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들이 쏟아질 때가 왔다. 거리 곳곳에서 제20대 국회의원선거 후보자들의 유세가 들리기 시작했다. 언뜻 그럴 듯한 말이지만 듣다보면 신뢰가 가고 확신이 들기보단 어째 속고 있는 기분이 든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궤변인 걸 알면서도 속는 일에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영화 앞에서 한 번 더 속을 수밖에 없다. 제목부터 발칙한 영화 <땡큐 포 스모킹>이다.

담배, 누구나 몸에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주인공 닉 네일러가 대단한 이유다. 닉은 담배회사 로비스트이다. 그는 사람 혼을 쏙 빼놓는 언변으로 담배회사를 변호한다. 심지어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소년 앞에서 청중들에게 담배회사를 비난하지 않도록 설득할 정도다. 닉은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중력도 반증할 수 있는’ 천재적인 사람이다.

TV 토론회에서, 담배CF 전속 모델이었던 배우 앞에서, 담배갑에 경고문구 부착을 요구하는 청문회에서 닉은 청중을 설득하고, 자신의 편으로 만든다. 영화 내내 등장하는 닉의 대사들 한 마디, 한 마디가 특별하다. 그야말로 토론의 교과서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닉 네일러의 발언을 하나하나 배워보자. 먼저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자. “엄마가 초콜릿이 몸에 나쁘다고 하면 안 먹을 거니? 담배도 그런거란다.” 두 번째, 경제적인 이해관계를 추론해보자. “보건복지부는 청소년 암 환자가 죽길 바랍니다. 예산이 올라가거든요. 담배회사는 미래의 고객을 잃어요. 저희 회사는 청소년 금연을 위한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세 번째, 적당히 뭉뚱그려서 퉁치자. “담배의 위험성은 담배갑의 경고문구가 아니라 교육으로 해결해야 하는 겁니다. 자녀에게 흡연을 포함해 세상의 위험에 대해 알리는 건 부모의 의무입니다. 어른이 되면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요.”

▲ 수많은 언론 앞에서 담배회사를 변호하는 닉

<땡큐 포 스모킹>의 닉은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뻔뻔스러운 인물이다. 관객들은 ‘기승전담배’로 이어지는 닉의 허무맹랑한 논리에 실소를 터뜨리다가도, 어느 순간 기발하고 재치 넘치는 화법으로 청중을 휘어잡는 닉의 달변을 혹하며 듣게 된다. 영화 내내 닉은 궤변과 달변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든다. 영화는 닉의 대사들을 재기 넘치는 편집을 통해 터무니 없는 궤변이라고 지적하지만 영화 속 사람들은 알면서도 또 닉에게 속는다. <땡큐 포 스모킹>은 유머감각을 잃지 않으며 담배, 술, 총, 원자력, 송전탑 등  알면서도 속고 넘어갔던 우리사회의 모습을 조롱한다.

우리가 알면서 속았던 것이 비단 담배뿐일까. ‘자신에게 한 표를 달라’는 온갖 말들이 쏟아지고 있다. 또다시 터무니없는 망언과 논점을 흐리는 네거티브가 난무했다. 지금도 누군가는 “땡큐 포 스모킹”이라며 우리들을 설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진짜 블랙코미디는 우리 주변에 있다.

 


김태현 기자 taehyeon119@uos.ac.kr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