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침묵에는 견디기 힘든 무게가 있다. 그런 침묵에 시선을 두는 것은 가능한 한 피하고 싶은 일이다. 하지만 여기, 그런 침묵에 꿋꿋이 시선을 두는 영화가 한 편 있다.

유미코는 동네 친구였던 이쿠오와 결혼해 아들 하나를 낳고 단란하게 살고 있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던 날, 유미코는 남편이 전차에 치여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다. 유일한 목격자였던 전차운전사는 경적과 브레이크 소리에도 남편이 뒤돌아보지 않았다고 전한다. 자살임이 틀림없지만 유미코는 도무지 동기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아들은 태어난 지 3개월밖에 되지 않았고 둘에게 갚기 힘든 큰 빚이 있는 것도 아니다. 무엇이 남편을 자살로 이끌었을까.

시간이 흘러 유미코는 재혼을 하고 새 남편이 살고 있는 어촌으로 집을 옮기게 된다. 세월이 흐르고 사는 곳도 바뀌었지만 유미코는 여전히 전남편의 자살을 이해하려고 애쓴다. 일언반구도 없이 사라진 남편 뒤에 남겨진 침묵의 무게를 견디려고 하기 때문일까. 이 영화는 재혼한 남자와의 갈등도 새로운 이웃과의 갈등도 없으며 오로지 죽은 남편을 곱씹는 유미코의 모습만이 두드러진다.

‘남편이 자살한 이유를 반추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라고 요약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줄거리를 가진 <환상의 빛>은 감정의 절제에 주력한다. 대사의 수와 행동이 적어 인물이 어떤 감정을 지니는지 우리는 단지 추측할 뿐이다. 마치 유미코가 남편의 자살 동기를 추측하는 것처럼 말이다. 관객이 유미코의 마음을, 유미코가 남편의 마음을 추측하는 과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는 결론적으로 침묵을 견뎌야 했던 유미코의 심정을 느낄 수 있게 만든다.

▲ 유미코가 쓸쓸히 비극을 반추하고 있다.

타인의 마음을 알기 위해 인간은 사력을 다하지만 그것은 풀리지 않는 문제다. 인간은 타인의 마음을 확실히 알 수 없으며 자신의 경험에 의존해 추측할 뿐이다. ‘이유를 말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는 말처럼 이야기를 해주면 마음이라도 편할 텐데 이 영화는 그 이유를 결코 말해주지 않는다. 풍경도 인물도 대답 없이 흘러가기만 한다. 죽은 이유를 곱씹는 것은 남겨진 자들이 떠난 자들을 이해하기 위한 발버둥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보지 않는 뒷모습에 대고 질문을 던지고 또 던진다. 그 질문이 메아리처럼 그대로 되돌아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타인의 마음에 대해 유미코도 관객도 답을 찾을 수 없다. 우리가 유일하게 알 수 있는 것은 대답이 없어도 질문을 던지는 것, 무기력한 그것이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환상의 빛>은 불현듯 남겨진 자에 대한 이야기이며, 그 중에서도 비극적 순간이 아닌 비극을 겪은 자의 세월에 대해 집중하는 이야기이다. 1995년 작인 이 영화는 일본의 소설가 미야모토 테루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 한 작품이며 오는 7월, 20년 만에 국내 최초 개봉한다.

 


김준수 수습기자 blueocean617@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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