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지난 5월 맨부커상을 수상하면서 국내가 떠들썩했습니다. 우리나라 소설의 위상과 긍지가 올라가는 계기가 되기도 했죠. 한강 작가뿐만 아니라 『채식주의자』의 번역가인 데보라 스미스(Deborah Smith)와 그의 번역도 극찬을 받으며 이슈가 됐습니다. 그의 번역의 어떤 특징이 ‘좋은 번역’이라는 말을 듣게 만들었을까요. ‘번역학’의 관점에서 그의 번역을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좋은 번역을 위한 논쟁

번역학은 말 그대로 번역을 위한, 번역에 관한 학문입니다. 번역학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으면 조금 이질적인 느낌이 들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번역 담론보다는 ‘번역 기술’에 더 많은 초점이 맞춰져왔기 때문입니다. 번역 기술은 번역학에 속한 하위 개념입니다. 번역학은 번역 기술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번역이 왜 필요한지부터 번역 윤리까지 다룹니다. 그 중에서도 『채식주의자』의 번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학 번역’에 주목해야합니다.  

문학 번역에서 가장 많고 가장 고질적인 논쟁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 논쟁은 문학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이라는 점에 주목합니다. 미국에서는 번역가가 외국어 도서를 번역할 때, 영미 문학 느낌을 주는 현지화를 거쳐야 하느냐에 대해 격렬한 논쟁이 있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동양의 책을 번역한다고 했을 때, 동양 특유의 미학이나 문체를 번역가가 최대한 살린다면 동양을 모르는 영미권 독자들에게는 어려운 도서로 남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문학 번역이 실패하는 경우 중 하나는 원어를 너무 의식해서 번역이 딱딱해지는 경우입니다. 그렇다고 번역가가 영미 문학의 느낌을 살리면서 원문을 변형하다보면 독자들은 읽기 쉽겠지만, 동양 특유의 미학이 사라지고 ‘해외 소설’의 의미와 가치가 사라지기 쉽습니다. 두 번역 모두 정작 소설을 읽는 주체인 영미권 독자들에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이죠. 따라서 번역학에서는 이 두 극단의 중간점을 찾는 것을 중요시합니다. 중간점을 찾을 때 좋은 번역이 탄생한다는 것입니다. 데보라 스미스의 번역도 원작자인 한강의 개성적인 문체를 죽이지 않고 영미권 독자들이 읽기에도 적합한 번역을 해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 소설 『채식주의자』의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와 작가 한강
번역서, 원작과 같을 순 없어요

또 하나의 논쟁은 문학 번역서와 원작이 별개냐에 대한 것입니다. 이는 문학 자체의 특수성에서 비롯됩니다. 문학 번역은 단순히 언어를 치환하는 것이 아닌 번역가의 문학적 역량과 문학적 해석이 필요합니다. 번역에 있어 문학의 가장 큰 난점은 해석이 열려있다는 점입니다.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에서 ‘님’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독자들마다 생각이 다릅니다. 사랑하는 이, 절대자, 존재 등등 다양한 해석이 있습니다. 이 해석이 옳은가 그른가는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해석의 다채로움과 풍부함 그 자체가 중요합니다. ‘사과’를 ‘apple’로 번역하는 일대일 번역 기술에서 그 직관성이 살아나는 특징과는 이질적이죠. 그래서 번역가들은 이러한 다채로움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많은 각주와 해설을 달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만으로는 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번역가들 또한 원작자가 아닌 한 명의 독자로서 번역을 출발하기에 나름의 해석을 동원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지는데요. 이에 따라 번역학에서는 번역서와 원문을 무조건 같다고 보면 안된다고 경고합니다. 

이 때문에 번역학에서는 유사성을 중요시합니다. 번역가는 기본적으로 원문과의 동일성보다는 유사성에 초점을 맞춥니다. 예를 들어 한시를 우리말로 번역할 때, 한시 특유의 기법인 각운까지 살리진 않습니다. 오히려 원문을 함께 보여주면서 각주를 통해 따로 설명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이러한 유사성에 기반한 개념인 ‘짝’도 있습니다. 문학적 장치, 표현들을 번역하는 것은 불가능해 번역자는 최대한 유사한 짝을 찾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데보라 스미스의 번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영미 문화권에 비교적 잘 알려진 김치, 비빔밥 등의 표현은 그대로 표현했지만 갈비를 ‘rip meat’, 닭볶음탕을 ‘a thick chicken soup’로 번역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번역가 나름대로의 표현을 추가해 번역가가 의도한 효과를 나타냈습니다. 데보라 스미스가 추가한 표현 중에는 원문보다 더 시적인 표현들도 있습니다. 문장으로 표현된 원문을 간결한 단어들로 병렬적으로 열거해 번역하는가하면 ‘입고 있던 옷이 온통 피에 젖었어’라는 구절을 번역할 때, ‘blood in my mouth…(입에 피를 물면서…)’라는 표현을 추가해 극적인 효과를 나타냈습니다.

이처럼 번역학에서는 번역가의 자율성을 인정하며 번역을 하나의 2차 창작물의 영역으로 볼 가능성도 남겨둡니다. 즉 ‘원문과 번역서를 혼동하지 말 것’, 그리고 ‘외국어를 공부해서 원문을 읽는 것이 가장 좋다’고 강조합니다.


국승인 기자 qkznlqjffp44@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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