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대학들이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경쟁력 강화와 특성화에 주목하며 연구성과를 올리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온갖 억압과 부당한 사건들이 은폐되고 있다. 대학 내에서 억압을 받고 권리를 잃어버린 대학원생들은 문제를 알리는 것조차 쉽지 않다. 서울시립대신문은 지난 ‘부모 대학원생’ 기사에 이어 대학원생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 일부 대학원생들의 모습을 조명했다.  -편집자주-

 
엄숙하고 고고하게만 느껴졌던 상아탑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사건들이 수면위로 떠오르면서 대학원생들의 일상이 녹록치 않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인분교수’와 같은 상식 밖의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할 때 이외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대학원생들의 생활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강태경 총학생회장(이하 강), 동국대학교 일반대학원 신정욱 총학생회장(이하 신),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총학생회 염동규 학술국장(이하 염)과 우리대학 이공계 대학원생 A씨를 각각 만나봤다.  

대학원생들의 숨겨진 현실

염: 기대했던 수준의 학문 탐구가 이뤄지지 않는다. 발제형식으로 진행하는 수업이 많은데 이런 수업은 대학원생이 주도해 수업을 진행하게 된다. 수업 시간에는 다른 사람이 요약한 글을 듣고 이에 대해 얘기하는데 토론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이상한 말을 하거나, 10분간 침묵이 이어지거나.

A: 9시에 연구실에 출근해 빠르면 6시쯤 퇴근한다. 평일만 출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시간이 별도로 정해져있지 않으니 실제로 일을 하는 시간은 일주일에 40~50시간 이상이다. 열흘 동안 연구실에서 한발자국도 나가지 않은 적이 있다. 먹고 자고 씻는 것을 연구실에서 모두 해결한 것이다. 극단적인 예지만 그만큼 연구생의 노동 강도는 심한 편이다.

강: 2014년도에 고려대학교에서 대학원생들에 대한 인권 실태조사를 했는데 자료에 따르면 문제제기를 했던 학생들의 절대다수는 해결이 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자발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학생들도 소수다. 일단 학위를 받으려면 지도교수와 갈등을 빚으면 안 되고, 나아가 학계에서도 밉보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대학원생들의 학위는 교수에게 달려있고, 학계에 문제를 제기하면 되려 비판받는 분위기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계에서의 관례와 관습을 거스를 수 있는 용기를 갖기가 굉장히 어렵다.

염: 외부에서는 대학원생 사회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내버려 두자는 분위기가 만연한 것 같다. 대학원생의 처우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의 마련을 촉구하려면 대학원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해야 한다. 여론을 형성해서 권리보장을 요구를 해야 하는데, 이에 보다 효과적인 매체가 웹툰이라 생각해 대학원생들의 사연을 공모받아 웹툰을 제작하고 있다. 매 회마다 대학원생들의 억울한 사연을 담은 웹툰이 어느새 12화까지 연재됐다. 처음에는 사연을 모집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연재가 진행되고 웹툰이 점점 알려질수록 다양한 사연들이 많이 올라오는 추세다. 

일은 직장인만큼, 대가는 학생만큼

A: 우리끼리 일은 직장인처럼 하고 돈은 학생처럼 받는다고 얘기한다. 대학원생은 연구실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이 과정에서 대학원생은 직장인이 보내는 시간만큼 또는 그 이상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낸다. 하지만 대학원생이 받는 대우는 등록금과 월 단위로 지급되는 인건비 수준으로 1년에 약 1천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최소한 일을 직접 한 학생이 충분한 대우를 받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 만큼의 대가를 지급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강: 장학금은 학문을 장려하기 위해 지급되는 돈이다. 노동을 하느라 본인의 시간을 빼앗기기보다는 장학금으로 그 시간을 보전해 대신 공부하라는 학문 장려금이다. 실제로 조교들이 임금으로 받아야 할 돈을 장학금으로 지급하는 것은 명목과 실질이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학교는 고수하려 하고 있다. 조교의 업무를 노동으로 인정하면 학교에서 4대 보험과 상여금을 지급해야하기 때문에 지출해야하는 돈이 늘어난다.

 
권리장전, 대학원생의 방패가 될 수 있을까

2014년 10월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와 전국 13개 학교 대학원생 총학생회가 대학원생의 기본 권리를 보장·보호하기 위해 ‘대학원생 권리장전’을 발표했다. 대학원생이 누려야 할 연구노동의 권리, 지도교수 변경의 권리, 휴식의 권리 등을 명시한 권리장전은 현재 일부 대학원에서 채택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강: 권리장전이 도입되면 대학원생들이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기준이 생길 것이다.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총학생회에서는 학교와 공동으로 합의해 권리장전을 교칙에 준하는 것으로 만드는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 또한 대학원 신입생들에게 권리장전에 대한 교육을 제공할 것이다. 권리장전을 알리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신: 권리장전의 한계는 구속력이 없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권리장전은 구속력이 있는 법령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원생이라는 특정 집단에 대한 권리나 효력을 위한 조항을 학교 규정에 포함하려는 움직임이 충분히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로써 대학원생들이 권리보장을 요구할 때 근거항목으로서 요구할 기준이 생길 것이다. 권리장전을 통해 우리 삶이 단번에 바뀌지는 않겠지만 대학원생들의 권리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권리장전을 근거로 쓸 수 있다는 것이 큰 의의가 될 수 있다.

대학원생들이 권리를 인정받을 방법

신: 작년에 설문과 간담회를 진행했는데 조교가 근로자라는 공감이 어느 정도 형성된 것 같다. 굉장히 어렵고 조심스러운 일이지만, 조교노조는 충분히 설립이 가능하다고 본다. 해외사례 중 조교노조가 형성된 대학들이 있다. 단적인 예로 뉴욕대 같은 경우 조교들의 월급인상을 노사협약을 통해 이뤄냈다. 다른 나라의 사례이지만 불가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났지 않나.

염: 이전에 본교 원총에서 간식 나눔 행사를 진행하면서 ‘연구노동자 여러분 힘내세요’라는 문구를 쓴 적 있다. ‘연구노동자’라는 말에 웃는 사람들이 몇 있었다. 대학원생을 노동자로 인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합의가 필요할 것 같다. 대학원생은 공부를 하는 사람이지 연구노동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경우도 존재한다. 대학원생의 역할에 대한 보편적 합의가 형성되지 않는 이상 조교노조가 유의미한 활동을 벌이기에는 제한이 있을 것이다.
사실상 학생회도 잘 운영되지 않는 상황이다. 대학원생의 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독립적인 기구들이 있고 그 기구들이 세가 커져서 서로 연대한다면 최선이겠지만 현실적으로 힘들 것 같다. 학생회조차도 잘 운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신: 대학원 학생회를 하면서 놀랐던 점은 신문에 등장하는 극단적인 부분이나 억압적인 분위기들이 생각보다 가까운 사례들이라는 것이다. 그런 일을 겪었을 때 주변에 많이 알려주면 좋을 것 같다. 적극적으로 공론화하는 것 까지는 아니더라도 주변에 털어놓아 많은 얘기가 나눠져서 이런 것들을 문제시하는 사람들이 생기면 서서히 바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리_ 박소정 기자 cheers710@uos.ac.kr
그림_ 웹툰 ‘슬픈 대학원생의 초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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