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팩트추적에서는 대법원의 다소 의아스러운 판결을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남성 A씨가 6차례에 걸쳐 성적수치심을 일으키는 편지와 그림을 여성 B씨가 살고 있는 집의 출입문에 끼워 넣었습니다. 이 남성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성폭력처벌법) 위반으로 기소돼 1심과 2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에서 이 남성을 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많은 시민들은 이 판결을 두고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먼저 성폭력처벌법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폭력처벌법 제13조에서는 ‘전화, 우편, 컴퓨터, 그 밖의 통신매체를 통해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말, 음향, 글, 그림, 영상 또는 물건을 상대방에게 도달하게 한 사람’을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1심·2심에서는 A씨에게 "우편 등 통신매체를 통해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글과 그림을 상대방에게 도달하게 한 행위에 해당한다“며 유죄판결을 내렸습니다.

대법원이 원심의 판결을 깬 것은 바로 이 조항을 1심·2심과 달리 봤기 때문입니다. 대법원은 "A씨처럼 통신매체를 이용하지 않고 직접 상대방에게 음란한 글 등을 도달하게 하는 행위까지 처벌 대상으로 보는 것은 실정법 이상으로 처벌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즉 A씨는 음란물을 직접 문틈에 끼워 놓은 것이니, ‘통신매체’를 이용한 것이 아니라는 설명입니다. 상식적으로 잘 납득되지 않는 판결입니다. 그러나 잘못된 판결이라고는 볼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었습니다. 어떤 행위가 범죄로 규정되기 위해서는 해당 내용이 법에 구체적으로 명시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대학 법학전문대학원 김희균 교수는 “‘전화, 우편 그 밖의 통신매체’에 직접 손으로 전달하는 것은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같은 음란물인데 전달방식에 따라 처벌이 달라진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잘 납득이 가진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법을 개정해야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충북대 법학전문대학원 이경재 교수는 “이번 사건과 같은 행위도 처벌할 수 있는 법률을 만들어야 한다. 입법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여러 성범죄 관련법들을 재정리해야 한다는 필요성 역시 제기되고 있습니다. 만약 검찰이 A씨를 성폭력처벌법이 아닌 형법의 협박죄나 경범죄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면 판결이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이와 비슷한 사건으로 지난해에는 부하 직원에게 팬티 차림으로 안마를 요구한 남성을 형법으로 기소했는데,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만약 성폭력처벌법으로 기소됐다면 해당 남성을 처벌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성범죄와 관련된 법만 해도 6~8개가 넘습니다. 이중삼중으로 중복되고, 체계화되지 못하다 보니 법 집행과정에서 혼란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경재 교수는 「바람직한 性形法의 정립을 위한 제안」을 통해 성범죄 관련 법률이 “하나의 법률로 통일성 있게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성범죄 사건이 더이상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성범죄 관련 법 개정이 늦춰져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김태현 기자 taehyeon119@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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