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드라인 전무, 담당자들마다 말 달라
대자보 허가제, “자의적 판단 우려돼”


“학부 사무실에서 대자보의 내용 확인을 요구했고, 승인을 받기 위해 글의 요지에 대한 갑론을박을 해야 했다”. 이형수(경영 12) 씨는 이번달 초 경영학부 사무실에 경영대학 임시학생총회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대자보 게시를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경영학부 사무실과의 의견충돌로 2~3일의 시간이 소요됐다.

우리대학은 현재 교내에 게시물을 부착할 때 학교 측의 허가 도장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허술한 게시판 허가제도 게시판 이용 혼선 빚어져

현재 각 건물의 게시판에 대자보와 같은 게시물을 부착하기 위해선 학생처로부터 도장을 받아야 한다. 외부 광고물을 제한하고, 게시물의 게시 기간 및 수를 조율하기 위해서다. 학생처 안용휘 주무관은 “학생처의 도장을 받으면 학내 게시판 어디에나 게시물을 부착할 수 있다”며 “도장은 게시물의 게시 기간을 명확히 하는 동시에 청소근로자들이 불법 게시물로 혼동하지 않기 위한 장치”라고 설명했다. 예외적으로 학생회관 정문의 학생 게시판은 총학생회 도장을 인정하고 있다.

학생처의 승인을 받지 않은 게시물은 모두 불법 게시물로 간주된다. 청소근로자 A씨는 “학부·과 사무실 도장이나 총학생회 도장이 찍혀 있어도 학생처 도장이 아닌 이상 모두 떼는 것이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학생처의 도장만 받으면 게시물을 부착할 수 있다는 원칙만 존재할 뿐 게시물 부착에 대한 어떤 가이드라인이나 규정도 존재하지 않는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게시판 이용에 혼선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이형수 씨는 “학생회관 게시판의 경우 총학생회의 도장을 받으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다른 건물의 게시판은 누구의 도장을 받아야 할지 몰라 경영학부 사무실에 대자보 부착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경영학부 사무실 관계자는 “자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대자보 및 게시물 부착에 관한 심사를 한다”고 밝혔다. 반면 경영학부와 같이 미래관 건물을 쓰는 다른 과는 경영학부 사무실과 다른 입장을 보였다. 통계학과 박민선 조교는 “통계학과의 경우 따로 가이드라인이 없고 우선 학생처로 연락하라는 안내를 먼저 한다”고 말했다. 가이드라인이 전무하기 때문에 같은 미래관 건물을 사용하는 학과임에도 게시물 부착에 대한 절차가 다른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대자보, 검열로 비춰질 수 있어 홍보물과 대자보 구분할 필요 있어

일반 게시물과 달리 대자보는 의견을 개진하기 위한 글이기 때문에 허가제도가 검열로 비춰질 수 있다. 또한 익명으로 대자보를 게시하기 어렵다는 점도 지적된다. 이에 대해 학생처 안용휘 주무관은 “선정적, 폭력적, 선동적인 글들을 거르는 역할을 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이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전무한 실정이다. 학교 게시판에 대자보를 붙인 경험이 있다는 성치화(철학 10) 씨는 “학교 측에서 내용 확인에 관한 기준을 정확히 밝히지 않은 이상 전적으로 믿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상우(물리 14) 씨 역시 “학교에서 내용을 검토한다는데 누가 자유롭게 글을 개진할 수 있겠냐”며 “학교의 눈치가 보여 표현 수위를 낮추는 것부터가 표현의 자유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우리대학과 같이 게시판, 특히 대자보에 대해 부착 허가 제도를 실시하는 대학은 무척 드물다. 성균관대에 재학 중인 박성우(22) 씨는 “대자보를 붙이는데 학교의 허가가 필요한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수위가 높거나 그릇된 논지의 대자보에는 이를 반박하는 대자보가 달리기도 한다”며 “이 자체가 자유로운 소통의 장이 되는 것인데 허가제는 그것을 원천부터 차단하는 행위 같다”고 눈살을 찌푸렸다. 이형수 씨 역시 “경희대학교의 경우 대자보를 게시하는 데 특별한 절차가 없다”며 “열 몇 개의 대자보가 일렬로 늘어선 경희대를 보니 부러웠다”고 말했다.


게시판 부착 허가제도는 게시판 이용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제도이다. 하지만 홍보물과 대자보를 같은 게시물로 보는 이 제도는 대자보가 갖고 있는 표현의 자유를 고려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C(국문 15) 씨는 “대자보의 의미가 퇴색될 것 같아 걱정이 된다”며 “차라리 대자보를 위한 공간을 따로 만들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승인 기자 qkznlqjffp44@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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