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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속 울려퍼진 여성노동자들의 목소리
박소정 기자  |  cheers710@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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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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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단체에서 전국여성노동자대회를 위해 시청광장에 모였다.
봄비가 세차게 내리던 3월 5일 토요일 오후. 색색의 우산과 함께 우비를 둘러쓴 사람들로 서울시청 광장 앞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우천이 예보됐음에도 변동 없이 진행된 ‘전국여성노동자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정돈되지 않은 대열 속에서 우산 대신 팻말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광장 곳곳에 ‘가정 vs 일, 여성에게만 강요되는 선택지’, ‘직장 내 성폭력 반대’와 같은 문구들이 당일 집회의 주제를 상기시켜주었다. 

오후 2시가 조금 넘은 시각, 물에 젖은 마이크를 통해 퍼져 나온 진행자의 목소리가 행사의 시작을 알리며 광장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흔들었다. 당일 집회를 방해하려 작정이라도 한 듯 우산과 우비가 소용없을 정도로 퍼붓는 비에도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꿋꿋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각기 다른 곳에서 모여든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이 날만은 여성과 여성노동자의 권리 확보라는 하나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한 자리에 모인 것이다.

첫 연대발언을 맡은 알바노조 용윤신 사무국장은 여성 알바노동자들에게 요구되는 꾸미기 노동과 감정 노동에 대한 실태를 자세히 고발했다. 용 사무국장은 “왜 화장을 하지 않는지, 살을 왜 빼지 않는지에 관한 말을 듣는 것은 여성 알바노동자들에게 일상이다. 거의 모든 여성 알바노동자들이 사업장에서 머리망, 스타킹, 유니폼에 맞는 화장 등을 강요받고 있다”며 “여성 알바노동자들은 외모로서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능력으로 평가받고 싶고, 스스로의 입으로 주체적으로 말하고 싶다”고 여성 알바노동자들의 권리를 외쳤다. 사회적 소수자인 알바노동자 중에서도 더욱 소수자인 여성 알바노동자에게 드리워진 관습에 의문을 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장식품이나 꽃으로서의 역할을 거부하겠다는 결의가 드러나는 꼿꼿한 모습이 비와 더해져 더욱 강렬하게 다가왔다.

이후 한·일 위안부 합의 무효 투쟁 선언이 이어졌다. 이 선언은 과거사에 대한 정의로운 해결이 이뤄져야만 우리 사회의 여성 인권이 꽃 필 수 있다는 뜻에서 이뤄졌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한국염 공동대표는 “한국정부는 위안부 강제연행에 대한 인정도 끌어내지 못하고, 외교부장관을 통해 대독 사과를 받고 터무니없는 합의를 했다”며 “우리는 이 합의를 인정할 수 없다. 합의 무효투쟁에 나서기로 했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에게 동참을 요구하며 연대사가 마무리 됐다.

세종호텔 노조, 홈플러스 노조, 보건의료노조 인천성모지부, 금속노조 서울남부지회 여성 노동자들의 발언도 있었다. 여성 조합원이 각각 결의에 가득 찬 목소리와 떨리는 목소리로 혹은 다소 화가 난 듯한 목소리로 발언을 이어나갔다. 그들은 사업장에서 위축되고 억압받는 여성노동자들의 인권과 기본권에 대해 토로하면서 향후 사업장에서 자행되는 많은 일들을 좌시하지 않고 열심히 목소리를 낼 것을 다짐했다. 이후 집회 참가자들은 선언문을 통해 다함께 저성과자 해고지침, 노동현장 내 성차별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표명했다. 이들은 남성과 여성의 임금평등이 이뤄지지 않는 현실을 꼬집으며 “여성을 저임금 산업으로 내몬 현재의 임금 체계는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여성에게 전가된 이중노동의 굴레를 깨트려야한다”는 주장도 펼쳤다. 여성노동자가 일·가정 노동을 병행할 것이 아니라 보육과 돌봄에 있어 사회전체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신분으로서 자세히 알지 못했던 여성노동자들에게 더욱 차가운 노동현실이 발언자들의 격앙된 목소리를 통해 생생하게 느껴졌다. 여권이 신장되고 양성평등과 페미니즘이 각광받는다는 이론들과 사뭇 다른 현실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의 괴리감과 회의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집회는 전국여성노동자대회의 마지막 상징의식인 박을 터뜨리는 것을 끝으로 마무리 됐다. ‘여성에게 좋은 일자리, 여성에게 노동조합을, 노동개악 저지’. 박 속에서 여성노동자들의 염원이 쓰인 형형색색의 현수막들이 꽃가루와 함께 펼쳐졌다. 다소 무거운 공기가 감도는 집회현장과도, 현재 여성노동자들이 처해있는 현실과도 어울리지 않는 현수막이 비바람에 넘실대는 광경이 다소 처량하게 느껴졌다. 사람들은 무대를 잠시 바라본 후 비를 피해 각자의 대열로, 목적지로 걸음을 옮겼다. 여성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세찬 봄비에 묻히지 않고 더욱 크게 자라나길 바라며 기자도 수첩을 접고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글·사진_ 박소정 기자 cheers710@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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