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지하철 2호선은 청년들의 눈물과 분노로 얼룩져있다. 강남역과 구의역에서 발생한 안타까운 죽음 때문이다. 누군가의 죽음에 슬퍼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 움직임은 평소와는 사뭇 다르다. 추모의 열기가 쉽사리 수그러들 것 같진 않아보이기 때문이다. 추모 현장에서는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목소리도 터져 나온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청년들이 있다. 서울시립대신문에서는 강남역과 구의역 사건을 바라보는 청년들의 목소리에 주목해봤다. 더불어 그들의 목소리가 우리사회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지 현 사태를 진단해봤다.  -편집자주- 

 
두 사건의 내막

지난 달 17일 강남역 인근 상가의 화장실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가해자는 화장실에 숨어 여성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화장실을 찾은 남성들은 보내고 7번째로 들어온 피해자인 여성을 흉기로 수차례 찌른 후 빠져나갔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살해 이유에 대해 가해자는 “여성들이 나를 무시해서 그랬다”고 밝혔다. 곧 경찰에서는 “가해자는 정신질환이 있다. 정신질환자가 저지른 묻지마 범죄다”며 사건을 규정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강남역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로 바라보고있다. 우리사회 권력구조 속에서 자리 잡고 있는 여성에 대한 차별이 범죄를 촉발했다는 것이다. 한편 강남역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로 보는 시각은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며 남성혐오를 조장한다는 반발도 일었다.

불과 10여일 뒤인 28일 구의역에서도 한 청년이 죽음을 당했다. 구의역 9-4번 승강장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김 군은 다가오는 열차를 피하지 못했다. 김 군은 ‘서울메트로’의 파견업체인 ‘은성PSD’의 비정규직 직원이다. 김 군의 죽음은 파견직, 비정규직 직원에 대한 열악한 처우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서울메트로는 위험한 수리 업무를 하청업체인 은성PSD에 맡겼다. 또한 은성PSD는 이를 비정규직 직원에게 저임금으로 싼값에 떠넘겼다. 실제로 김 군에게만 발생한 사고는 아니었다. 김 군과 같이 스크린도어 수리를 하다 사고를 당한 은성PSD 비정규직 직원의 사고는 이미 2차례나 더 있었다.

공감이 만들어낸 추모

많은 사람들이 강남역과 구의역을 찾아 두 청년의 죽음을 추모했다. 추모의 한가운데에는 청년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 강남역, 구의역 사건은 서로 다른 원인에 의해 발생했지만, 두 사건을 대하는 청년들의 태도는 유사했다. 청년들은 이 사건을 단순히 피해자만의 문제로 바라보지 않았다. 도시인문학연구소 이현재 교수는 “청년들은 두 사건의 피해자들과 같은 위치에 놓여있다. 강남역 사건은 젊은 여성들, 구의역 사건은 젊은 직원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다”며 이어지는 추모 현상을 설명했다.

많은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강남역 10번 출구에 모여 강남역 사건을 추모했다. 이곳의 추모 물품들은 훼손될 우려가 있어 서울시청으로 옮겨졌지만, 사람들의 발길은 계속됐다. 서울시청 지하 1층 한 켠에 마련된 추모공간에는 강남역에 붙여져 있던 포스트잇과 하얀 국화가 공간을 가득 매우고 있다. 포스트잇을 통해 사람들은 피해자에 대한 애도와 사건에 대한 생각을 담아냈다. 포스트잇에는 “나는 운이 좋아서 우연히 살아남았다”, “다음 생에는 우리 같이 대한민국 여성으로 태어나지 마요”라고 적혀있었다. 추모의 공간에서 만난 이정민(29) 씨는 “여성이 겪는 공포, 두려움의 원인은 결코 이번 사건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며, 일상생활에서 위협에 노출되고 제압당한 현실에 있다. 가해자는 정신질환자지만 여성을 기다렸고 여성이 아니었다면 피해자도 살해되지 않았을 여성혐오 범죄”라며 인터뷰를 마치고 포스트잇을 붙여나갔다.

구의역 사건이 발생한 9-4 승강장 앞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청년들은 구의역 사건을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구의역에서 만난 이대희(38) 씨는 “현재 근무하고 있는 회사도 은성PSD과 유사한 구조가 많다”며 스스로를 비정규직 직원라고 밝혔다. 이어 “안전보다 이윤을 추구하는 사회가 파견과 비정규직을 만들어 냈다. 젊은 친구들이 주로 비정규직인데 위험에 노출된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며 상황을 전했다.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에 구의역 사건에 대해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며 김 군을 애도하는 운동도 일었다.

추모는 사고 현장에서만 국한되지 않았다. 대전, 대구, 부산 등 전국에서 두 사건을 애도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강남역 10번 출구’, ‘구의역 9-4 승강장’이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도 개설됐다. 해당 페이지에서는 추모 현장의 사진, 동영상뿐 아니라 관련 기사들이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 ‘여성혐오 세상을 뒤엎자’ 공동행동 중 평화의 행진을 하고 있는 모습
변화를 요구하는 움직임

“침묵하지 않겠습니다”, “남은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킬게요”, “차별없는 공평한 세상에서 살고 싶습니다.” 강남역과 구의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포스트잇들이었다. 청년들은 사건을 발생시킨 원인을 밝히고 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추모 공간에서 애도, 분노를 표현하는 것을 넘어 집회, 시위를 열기도 했다.

이현재 교수는 “사회 사안에 무관심하고 주체성이 약했던 청년들이 목적을 쟁취하기 위한 움직임을 시작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며 “청년들은 스펙 쌓기 경쟁에 매몰되어 있었고 사회는 바뀌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비관해 왔다. 하지만 경쟁에 이겨 끝나는 것이 아니고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느껴 연대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6일 홍대에서는 ‘여성혐오 세상을 뒤엎자’를 제목으로 여성혐오에 저항하는 모두의 1차 공동행동이 있었다. 강남역 10번 출구 페이스북 페이지 운영자와 페미당당, 노동당성정치위원회, 서울대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 등의 14개의 단체가 함께 주최했다. 약 200명의 사람들이 함께했고 머리에는 양성평등을 상징하는 보라색 띠가 둘러져있었다. 참여자들이 직접 나서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반-여성혐오 자유발언대’에 나선 한 참가자는 떨리지만 각오서린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여성으로서 받아왔던 차별에 대해서 침묵했고 상대방을 이해시키고 설득하기 위한 불편함을 참아왔다. 그동안의 부끄러운 과거가 강남역 사건을 만들고, 나를 이 자리에 서게 만들었다. 한 번의 사건, 집회가 아니라 우리는 일상 속에서 계속해서 불편함을 제기하고 함께 연대해야 한다.” 이어진 ‘평화의 행진’에서는 참여자들의 목소리가 홍대 곳곳에 전해졌다. 이들은 멈추지 않고 “여성혐오 세상을 뒤엎자”,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다”고 외쳤다.

같은 날 구의역에서는 ‘추모 행진’이 있었다. 추모 행진은 지난 2일부터 7일간 평일 8시에 진행돼 매일 밤 촛불로 구의역을 밝히고 있었다. 시작한지 4일이 흘렀지만 약 50명의 여전히 많은 사람이 함께했고 ‘서울지하철 비정규직 노동조합’도 있었다. 구의역 9-4번 승강장 앞에서 묵념과 함께 시작된 행진은 김 군의 장례식장까지 약 40분 동안 이어졌다. 엄숙한 표정으로 걸음을 이어나가는 그들의 손에는 ‘인건비 아끼려다 사람을 죽였다’, ‘자회사는 또 다른 용역이다, 직접 고용하라’ 피켓이 들려있었다. A씨(21)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차별이 만연한 우리사회에서 언젠가는 발생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이번 사건을 알리고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며 발길을 이어갔다.


글·사진_ 류송희 기자 dtp02143@uos.ac.kr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