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 서울시립대신문 제689호에서는 우리대학 도시인문학연구소가 발간한 『서울의 인문학』을 조명하며 도시인문학에 대해 알아봤다.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 사업 완공이 이제 1년을 앞두고 있다.
서울시는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 사업 공모를 통해 건축가 비니 마스의 ‘서울수목원’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은 서울을 어떻게 바꿔 놓을까. 그리고 서울의 무엇을 담아낼 수 있을까. 서울시립대신문은 도시인문학적 시각으로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를 조명해봤다. -편집자주-

 
우리나라 서울역에 전례 없는 건축물이 들어설 예정이다. 바로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이다. 서울시는 지난해 ‘서울역 7017’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 중 철거 예정이던 서울역 고가도로를 보존한 채 공원으로 재조성하겠다는 계획에 세간의 관심이 쏠렸다.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 사업은 초기 극심한 반대를 샀다. 시민들에게 철거 예정인 고가도로를 보수·보강 공사를 통해 공원으로 재활용하는 이유를 납득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 주변 건물과 비슷한 눈높이로 산책을 할 수 있는 미국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
▲ 프랑스 파리 12구역에 버려진 철도를 재활용한 고가 공원 프롬나드 플랑테
▲ 건물 사이를 가로지를 수 있는 프랑스 파리의 프롬나드 플랑테
서울역 고가도로의 모범적 선례 ‘프롬나드 플랑테’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는 언론을 통해 일명 ‘한국형 하이라인 파크’로 소개됐다. 뉴욕에 있는 하이라인 파크는 고가 폐선 철로 위에 조성된 공원이다. 1934년 개통한 하이라인은 1980년 이후 이용되지 않고 방치돼 주변을 낙후시키고 우범지역으로 만들었다. 2000년대 하이라인을 철거하려 했지만 몇몇 민간단체가 나서 이곳을 공원으로 보존하는 프로젝트를 제시했다. 약 10년간의 노력 끝에 2009년 개장한 하이라인 파크는 이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보다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는 명소가 됐다.

사실 하이라인 파크가 최초의 고가 공원은 아니다. 우리대학 도시공학과 김기호 교수는 “흔히 뉴욕의 하이라인을 전례로 드는데, 파리의 프롬나드 플랑테가 더 오래된 것으로서 고가도로 공원의 모범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1980년대 파리시는 낙후된 파리 동북부 지역을 발전시키는 일환으로 폐쇄된 철로를 공원으로 바꾸는 계획을 시도해, 세계 최초로 고가 공원을 실현시켰다.

프롬나드 플랑테가 이색적인 이유는 고가 위에 공원이 세워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고가의 하부 아치형 공간에 상점이 들어갈 수 있도록 건설돼, 다양한 상점이 즐비한 것도 큰 볼거리다. 예술의 도시 파리답게 다양한 아뜰리에, 카페가 아치마다 꾸며져 있다.

1990년대 고가 공원이 만들어지자 오히려 고가 하부 공간이 음침한 환경으로 바뀌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파리동부개발공사는 파리의 전통적인 수공업자나 예술가들의 상점을 아치 하부공간에 입점시켰다. 곧 프롬나드 플랑테에는 수공업자, 예술가들이 모여들었고 지역수공업의 전통을 계승하는 공간으로 발전했다.

서울시는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와 함께 고가도로와 연결되는 남대문, 만리재 등의 활성화를 위한 계획도 진행하고 있다. 김 교수는 “고가도로 공원화는 주변 지구의 활성화를 위한 발판이라 할 수 있다”며 “하이라인 파크가 민간단체 및 주민 등이 주도하여 공공과 협조를 통해 만들어졌다면 파리의 프롬나드 플랑테는 공공기관의 주도로 만들어졌다. 서울역 고가도로 역시 서울시가 주도해 이뤄지는 사업이란 점에서 파리의 모델이 더 적절한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 현장설계 당선작 ‘서울수목원’(서울시청 제공)
▲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를 진행 중인 현장
▲ 1980년 5.15 서울역 집회 당시의 모습
서울의 이미지였던 산업유산 현대사의 상징까지

“서울의 지붕”, “내일을 딛는 거보.” 1970년대 언론들이 고가도로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한 표현이다. 당시 우리나라의 경제는 급속도로 성장했으며, 서울도 덩달아 폭발적으로 팽창했다. 자연스럽게 서울시 도심과 외곽사이의 교통량도 늘어나게 됐다. 서울시는 늘어난 교통량을 감당하기 위해 도심을 통과하는 교통과 시내 교통을 분리시키려 했다. 이에 도심의 공중을 통과하는 고가도로 건설을 계획했다. 이후 고가도로를 짓기 위한 대규모 토목 사업이 연이어 실시됐다. 고가도로의 수가 곧 서울시의 발전정도와 비례했던 시기였다. 자연스레 시민들이 고가도로에 보내는 시선은 미래도시의 상징물이었다.

특히 서울역 고가도로는 교통의 중심지였던 서울역을 나서자마자 볼 수 있었던 첫 건축물이기 때문에, 처음 서울의 이미지를 얻게 되는 구조물이다. 우리대학 국사학과 염복규 교수는 “서울역 고가도로는 공장이나 산업시설은 아니다. 하지만 1960~1970년대 한국의 ‘산업화시대’의 중추인 서울역 주변의 교통을 원활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건설됐다는 점에서 한 시대를 증언하는 넓은 의미의 산업유산”이라고 밝혔다.

또한 서울역 고가도로는 우리의 현대사를 가장 강렬히 보여줬던 상징물이기도 하다. 1980년 5월 서울역 일대가 마비된 사건이 있다. 당시 계엄령에 대한 불만이 쌓이고 쌓여 약 10만명의 대학생 및 시민들이 민주화를 외치며 서울역 광장 앞으로 모여들었다. 바로 5.15 서울역 집회 일명 ‘서울역 회군’이다. 당시 상황을 담은 사진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대부분의 사진에서 한 건축물이 함께 담겨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로 서울역 고가도로다. 서울역 광장을 메운 수많은 인파와 그 위로 떠 있는 고가도로가 강하게 대비됨으로써 서울역 회군의 이미지를 더욱 또렷하게 한다.

서울시는 ‘2009년 서울 시내 고가차도 연차별 철거 계획’을 발표하며 12개의 고가도로의 철거를 결정했다. 해당 고가도로가 도시 경관을 해치고, 주변 지역을 낙후시킨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고가도로 건설 당시 도심이었던 지역이 쇠퇴함에 따라 교통량이 크게 준 이유도 있었다. 이에 따라 아현 고가도로, 청계천 고가도로 등이 철거됐다. 김기호 교수는 “그동안 서울시내에서 청계천고가도로 철거 이후 아주 많은 고가도로들이 헐려 사라졌기에, 서울역 고가도로가 지니는 유산적 가치는 상대적으로 더 커졌다”고 평가했다.

▲ 프랑스 파리의 프롬나드 플랑테 하부 아치형 구조
토폴로지적 공간 도시가 공간을 기억하는 법

서울역 고가도로는 서울역에 있는 고가도로이기에 가치가 생기는 것만은 아니다. 서울역 회군을 찍은 한 장의 사진이 우리에게 주는 이미지처럼 개개인의 기억이나 느낌이 때때로 공간을 결정하기도 한다. 바로 ‘토폴로지적 공간’이다. 토폴로지란 공간을 단일한 실재가 아니라 다양한 공간적 요소들의 상호관계로 간주하는 것이다. 도시는 시민들이 삶을 살아가는 공간이다. 도시에서 토폴로지적 공간은 시민들의 다양한 경험을 포함한다. 

그렇기에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이 하나의 랜드마크가 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가도로와 상호관계를 이룰 서울역 일대의 공간에 대한 고민이다. 프롬나드 플랑테가 인근지역의 수공업자들을 통해 정체성을 확고히 한 것 역시 토폴로지적 공간에 대한 고민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김기호 교수는 “고가도로 하나만 보존하기 보단 주변과의 연계 속에 보존 및 상호기여를 해야 더 나은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_ 김태현 기자 taehyeon119@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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