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구성원이 직접 총장을 선출하는 ‘총장직선제’를 시행하고 있는 대학은 거의 없다. 총장직선제를 시행하고 있더라도 교수들만 투표권을 가질 뿐 학생들은 투표권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신대는 지난 3월 모든 학생과 교수가 투표권을 가지는 총장선거를 치렀다.

지난 26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신학과 경덕환 씨는 “모든 학내 구성원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총장선거방식을 도입한 한신대는 너무나도 자랑스런 학교였다”는 말로 발언을 시작했다. 하지만 자랑스러움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사회는 11% 지지를 얻어 3위에 그친 강성영 후보를 총장으로 선출한 것이다. 이에 반발한 학생들은 이사회와 20시간동안 대치하며 대화를 요구했다. 고성과 폭력이 벌어졌다. 이사회는 학생들을 ‘특수감금’이라는 명목으로 고발했다. 그동안의 일을 전한 경덕환 씨는 “우리를 오해하지 말아달라. 우리가 원하는 것은 대화와 설명”이라며 발언을 마무리했다. 임춘우 교수협의회장도 “교수협의회는 이사회의 총장선임이 완전 무효임을 선언한다”며 학생들에게 힘을 보탰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총장실이 있는 장공관으로 향했다. 장공관 정문의 유리는 대자보로 뒤덮여 있었다. 학생모임, 교수협의회, 이사회, 교직원노조 등 교내 구성원들 각자의 입장을 밝히는 대자보였다. 대자보가 너무 많아 그 자리에서 모두 읽을 수 없겠다는 생각에 사진만 찍어놓고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는 ‘가짜총장’이라는 글이 선명하게 붙어있는 총장실이 있었고 학생들은 강성영 총장의 출근을 저지하기 위해 돌아가며 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장공관을 나오자 천막이 눈에 들어왔다. ‘민주천막’이라는 이름표가 붙어있는 천막은 학생들의 농성장이었다. 농성장에서 바라본 장공관은 높기만 했다. 학생들은 그 장공관을 바라보며 한 달째 대화를 요구했지만 학교는 답이 없었다. 장공관 정문에 붙어있는 “학생 여러분이 행정업무를 방해하고 있으니 그만두라”는 안내문이 유일한 대답이었다. 벽에 대고 얘기하는 기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기간의 공허한 외침에 지친 학생들이 있지 않냐는 질문에 사회대 학생회 김계호 회장은 “지금도 농성장에 있으면 학생들이 먹을 것을 사다주곤 한다. 마음은 있지만 시험기간이기도 해서 함께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한신대에서 돌아오고 얼마 후, 한신대 학생처에서 농성에 참여하고 있는 학생들의 집으로 ‘가정통신문’을 보냈다는 소식이 들렸다. 학생들이 농성을 계속한다면 교내 징계와 사법처리의 대상이 될 수 있으니 학부모들이 학생들을 설득해달라는 내용이었다. 학부모들은 ‘그럴 수 없다’며 회신을 보냈다. 어버이날 다음날이었던 지난 9일, 학부모들이 한신대를 방문한다는 소식에 다시 한신대로 향했다.

학부모들은 점심시간에 성명서와 직접 만든 간식을 나눠주며 선전활동에 나섰다. 성명서를 받은 한 학생은 “이런 일로 부모님까지 오시게 됐냐”며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이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학부모들은 고소를 취하하고 대화의 장을 열 것을 요구했다. 사회복지학과 은혜진 학생의 아빠라며 자신을 소개한 은재식 씨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교 측이 어떤 노력을 했는지에 대한 설명 없이 갑작스레 날아온 거의 협박에 가까운 통보에 많은 학부모들이 분개한 것”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무거운 주제와 발언에도 기자회견 분위기는 무겁지만은 않았다. 농담도 던지고 간간히 웃음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주형우 씨는 “중·고등학교 때는 부모님이 학교에 오시면 겁이 났는데 오늘은 너무 힘이 난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장공관 앞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이들의 대화를 들으며 웃음이 지어졌지만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모습이였다.

장공관 1층에는 ‘당신이 그렇게 걷고 또 걸으면 언젠가 사람들이 길이라고 부르겠지’라는 문구가 적힌 액자가 있다. 학생들에게 투표권을 주기는커녕 총장직선제를 시행하는 대학조차도 찾아보기 어렵게 된 지금, 한신대 학생들은 새로운 길을 걸어가고 있다.


윤진호 기자 jhyoon2007@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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