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 여러 일상에 치인 당신. 드디어 소중한 주말이다. 책상에서 벗어나 여유를 즐기고 싶지만 힘이 없다. 짧은 주말, 멀리 가긴 힘들다. 지치고 바쁜 그대. 삶의 중심에서 잠시 벗어나 서울의 둘레길로 가보자. 

▲ 데이트 장소로 인기가 많은 메타세콰이어 길
I. SEOUL. 둘레길

서울둘레길은 서울의 외사산을 따라 걷는 8코스로 나눠진 157km 길이의 길이다. 서울둘레길의 가장 큰 매력은 도시 가까이에 위치한다는 점이다. 둘레길로 유명한 제주도와 지리산은 뛰어난 경관에도 불구하고 거리가 멀어 서울시민들이 이용하기 어렵다. 서울둘레길은 23개의 지하철역과 연결돼 있어 시민들은 큰 마음을 먹지 않더라도 간편하게 둘레길을 걸을 수 있다. 서울둘레길 운영위원회 이기백 위원장은 “원형으로 이어져 시계방향 혹은 반대방향으로 자유롭게 걸을 수 있고, 곳곳이 지하철과 연결돼있어 자신이 걷고 싶은 길을 선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도시와 산의 조화는 둘레길의 또 다른 백미다. 보통의 둘레길과 달리 서울둘레길은 산이 아닌 도시를 돈다. 둘레길 코스가 대도시에 있는 것은 세계적으로 흔치 않다. 이는 산으로 둘러싸인 서울의 특성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서울둘레길은 산에서 그치지 않고 강, 마을 등 서울 곳곳을 따라 길이 나있다. 서울의 외곽을 돌며 우리나라의 수도 서울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둘레길을 걸으면서 각 코스별 3개의 스탬프를 모을 수 있다. 표지판을 따라 걷다 보면 낯선 곳에서 우체통이 기다리고 있다. 우체통 속 24개의 스탬프를 모두 모으면 서울둘레길 완주 증명서가 주어진다. 서울시 푸른도시국 김승렬 주무관은 “단순히 둘레길을 조성한 것만으로는 시민들이 둘레길을 이용하지 않는다. 스탬프 투어를 하면 자신의 고유번호가 담긴 완주 증명서가 나온다”며 “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둘레길 완주의 동기를 부여했다”고 말했다. 이 때문일까. 서울둘레길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뜨겁다. 2014년 11월에 조성된 이래 현재까지 8천 명이 넘는 시민들이 둘레길을 완주했다. 8천 명의 시민들을 둘레길로 이끈 매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서울둘레길의 숨겨진 매력을 직접 확인해보자. 
  

▲ 가양대교로 이어진 둘레길
둘레길에서 일상의 여유를 만나다

구파발역에서 내리자 떨리기 시작했다. ‘길을 잘 찾을 수 있을까.’ 걱정은 곧 사라졌다. 둘레길 안내표지판이 지하철 안팎 곳곳에 있기 때문이다. 역을 나서자 구파발역 주변은 공사가 한창이다. 망치소리를 들으며 걷다보면 어느덧 앵봉산에 오를 수 있다. 둘레길을 안내하는 주황색 리본이 나무 곳곳에 걸려있어, 리본을 따라 걸으면 산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둘레길을 느낄 수 있다.

산의 오르막과 내리막이 마치 굴곡진 삶과 유사하기 때문일까. 흔히 인생을 등산에 비유한다. 하지만 둘레길은 산의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둘레길을 따라 걷는 산길은 경사가 급하지 않다. 등반과 달리 정상의 주변을 걷는 둘레길은 대개 길의 경사가 완만하다.

둘레길을 걷다보면 삶의 긴장이 풀린다. 역 주변에서부터 들리던 망치소리도 어느덧 들리지 않는다. 완만한 경사로 인한 여유 덕분에 화창한 날씨 속 주위 경치도 잘 감상할 수 있다.

산길을 따라 걷다 고개를 돌리면 도심이 보인다. 서울둘레길의 중심은 산정상이 아닌 도심이다. 둘레길에서 만난 이문규(72) 씨는 “서울에 살면서도 서울의 구획을 모르고 살았다. 둘레길을 걷다보면 내 주변과 내가 사는 서울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산에서 내려오자 둘레길은 인도로 연결된다. 도심 속 둘레길은 길이 따로 나있지 않은 경우도 있어 길을 잃기 쉽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라. 주황색 리본만 따라가면 된다. 도심속 둘레길은 도시 곳곳에 조성된 숲길과도 이어진다. 메타세콰이어길이 대표적인 예다. 김예림(22) 씨는 “빌딩에 둘러쌓인 도시 속에서도 나무들 사이로 비포장 흙길을 걸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둘레길을 걷다보면 어느덧 한강이 보인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가양대교는 7코스의 마지막 부분이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 본 한강은 유유히 흘러간다. 바로 옆에서 숨가쁘게 지나가는 차와 대비된다. 강바람을 맞으며 걸으니 쌓인 피로가 풀린다. 둘레길을 통해 일상 속에서 잊었던 여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 앵봉산을 가로지르는 둘레길
▲ 주민들이 즐겨찾는 불광천 코스
한양을 걷다, 역사를 걷다

서울 속에는 또 다른 서울이 있다. 바로 조선의 수도 ‘옛 서울’인 한양이다. 한양도성길은 서울의 내사산을 아우르는 옛 도성을 걷는 도성길이다. 서울시는 한양도성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아름다운 경관뿐만 아니라 역사적 가치 또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양도성길은 아름다운 경치와 역사를 동시에 만날 수 있는 매력적인 둘레길이다.

예로부터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곳을 동천이라 불렀다. 한양도성에서는 북악산에 위치한 백석동천 등 여러 동천들을 볼 수 있다. 백석동천의 맞은편에 있는 인왕산에는 안평대군이 자신의 꿈에서 본 신선계의 모습과 비슷해 별장을 지었다는 무계정사터도 있다. 이처럼 한양도성길에서 보는 내사산의 경치는 손에 꼽힐만큼 아름답다.

성벽은 지혜를 담고 있다. 적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포대의 각도를 근거리와 원거리로 조절할 수 있도록 설계한 근청환과 원청환, 아군의 은밀한 통행을 위해 비밀리에 만든 암문 등 한양도성은 선조들의 지혜를 보여준다.

성벽에는 역사도 담겨있다. 한양도성에서 보이는 다양한 축성양식은 각 시기를 비추는 거울이다. 조선을 건국하며 자연석과 흙으로 성을 쌓은 태조, 도성을 규격화된 석성으로 보수하며 국가 체계를 쌓은 세종, 병자호란 이후 청의 관심이 떨어진 틈을 타 성을 강화한 숙종까지 성벽은 과거를 말해준다. 성벽에 담긴 역사를 해설해주는 서울KYC 도성길라잡이의 연호진(68) 씨는 “일반 둘레길과 달리 한양도성길에는 역사를 알기 위해 오는 사람들도 많다”며 “역사 현장을 직접 몸으로 체험하면서 느끼는 것이 한양도성길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한양도성길을 방문한 김형도(43) 씨는 “책에서 읽을 때보다 직접 걸으며 해설을 들이니 조선의 역사가 더 와 닿았다”고 말했다.

한양도성길은 청와대와 인접해 군사지역으로 분류돼 사진촬영이 제한된다. 한양도성길의 아름다움, 이번 봄에 직접 가서 눈에 담아보자.


글.사진_ 최진렬 기자 fufwlschl@uos.ac.kr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