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정목 문고’에 앉아있는 故손정목 교수
우리대학에서 누군가의 이름을 딴 공간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지만 중앙도서관 2층 한켠에는 ‘한국 제1호 도시학자’라고 불린 도시행정학과 故손정목 명예교수의 이름을 딴 ‘손정목 문고’가 있다. 손 교수가 기증한 약 6천권의 논문, 단행본, 정기간행물 등의 자료를 보관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이곳에 들어가면 오래된 책 냄새와 함께 손 교수의 흉상이 우리를 맞아준다. 이 공간의 주인공인 손정목 교수는 지난 9일 세상을 떠났다.

1928년 경주에서 태어난 손정목 교수는 공직 생활을 하던 중 “농업 중심 사회였던 우리나라가 도시시대를 맞이할 것”이라는 동료의 이야기를 듣고 도시 공부를 시작한다. 도시에 관련된 학문이 자리잡기 전이었던 1960년대 당시, 손 교수는 일본 신문을 스크랩하며 자료를 모아야 했다. 손정목 문고에 가득한 자료들은 이 무렵부터 모으기 시작한 것이다. 1970년 서울시로 자리를 옮긴 손 교수는 본격적으로 서울 개발에 참여한다.

서울은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큰 변화를 겪었다. 손 교수는 이 시기의 한 가운데인 1970년부터 1977년까지 서울시 기획관리실장, 도시계획국장, 내무국장을 거치며 서울의 변화를 주도한다. 이후 우리대학의 부교수로 임용돼 정교수, 학부장, 대학원장을 맡아 당시 갓 신설됐던 도시행정학과의 초석을 다졌다. 손 교수의 장남인 중앙대 손세관 교수는 “강의 중간에 시립대에 대한 자긍심과 학생들의 가능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셨다고 들었다. 학교를 워낙 사랑하셨던 분”이라고 전했다.

우리대학에서 17년을 보내고 1994년 정년퇴임한 손 교수는 서울의 이야기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우리대학 근처의 아파트 단지로 이사해 머무르며 걸어서 학교에 와 손정목 문고에서 글을 썼다. 점심과 저녁은 교내 식당에서 해결하며 연구를 계속하다 저녁에서야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대표 저서인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손 교수는 서울의 역사를 이야기의 형식으로 읽기 쉽게 풀어냈다. 2003년 출판된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시리즈가 최근까지도 개정판이 나올 정도로 꾸준히 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깊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통계, 지도, 기사, 단행본, 사진 등 손 교수가 모아온 전문적인 자료들이 이야기 중간중간에 들어있다.

손 교수의 마지막 책은 『손정목이 쓴 한국 근대화 100년』이다. 이 책에는 “위에서 내려진 명령에 충실했다고 말하기에는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럽다”는 글과 함께 손 교수가 1960년 3·15 부정선거에 연루돼 공직을 잃었던 이야기도 담겨 있다. 이렇듯 손 교수의 책에는 서울이 급격히 발전하던 시기의 밝은 이야기뿐 아니라 독재정권 시기의 어두운 뒷이야기도 기록돼 있다. “지구상에서 전례를 찾을 수 없는 급격한 도시화가 진행된 서울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만큼 그 시대를 충실히 기록하겠다”는 책 서문에서 손 교수가 어떤 심정으로 책을 써나갔는지 엿볼 수 있다.

도시는 계속해서 변화한다. 손 교수가 활동했던 시기가 개발시대였다면, 지금은 그 반대인 도시재생이 주목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 교수의 기록이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그 기록을 통해 오늘날의 도시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공학과 정석 교수는 “도시는 생명체와 같다. 교수님은 한창 발전하던 청년기의 도시를 기록하셨고 지금의 도시는 중장년기라고 할 수 있다. 교수님의 기록이 없었으면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청년기의 기억이 없어졌을 것”이라고 의의를 말했다.

손 교수는 다음 책으로 역대 서울시장들의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제 그 이야기는 들을 수 없게 됐다.


윤진호 기자 jhyoon2007@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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