄 정도였다던 옥바라지 골목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 어느새 옥바라지 골목에 눈이 오기 시작했다.
옥바라지 골목에서만 30년 넘게 장사를 했다던 A씨에게 말을 건네자 연신 손사래를 쳤다. 이미 재개발 때문에 사람들이 다 떠났는데 무슨 얘기를 하겠냐는 것이었다. 곧 A씨는 “건물이 없으니까 나가라면 나가야 한다”고 토로했다. 옥바라지 골목을 보존할 수 없냐 묻자 A씨는 “진작에 나섰어야 했다”며 뼈아픈 소리를 했다. 이미 건물이 헐리고 사람들도 다 떠났는데 어떻게 복원을 하냐는 것이다. A씨는 그러면서도 골목 끝 ‘구본장 여관’에 가면 옥바라지 골목에 대해 얘기를 전해줄 사람이 있을 것이라 일렀다.

상가를 나와 구본장 여관으로 향했다. 아랫목에서 티비를 보던 사장님은 옥바라지 골목에 대해 묻자 자신보다 아내가 말주변이 좋다며 전화를 들었다. 그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 달방(한 달 동안 머무르는 방)을 구하고 싶다며 한 손님이 찾아왔다. “근데 여기 철거 안돼요?” 재개발구역 아니냐는 물음에 사장님은 단호하게 그럴 일 없다고 답했다. 마침 쪽방에 들어선 이길자 씨는 “과거 옥바라지 골목은 방이 모자라 골목을 서성이는 옥바라지들에게 헌밥을 치우고 막 지은 새밥을 건넬만큼 이웃 간 정이 끈끈했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이 씨는 “1987년 서대문형무소가 의왕으로 이전한 이후 옥바라지 골목의 형편이 어려워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 동네가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됐다. 40개를 넘어가던 여인숙들 중 남아있는 건 손에 꼽는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모든 주민이 무기력하게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 씨는 옥바라지 골목을 살리기 위해 활동하고 있는 비상대책주민위원회의 이야기를 들어보라며 총무 최은아 씨를 소개해 주었다.

구본장 여관의 아랫목에서 커피를 홀짝이는데 찬바람을 묻힌 채 최 씨가 들어왔다. 자리에 앉으며 최 씨는 “작년 7월 관리처분계획의 인가가 났다. 재개발에 한해서는 갈 데까지 간 것”이라고 입을 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네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묻자 최 씨의 목소리가 서글퍼졌다. 최 씨는 “현실 문제도 현실 문제지만, 그보다는 정든 고향을 떠나기 싫다”며 “내가 살던 곳이 이렇게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문화공간인줄 몰랐다. 고향을 지키고 싶다”고 전했다.

이어 최 씨는 “애초에 재개발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주민들로부터 재개발 찬성표를 받아낸 것은 명백한 사기극”이라고 지적했다. 이후 50% 이상의 주민들에게 해산동의서를 받으면 재개발을 저지할 수 있다는 말에 최 씨는 사방으로 돌아다녔지만, 아무리 발품을 팔아도 45%가 한계였다며 한숨을 쉬었다. 이뿐 아니라 최 씨는 “우리와 옥바라지 골목이 상생할 수 있도록 도시재생이 필요하다. 여관을 하던 사람들은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해 관광객을 유치하고, 교육관을 만들어 서대문형무소와 옥바라지 골목의 역사를 전할 것”이라 말했다. 이후 최 씨는 다음달 12일까지 옥바라지 골목 사진 전시회를 열 예정이라며 많은 관심을 부탁했다.

최 씨와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다시 옥바라지 골목으로 돌아갔다. 깨진 창문과 널부러진 쓰레기들은 여전했다. 항상 외줄타기를 하는 듯한 불안함에 잠을 이룰 수 없다던 최 씨의 말이, 법이 그러라는데 별수 있냐던 A씨의 말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언제 아파트가 들어설 지 모르는 텅빈 집들을 한동안 바라보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올랐다.


글·사진_ 박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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