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 5·18 민주묘지에 조성된 행방불평자 묘역
기념일이 많은 5월. 어린이날이나 어버이날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동안 우리는 몇 번의 5·18 민주화 운동 기념일을 막연하게 흘려보냈을까. 국가보훈처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불허한 것, 대통령을 비롯한 각계 인사들의 참여 여부 등으로 잡음이 많았던 제36주기 5·18 기념식. 이를 맞아 광주에 다녀왔다. 

국립 5·18 민주묘지(이하 민주묘지)는 제36주기 5·18 기념식을 위해 모인 인파로 가득했다. 어린 자녀들과 동행한 부모들, 교복차림으로 견학을 온 학생들이 상당수 눈에 띄었다. 이번해로 세 번째 광주를 방문했다는 한동수(77) 씨는 “어린 학생들이 기념식 현장에 많이 방문했다. 혹자는 어린아이들이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뭘 알겠냐는 말을 하더라. 그러나 이러한 역사 현장에 방문을 하면 선조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됐다는 사실을 보다 생생하게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1시간이 채 되지 않는 기념식이 끝나고 난 뒤에도 참배객들의 발길은 계속 이어졌다. 묘역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계단식 언덕 위에 펼쳐진 수많은 묘들이 눈에 들어왔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통해 흔히 들었던 ‘민주화를 위해 쓰러져간 수많은 목숨’들의 무게가 먹먹히 와 닿았다. 묘역의 오른편에는 행방불명자 묘역이 조성돼 있었다. 유해를 찾지 못한 사람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묘비만이 설치된 공간이었다. 작게 난 길을 따라 사진과 묘비를 찬찬히 살펴봤다. 노인부터 앳된 학생들까지 여러 얼굴들이 보였다. 사진 없이 무궁화로 대체된 묘비들도 곳곳에 있었다. 새소리가 들리는 묘역에는 소중했던 사람의 묘 앞에서 술을 따르며 눈물을 훔치는 사람들, 말없이 묘역을 둘러보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참배를 위해 조용히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5·18 민주화운동의 주요 사적지를 지나는 518번 버스를 탔다. 영창과 법정을 재현해 놓은 5·18 자유공원(이하 자유공원)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인적 드문 시의 외곽에 위치해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자유공원은 여느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아파트 단지 옆에 자리하고 있었다. 영창과 법정 앞에는 밧줄에 포박된 채 트럭에 끌려가는 시민들의 모습과 그 뒤를 삼엄하게 지키고 있는 계엄군의 실제 크기 모형이 있었다. 열악한 영창에서의 수감생활과 그 곳에서 행해진 고문들에 대해 설명하는 해설사의 목소리에는 30년이 지나도 해소되지 않은 울분이 서려있었다.

흔히 5·18 민주화 운동을 말하면 시민들에게 계엄군이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만을 떠올리는데, 자유공원은 시위 이후 시민들의 수감생활까지도 생각하게 했다. 자유공원의 해설사는 “수감생활로 인한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현재 광주는 전문적인 트라우마 센터가 부족한 상태다. 지난해에만 50명의 민주화 운동 유공자가 농약으로 자살했다”며 유공자들에 대한 지원 시스템이 부재한 현실에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우리가 5·18 민주화 운동의 반쪽만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반쪽짜리 기억에 갇혀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중요한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드는 시간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 무렵, 씁쓸함과 안타까움을 뒤로하고 5·18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장소인 금남로를 찾았다. 버스에서 내려 금남로까지 가는 길은 여러 프랜차이즈 상점들이 즐비했고, 상점 일대는 외식과 쇼핑을 즐기러 온 사람들로 붐볐다. 프랜차이즈 거리 바로 옆에 자리한 금남로 민주광장에서는 조촐한 음악회가 진행되고 있었다. 무대에서 흘러나오는 잔잔한 노래와 노을을 배경으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광경은 흔히 민주화 운동을 생각하면 연상되는 장면과는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평화롭기만 한 광장 한 구석에는 마치 이곳이 30년 전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난 곳이라는 것을 애써 상기시키려는 듯 민주항쟁 알림탑, 과거 민주인사들을 고문했던 민주의 종각터 등 여러 민주화 운동 상징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5월 18일. 그리고 각자만의 바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많은 사람들은 학창시절의 수업이나 여러 매체를 통해 접한 민주화 운동에 대한 지식들을 잠시 떠올리는 것으로 이 날을 보낸다. 너무나도 익숙해져버린 민주주의를 누리며 평화로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 공간만은 계속해서 역사를 기억하고 사람들에게 외치고 있었다.


글·사진_ 박소정 기자 cheers710@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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