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아아아!” 페스티벌이 진행되는 동안 게임 팬들의 함성은 그치질 않았다. ‘한글화 대폭발 페스티벌’ 현장 안, 메인 전광판에서는 신작 게임 ‘아이돌 마스터 - 플래티넘 스타즈(이하 아이돌 마스터)’의 공식 한글화 발매 소식이 발표됐다. 현장은 기다리고 기다렸던 한글화 발표 소식을 들은 팬들의 함성소리로 가득 찼다.

안희원(22) 씨도 현장에 있던 팬들 중 한 명이었다. 그는 한글화 대폭발 페스티벌 개최 전까지만 해도 아이돌 마스터처럼 우리나라 정서와 먼 게임을 한글화로 만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꿈도 꾸지 못했다. 안 씨는 “이 페스티벌은 좋아하는 게임이 번역되지 못할 것이라고 지레 낙담했던 팬들에게 큰 선물을 안겨준 것”이라며 의의를 전했다.

열정이 폭발한 한글화 대폭발 페스티벌

게임회사 ‘반다이남코 엔터테인먼트 코리아(이하 반다이)’는 한글화 대폭발 페스티벌(이하 페스티벌)을 지난달 13일 개최했다. 이 행사는 반다이 신작 게임들의 한글화를 공식적으로 발표하기 위한 자리였다. ‘아이돌 마스터’, ‘슈퍼로봇대전 OG - 문 드웰러즈(이하 슈퍼로봇대전)’을 필두로 신작 게임 11편의 한글화가 깜짝 발표됐다. ‘한글화’란 외국산 게임이 국내에 수입될 때 우리말로 번역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페스티벌에 대한 반응은 대단했다. 반다이에서는 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강남 빌딩 한 층을 빌렸지만, 400명이 넘는 인원이 몰렸다. 행사에 참여한 안희원 씨는 “무엇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이 한글화 된다는 것에 대한 기대감이 현장의 분위기를 더욱 뜨겁게 달궜던 것 같다”며 “한글화 ‘대폭발’ 페스티벌답게 현장도 대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다고 말했다.

▲ 팬들의 염원이었던 슈퍼로봇대전 시리즈 신작 ‘슈퍼로봇대전 - 문 드웰러즈’의 한글화가 발표됐다.
다사다난했던 한글화 시장

한글화 대폭발 페스티벌에 사람들이 열광한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이 좋아하지만 한국어 번역이 없어 불편했던 게임을 우리말로 편안하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면에는 팬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우리나라 게임 한글화 시장의 단면이 감춰져 있다. 

팬들은 게임 한글화 시장이 축소된 근본적인 이유가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게임 불법복제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2000년대 이후 무분별한 불법복제 때문에 게임 시장 자체가 위축됐고 이에 따라 한글화도 크게 감소했다. 유저한글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팀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A씨는 “문화 콘텐츠를 소비함에 있어 정품을 이용하는 것은 소비자가 당연히 지켜야 할 의무다. 기본적인 의무가 지켜지지 않아 게임 한글화 시장이 경직되기에 이르렀다”며 “이로 인한 피해는 다시 소비자에게 돌아간다는 것에 우리 모두 공감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A씨의 말처럼 게임 한글화 시장의 축소에 따라 가장 불편함을 겪는 사람들은 대중성이 비교적 떨어지는 게임을 즐기는 팬들이다. 페스티벌에 참여했던 B씨는 “우리나라의 비디오 게임 시장은 규모가 작은 편이라 한글화에 들어가는 노력에 비해 상응하는 수익을 내기가 힘든 구조”라고 말했다. 게임의 한글화는 단순히 번역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래픽 오류가 없는지 등을 검사하고, 최종단계에서 잘 구현됐는지 시험해 봐야하기 때문에 많은 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게임 한글화는 대개 대중적이고 수익성을 보장할 만한 콘텐츠 위주로 이뤄졌고, 소수의 팬을 겨냥한 게임은 한글화 사업에서 제외되기 일쑤였다. 안 씨는 “좋아하는 게임을 해도 일본어를 잘 모르기 때문에 내용을 잘 인지하지 못했다”며 “게임 때문에 직접 일본어를 배우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유저들의 노력이 빛을 보길 바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게임 이용자, 일명 ‘유저’들이 직접 발 벗고 나서기도 했다. 바로 ‘유저 한글화’다. A씨는 “게임 시장의 축소에 따라 한글화된 게임이 줄어들어 게임이 번역된 잡지를 사보며 불편하게 게임을 이용했다”며 “누구도 해주지 않는다면 직접해보자는 심정으로 맨땅에 헤딩을 하게 된 것이 유저 한글화의 첫걸음”이었다고 말했다.

게임 한글화에는 많은 인력과 비용이 소요된다. 유저 한글화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A씨는 “처음 한글화를 기획했던 게임의 경우 번역자와 교정인원, 그래픽 관리자까지 총 35명의 인력이 투입됐다”며 “한글화 작업을 하는 유저들은 사실상 아무런 경제적 보상을 받지 않는다. 나를 포함해 참여한 사람들 모두 게임을 좋아하는 열정 하나만으로 한글화 작업을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게임회사들은 이런 유저 한글화를 공식적으로 지원하기도 했다. 실제로 2012년 ‘더 위쳐2’의 개발사는 해당 게임의 유저 한글화를 공식 한글화로 인정했다. 유저들이 번역한 게임을 기업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함으로써 기업에서는 한글화 비용을 줄이고, 유저는 인센티브를 받는 것이다. 유저 한글화 게임을 즐겼다는 이영선(22) 씨는 “요즘 유저 한글화의 퀄리티가 수준급”이라며 “어떤 게임은 보이는 효과음까지 한글화해 감탄했던 적도 있다”고 말했다. A씨는 “기업과 유저 한글화의 협업은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게임 한글화 구조에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한글화 대폭발 페스티벌에서 한글화 발표 당시 팬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한글화 시장에 부는 새바람

게임 팬들은 최근 게임시장에 한글화 대폭발 페스티벌과 같은 새바람이 불고 있다고 말한다. B씨는 “슈퍼로봇대전 시리즈의 경우 25년이나 이어져온 장수 콘텐츠지만 한글화 된 적이 없었다”며 “게임회사에서 소수 팬들을 겨냥한 게임에도 수익성이 있음을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반다이 오정은 대리는 “현재 비디오 게임 시장은 한글화 발매 비율이 매우 높다. 이런 시장의 흐름을 파악하고 한글화의 중요성에 대해 오랜 시간 일본 본사를 설득해왔다”며 “한글화를 하는 것이 반드시 수익성을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대중에게 쉽게 다가가고 게임 시장을 넓힐 수 있다는 점에 의의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 규모의 게임회사들도 다양하게 게임 한글화에 도전하고 있다. 바로 ‘한글화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팬들에게 게임 한글화를 위한 자금을 기부받는 것이다. 실제로 해머엔터테인면트라는 중소기업에서 500만원을 목표로 한글화를 위한 크라우드 펀딩을 시행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중소 게임 회사는 적은 비용으로 게임 한글화를 할 수 있고, 팬들도 원하는 게임을 우리말로 즐길 수 있다. 이영선 씨는 “요즘 다양한 게임 유통사에서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하고 있다”며 “내가 한글로 해보고 싶은 게임에 투자하는 것이 조금도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B씨는 “팬들이 한글화에 들어가는 노력과 시간을 이해하고 응원해주는 문화가 앞으로도 계속된다면 한글화도 늘어날 것”이라며 “불법복제를 줄이는 등의 건전한 게임 문화가 정착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국승인 기자 qkznlqjffp44@uos.ac.kr
사진_ 반다이남코 엔터테인먼트 코리아 제공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