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사회에서 뜨겁게 회자되고 있는 용어 하나를 고른다면 단연코 금수저·흙수저와 관련된 불평등 논쟁일 것이다. 이는 『21세기 자본』을 쓴 피케티의 세습자본론을 수사적으로 변용시킨 우리의 우울한 현실을 보여준다. 이른바 유례가 없을 정도의 청년고용률의 악화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n포 세대로 일컫는 이 땅의 젊은 대학생들(졸업생을 포함해서)은 천박한 황금만능주의의 최고의 격률인 ‘자본(돈)이 힘이다’라는 명제에 맥없이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자본이 젊은이의 꿈과 희망을 대변할 수 있다는 신자유주의의 시장원리는 곧바로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냉혹한 생존 기계가 될 것을 강요하는 위험사회, 피로사 회로의 진입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끔 만든다.

이와 맞물려서 최근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볼 수 있는 대중문화의 측면에서 ‘먹방’이 대세로 등장했다. 먹방 자체를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기본적으로 먹어야 사는 존재이고 맛있는 음식을 추구하는 것 자체를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다양한 먹방 프로그램들이 우울한 우리 시대의 대중들에게 악마의 달콤한 유혹처럼 다가서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문제는 대중들의 입맛을 원초적으로 자극하는 먹방 열풍에는 대중들의 건강한 비판 의식을 무디게 만들 수 있는 사상을 각종 매체들이 조장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는 것이다. “탐식이란 먹는 것에 대한 지나친 욕망이나 사랑”이라고 스피노자가 말한 것처럼, 오로지 맛있는 것만을 추구하는 것은 적절한 식욕이 아니다. 탐식을 권유하는 사회 역시 건강한 사회라 할 수 없다.

불평등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어둠의 자식들을 자본의 논리로 조롱하는 사회는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다. 대학은 말 그대로 큰 공부를 하는 곳이다.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큰 학문을 배우고 익히는 가운데 올곧은 비판 정신을 가질 필요가 있다. 편의점에 나열된 삼각 김밥처럼 박제화된 지식에 연연하는 것은 결국 기존의 체계와 가치에 순응하는 생존 기계에로 전락하는 것이다. 최근 미국 대선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아웃사이더 버니 샌더스의 말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이 아무리 진흙탕이더라도 절망을 해서는 안 된다. 불평등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들이 절망하면 할수록 그만큼 자본을 가진 금수저들의 이상한 행복지수는 더 높아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위기 속에서 구원이 자란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익숙한 것과의 결별만이 새로운 삶의 질서를 추구할 수 있다.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벽을 깨기 위해 혹은 그것을 깰 때마다 만들어지는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삶의 방식은 우리의 사고와 삶이 나아갈 수 있는 경계를 확장한다는 점을 가슴 속에 오롯이 새길 필요가 있다.

지금 이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니체의 경구 한 마디. “당신의 꿈 이상으로 당신 자신인 것도 없다. 꿈의 실현이야말로 당신이 가진 온 힘으로 이루어내야만 하는 것이다.”    
     

박만엽(글쓰기 센터 '의사결정과 토론' 담당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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