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대 문화상 소설 부문 당선작

안양예술고등학교 박 세 원


 
진돗개의 하얀 털 위에 색칠하듯 붉은 선혈이 흘러내렸다. 종을 모르는 누런 개는 살이 파여 있는 진돗개의 앞다리를, 근육이 도드라진 뒷다리를 물어뜯으며 공격했다. 진돗개는 대응할 힘이 남아있지 않은지 몸을 축 늘인 채 가만히 떨기만 했다. 누런 개의 이가 달빛을 받아 빛났다. 첫 경기는 완전히 끝난 것처럼 보였다. 누런 개가 마무리 지으면 끝을 맺을 터였다.

“물어 임마. 모가지를 콱 물란 말이야!”
김 씨 아저씨가 고함을 질렀다. 아저씨의 응원을 들었는지 누런 개는 목에 걸린 파란 끈을 휘날리며 진돗개를 덮쳤다. 그렇지, 환희하는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런 개는 하늘로 날아오를 것처럼 점프를 하더니 진돗개의 목덜미를 물었다. 진돗개는 크게 짖으며 날뛰기 시작했다. 비명에 가까운 소리였다. 누런 개는 진돗개의 목덜미를 쉽게 놓지 않았다. 압도적인 힘이었다. 진돗개의 움직임이 점점 느려졌고, 울음소리는 희미해졌다. 건장한 남자가 투견장 안으로 들어가 진돗개의 목줄을 잡고 끌었다. 누런 개가 진돗개의 목을 놓지 않자 남자는 몽둥이로 주둥이를 때려 떼어놓았다. 누런 개가 우는 소리를 냈다. 남자와 진돗개가 투견장을 떠나자 그곳에는 누런 개만 남았다. 헥헥거리는 누런 개의 이빨 틈 사이로 하얀 털과 조그만 살점이 끼어있는 것이 보였다. 오늘 첫 경기가 끝났다. 누런 개의 승리였다.

팔각형이 되게끔 세워진 철조망 안의 공간은 성인 여섯 명이 서면 꽉 찰만큼 좁았다. 그 공간은 두 마리의 개가, 많게끔 세 마리의 개들이 생과 사를 나누는 곳이었다. 이긴 개는 약간의 치료를 받고 다음 경기를 준비해야 했고, 패배한 개는 어떻게 되는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알고 있는 사람은 노인과, 그를 도우는 남자가 전부일 터였다. 내게 투견장을 안내해준 김 씨 아저씨도 모르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것 봐, 누런 개가 그렇게 잘 싸운다니까.”
김 씨 아저씨가 으스대고는 돈을 받으며 자리를 떴다. 진돗개에 삼만 원을 걸었던 유 씨 아저씨는 괜히 김 씨 아저씨가 소리를 질러서 누런 개가 힘을 냈다는 둥 그것만 아니었다면 진돗개가 이겼을 거라는 둥 비아냥거렸다. 의자에 앉아있는 노인에게 많은 인파가 몰리기 시작했다. 그 중에 김 씨 아저씨도 속해있었다. 노인은 검은 바구니에서 돈을 꺼내 내기에 이긴 사람들에게 돈을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김 씨 아저씨는 오만 원에서 오만 원을 더한 십만 원을 바지춤에 넣고는 한바탕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 돌아왔다. 아저씨가 십만 원을 주머니에서 꺼내보이자 다음 경기가 시작함을 알리는 알림이 울렸다. 불개와 풍산개의 경기였다. 김 씨 아저씨와 유 씨 아저씨가 내 어깨를 번갈아가며 두드려주었다. 고개를 끄덕이다 건너편에 앉아있는 노인과 눈이 마주쳤다. 정면에서 보니 주름이 조금 들어있었다.

나는 불개에게 삼만 원을 걸었다. 오늘 월급을 받으며 생긴 보너스였다. 풍산개의 체격이 불개보다 조금 컸지만 딱히 걱정되진 않았다. 겨우 두 번 밖에 되지 않았지만, 불개는 내가 돈을 걸면 곧잘 이기고는 했다. 남자가 불개와 풍산개를 동시에 끌며 투견장 안으로 들어섰다. 개들의 뒷발이 바닥에 끌려 작게 모래바람이 일어다. 불개는 목을 옥죄는 끈이 답답한 듯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개는 내 쪽을 바라보며 살짝 짖었다. 알림이 다시금 울리자 남자가 두 개에게서 손을 놓았다. 동시에 사람들의 환호가 시작되었다. 먼저 불개가 붉은 털을 휘날리며 풍산개의 뒷다리를 물었다. 불개의 이빨에 맺힌 피가 묘한 희열을 느끼게 했다. 탄성과 탄식이 오묘한 차이로 오고갔다. 나는 정면에서 나부끼는 모래바람에 눈을 감았다가 떴다. 불개와 풍산개의 신음이 동시에 들렸다. 왼쪽 손등에 불그스름한 털이 살포시 내려앉았다.

투견장을 처음 찾은 날은 초봄의 비가 조금씩 내리던 세 달 전이었다. 15층 주택의 완공을 기념하는 회식이기도 했고, 2016년 첫 회식이기도 했다. 회식이 끝난 뒤, 헤어지는 길에 같은 작업 팀이던 김 씨 아저씨가 내 어깨를 붙잡았다. 유 씨 아저씨도 함께 손을 흔들었다. 코끝이 조금 붉어진 김 씨 아저씨가 2차 회식을 갖자고 제안했고, 나의 스무 살을 축하한다며 마셨던 술에 기분이 좋았던 나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렇지 않아도 울적하던 때였다. 건물을 별 탈 없이 완공한 것은 분명 기뻐해야 할 일이었지만, 다른 업무가 들어오려면 적어도 일 주는 기다려야 했다. 그동안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 줄어든 것이었다.

김 씨 아저씨와 유 씨 아저씨가 향한 곳은 다른 호프집도, 클럽도 아니었다. 차는 내비게이션에도 나오지 않는 산길을 달렸다. 불빛이 희미한 가로등이 길을 비추었을 뿐, 약간의 나무 말고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부터 많은 차가 붉은 라이트를 내뿜으며 우리 차를 뒤따랐다. 그렇게 십 분을 달려 나온 것은 어느 개 농장이었다. 농장 구석에서는 이미 환호성이 들리고 있었다. 죽이라는 어느 남성의 낮은 목소리에 뒷목이 서늘해졌으나, 그 불안감은 금방 해소되었다. 두 마리의 개가 작은 경기장에서 서로의 몸을 뜯고 있었다. 개의 으르렁거림과 고통스러워하는 몸부림에 눈이 자꾸 갔다.

나는 유 씨 아저씨를 따라 철장에 갇혀있는 개들을 둘러보았다. 수많은 개가 좁은 공간에서 침을 흘리거나 목을 축이고 있었다. 두 마리의 개가 있으면 꽉 찰 정도의 좁은 철장이었다. 나와 유 씨 아저씨는 경기를 준비하고 있는 개들을 찾아갔다. 불개와 약간 회색의 잡종이었다. 유 씨 아저씨는 불개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소백산의 늑대와 개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설화가 있다고, 어디까지나 설화에 불과한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말이 좋아야 설화였지, 자신의 기원도 모르는 평범한 잡종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마른 장미처럼 검붉은 색의 눈동자 안에 내 모습이 담겼다.

불개는 쫑긋 솟아있으면서도 말려져 있는 귀부터 동그란 발바닥까지 전부 갈색 계열의 붉은 색을 띄고 있었다. 불개는 자신의 털보다 조금 연한 색의 혀를 내보이며 침을 흘렸다. 무언가에 쫓기고 있는 듯 불안한 눈빛이었다. 잡종 개도 마찬가지였다. 날카롭게 깎인 발톱으로 철장을 긁어댔다. 철장에 새겨져 있는 발톱 자국이 선명했다. 개들의 몸통 중간 중간에 연한 초록색의 물감 같은 게 발려져 있었다. 불개가 잡종 개보다 특히 불안해했다. 오늘이 첫 경기라고 유 씨 아저씨가 말했다. 나는 불개의 떨림이 어디서 자주 본 듯 익숙했다. 자신의 몸을 조금 낮추고, 꼬리를 높게 세워 경계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불개는 곧 맞이할 자신의 운명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나는 불개의 눈높이에 맞춰 무릎을 낮췄다. 동물을 다루는 프로그램에서 어렴풋이 보았던 개와 소통하는 방법이었다. 불개는 콧김을 씩씩 내뿜더니 두 앞발을 멈췄다. 불개는 혀를 집어넣은 뒤 나를 또렷이 바라보고 있었다. 유 씨는 금방 조용해지는 불개를 보고 감탄했다. 나는 그날 밤, 불개에게 돈을 걸었다. 불개가 이길 것이라는 확신이 든 것은 아니었다. 일종의 응원이었다. 한 달, 두 달이 지난 뒤에도 불개에게 돈을 걸었다. 불개는 총 세 번의 경기를 모두 이겼다. 그때마다 전율이 오소소 돋았다. 그 밤 이후로 더 이상 불개를 따로 눈을 마주할 수 있는 기회는 없었지만, 불개는 투견장에 들어설 때마다 내가 있는 쪽을 바라보며 짖었다. 우연일 지도 몰랐지만 간만에 친구가 생긴 느낌이 썩 나쁘지 않았다. 

집에 들어서자 알코올의 알싸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엄마는 드라마를 안주 삼아 브라운관 텔레비전을 보며 깔깔대고 있었다. 나는 잘 구워진 통닭 한 마리를 엄마의 탁상 앞에 올려놓았다. 그제야 엄마는 내가 온 것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냉장고에 있던 술은 모두 버렸는데, 언제 또 술을 사온 모양이었다.

“우리 아들, 언제 왔어?”
엄마의 목소리가 길게 늘어졌다. 소주 냄새가 진득하게 났다. 나는 닭다리를 두 개 뜯어서 엄마의 앞에 덜어주었다. 보너스도 보너스지만, 불개가 풍산개를 가볍게 이겨 받은 삼만 원으로 산 통닭이었다. 엄마가 소주를 곁들여 통닭 한 마리를 다 먹었을 즈음, 나는 품에 숨겨두었던 종이를 꺼내 엄마에게 보여주었다. 집 주인 아줌마가 우편함에 놓고 간 종이였다. 엄마가 집에 들어온 후에 집 문에 붙이고 간 모양이었다. 엄마는 집 주인 아줌마의 이름을 보고 흠칫 놀랐다. 종이에는 세 달 동안 밀린 월세를 갚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내쫓겠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나는 월세가 밀렸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왜 말 안했어요?”
엄마는 술을 계속 따르며 드라마를 봤다.
“엄마?”
엄마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단지 술에 취해 알 수 없는 말을 할 뿐이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가슴살을 소금장에 푹 찍어 먹었다. 너무 짰다.
엄마가 언제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아주 먼 옛날부터, 엄마에게서 풍겨져 나오는 알코올 냄새는 익숙한 것이었다. 어쩌면 내가 엄마 뱃속에 있을 적부터, 탯줄을 통해 경험했을 지도 모른다. 나는 그 냄새가 익숙해졌다. 알코올과 위액이 섞여 나는 역겨운 냄새도 내게는 아무런 타격을 주지 않았고, 때로는 그 냄새가 편안함을 안겨주기도 했다. 엄마가 유일하게 멀쩡한 정신일 때는 아침이었다. 속이 쓰린 듯 콩나물국과 동태국을 끓였고, 절반도 먹지 않고는 거실 바닥에 누워 잠을 잤다. 엄마가 먹고 남은 것이 나의 아침이었다. 그새 엄마는 바닥에 쓰러져 잠을 잤다. 나는 식탁을 치운 뒤 엄마의 옆자리에 따라 누웠다. 파리한 얼굴이었다. 엄마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괜스레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엄마는 내게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에, 아버지의 행방을 물으면 엄마는 나를 따라 울었을 뿐이다. 

돈이 필요했다. 엄마와 내가 살고 있는 이 집을 지켜야만 했다. 내가 학교를 자퇴하지 않고 계속 다녔으면 엄마는 좋아졌을까, 이 년 전에 내 친구와 그 부모에게 무릎 꿇고 고개를 숙이던 엄마가 떠올랐다. 나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엄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통장을 꺼내 남은 잔액을 바라보았다. 밀린 월세를 갚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소금의 짠 맛이 아직까지도 혀끝에 남은 듯 텁텁함이 느껴졌다.

휴대폰에서 울리는 알림에 잠에서 깼다. 새가 아침을 맞아 지저귀고 있었다. 엄마는 어제 남았던 통닭을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콩나물국을 끓이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엄마와 마주보며 밥을 먹었다. 간만에 함께하는 식사였다. 엄마는 어젯밤의 일이 기억나지 않는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는 술에 취하면 당시에 있었던 일을 대부분 잊어버렸다. 그렇게 나도 잊어버리지 않을까, 하고 불안했다. 엄마는 다시 이부자리에 누웠다.

간단히 설거지를 한 뒤 집을 나왔다. 투견장을 가기 위함이었다. 오늘은 정오에 경기가 있다고 김 씨 아저씨가 일러주었다. 홀로 버스를 타고 향하는 길은 낯설었다. 도심을 벗어나자 시골의 분위기가 펼쳐졌다. 창문을 열면 떡의 고소한 냄새나 쌀을 볶는 냄새가 날 것 같았다. 홀로 투견장을 간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종점 세 정거장 전에서 내려 택시를 잡았다. 기사 아저씨는 주소를 말하는 나를 보며 한참을 웃었다. 자기가 왕년에는 투견으로 이백만 원을 벌었다고 했다. 기사의 초라한 행색 때문에 믿기진 않았지만 실로 어마어마한 액수에 입이 떡 벌어졌다.

오천 원 남짓한 값을 주고 택시에서 내렸다. 조금 이른 시간에 도착한 탓인지 인적이 보이지 않았다. 밤의 농장과 낮의 농장은 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다. 달빛을 받은 개들의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위태로운 하울링이 농장에 가득 했던 것에 비하면 낮의 농장은 잔잔한 편이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랬다. 입구에 들어서자 물을 마시는 노인과 축 늘어져 있는 개가 보였다. 개는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거칠게 숨을 쉬고 있었다. 개 옆에는 밧줄과 열기가 식어가고 있는 러닝머신이 있었다.
“또 왔네? 일찍부터 뭔 일이여. 시작하려면 아직 한참 삼십 분은 남았는디.”
노인은 손을 툭툭 털며 말했다. 나를 알아보는 모양이었다. 쓰러져 있는 개와 밧줄에 자꾸 눈길이 갔다.

“아……그냥 개나 볼까 해서요. 그런데 이 밧줄이랑 러닝머신은 뭐에요?”
“아, 이거.”
노인은 개의 앞다리를 두어 번 건드렸다. 근육이 도드라지게 나타난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눈에 띄게 보였다.

“훈련이여, 훈련. 매일 한 시간 씩. 개목에다가 밧줄을 딱 걸어가꼬, 죽지 않을 만큼만 뛰는거여. 게임에서 안질라면 요 정도는 해야지.”
노인은 끄응 하고 소리를 내더니 개를 자신의 어깨에 걸쳤다. 개가 노인의 어깨에 애처롭게 매달렸다. 나는 노인의 뒤를 따르려 했으나 발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개는 풀린 눈으로 계        속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사육장 안은 여전했다. 두 마리가 들어가면 꽉 찰만한 공간에 개들이 힘겹게 몸을 누이고 있었고, 물을 마시며 마른 목을 축이고 있었다. 개들은 나와 노인을 보며 짖기 시작했다. 노인은 약간 넓은 철장에 개를 넣어놓고는 다시 문을 잠갔다. 개는 벌떡 일어나 자기 앞에 놓인 물을 핥기 시작했다. 상처 가득한 개의 얼굴에 조금씩 생기가 돋아나고 있었다. 노인이 사육장을 떠나자 나는 불개를 찾았다. 불개는 이번에도 역시 경기를 대기하는 개들이 있는 철장에 있었다, 이 철장은 다른 철장보다 조금 넓었다. 불개는 철장에 몸을 기댄 채로 자고 있었다. 철장과 맞대고 있는 머리가 꽤나 불편해 보였다. 불개는 십 분이 넘어도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섭섭했지만 굳이 철장을 흔들어 깨우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불개가 상대할 개를 바라보았다. 그 개는 다른 개보다 눈에 띄게 큰 개였다. 불개도 체격이 큰 편에 속했지만 그 개와는 차이가 두 뼘 정도 났다. 핏불테리어였다. 핏불테리어는 불개나 다른 개들과는 달리 전문 투견으로 길러지는 개였다. 검은 피부에 날카로운 이빨이 특징이었다. 투견은 비슷한 체격의 개들과 겨루게 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이대로라면 불개가 질 것이 분명했다. 핏불테리어는 사나워 한 번 문 것은 결코 놓지 않는다는 기사를 본 적도 있었다. 해외에서는 물려 죽은 사람도 많았다. 불개가 저 검은 개에게 목을 뜯기고, 피를 흘리는 장면이 상상되지 않았다. 불개가 진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불개의 네 다리와, 몸 구석구석에 나 있는 생채기를 바라보았다.

“어이, 나와 봐.”
노인은 무엇이 들어있는지 모를 주사와 약을 들고 다시 나타났다. 나는 잠시 불개 주위에서 떨어졌다. 불개는 노인이 자신의 이름을 불러도 깨어나지 않았다. 노인은 철장을 발로 차기 시작했다. 불개는 움츠리며 잠에서 깨어났다. 노인은 그제야 살짝 웃음을 지어보였다.

“일로 와, 일로.”
노인은 작은 문을 열어 개에게 손을 내밀어 보였다. 개가 드나드는 곳이 아닌, 노인의 손이 드나드는 곳이었다. 부스스한 눈빛으로 불개는 노인에게 천천히 다가가 발을 내밀었다. 노인은 발을 붙잡고는 약을 발랐다. 연한 초록색이 번졌다. 불개가 부르르 떨자 노인은 숨겨놓았던 주사를 꺼냈다. 뾰족한 심을 본 불개는 발을 빼려고 짖으며 자신의 몸을 잡아당겼지만, 노인은 불개의 발을 놓아주지 않았다. 주사의 날카로운 심이 불개의 앞발에 파고들었고, 담겨있던 노란 액체는 불개의 혈관 속으로 스며들어갔다. 불개는 철장이 들썩일 정도로 몸을 떨었고, 높은 신음소리가 선명히 들렸다. 일순간 사육장 안의 울음소리가 잦아들었다.

“뭘 넣은 거예요?”
노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활짝 웃으며 불개가 괴로워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올라간 입 꼬리가 주름에 닿을 정도였다.

“뭘 넣은 거냐고요!”
노인은 작은 문에 손을 집어넣어 불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불개는 떨면서도 으르렁거렸다. 빼낸 노인의 손에 붉은 털이 끼어있었다.

“애기가, 불개가 싸우긴 징하게 잘 싸우는데. 오늘 게임 그냥 나가면 죽어. 뒤진다고. 저거 봐, 저런 놈이랑 싸우면 모가지 뜯기고, 피 콸콸 흘리고. 불개가 그냥 뒤지게 납둬? 아니여, 그건 안 될 일이지. 내가 오늘 게임에 불개에 돈을 걸었으니까 지면 안 돼. 그래서 약을 맞힌 거야. 요번 게임은 싹 다 저 개한테 걸거여. 몸뚱아리로나 성격이로나 불개가 상대가 안 돼. 그니까 불개한테 돈을 걸면, 그게 다 우리 돈이여, 우리 돈. 니한테만 특별히 알려주는 겨, 배당도 톡톡히 쳐줄게.”

 
노인이 소리 나게 웃은 뒤 자리를 떠났다. 사육장에 그의 웃음소리가 울렸다. 십 분 뒤면 투견 경기 시작이었다. 나는 노인의 두 눈이, 비틀거리는 불개를 보며 빛나던 두 눈이 두려웠다. 언제든지 나를 잡아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노인이 그랬던 것처럼 작은 문에 손을 넣어보았다. 불개는 사납게 짖으며 손을 물려 달려들었다. 불개는 나와 눈을 마주쳐도 진정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 행동이 화나게 했던 것 같기도 했다. 불개가 짖기 시작하자 다른 개의 웃음소리는 금방 그쳐들었다. 나는 주머니 깊은 곳에 남아있는 팔만 원을 어루만졌다. 마찬가지로 주머니 깊은 곳에서 불개의 죽음에 대한 불안이 똬리틀기를 시작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노인에게 팔만 원을 맡긴 뒤 투견 경기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불개에게 걸었다. 오후의 투견장은 밤의 투견장과 별다를 것 없이 사람들로 붐비었다. 나는 비교적 일찍 도착해 투견 경기가 잘 보이는 곳에 앉았다. 간간히 불개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전과는 다르게 건장한 남자가 두 개의 철장을 들고 투견장에 들어섰다. 조금 녹이 슨 철장에는 불개가 사납게 짖고 있었고, 새 물건인 것이 티가 나는 철장에는 핏불테리어가 불개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사람들의 환호성이 시작되자, 알림이 울렸다. 나는 평소와 달리 환호를 지르거나 박수치지 못했다. 불개는 내 쪽을 바라보지 않고 경기를 시작했다. 먼저 상대방에게 달려든 것은 불개였다. 불개가 붉은 발을 내세우며 달려들었다. 불개는 기세 좋게 먼저 앞다리를 물었으나 곧 튕겨져 나갔다. 불개는 쉬지 않고 공격했다. 일방적인 공세였지만 불개는 개에게 별다른 상처를 입히지 못했다. 핏불테리어의 앞다리와 뒷다리에 이빨 자국이 희미하게 찍혔지만, 큰 상처가 아니었다. 오히려 불개의 입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물 때 이빨이 뒤틀린 모양이었다. 당하고만 있던 핏불테리어가 불개에게 일순간 달려들었다. 불개도 적잖이 당황한 듯 개의 무게에 뒤로 나자빠지고 말았다. 검은 색과 붉은 색이 섞이며 모래바람이 일렁였다. 순간 비명이 들렸다. 사무치고, 고통스러운 신음이었다. 신음의 주인은 다름 아닌 불개였다. 핏불테리어가 날카로운 이빨로 불개의 목을 수놓고 있었다. 피가 순식간에 새어나왔다. 불개의 붉은 털에 가려지지 않고 또렷한 붉은 색을 흘려내고 있었다. 불개는 신음을 내면서도 물은 앞다리를 놓지 않았다. 이빨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있던 곳이었다. 개의 긴 목에 튀어나온 힘줄이 선명해질수록 불개의 힘줄도 선명해졌다. 피가 불개의 몸 삼분의 일을 뒤덮을 즈음, 와그작 하고 꺾이는 소리가 났다. 대나무가 꺾이는 소리와 비슷했다. 핏불테리어는 불개의 목을 놓으며 땅에 떨어졌다. 앞다리가 각이 지도록 꺾여있었다. 개는 불개의 털을 뱉어내며 울었다. 뱉어낸 털에 붉은 선혈이 섞여 있었다. 경기의 끝을 알리는 알림이 울렸다. 불개의 승리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핏불테리어는 더 이상 싸울 수 없었다.

“뭐야, 아직 안 끝났어!”
“맞아요. 아직 검은 개는 싸울 수 있어요! 저 새끼도 싸울 수 없는 건 마찬가지인데, 왜 경기를 끝내긴 왜 끝내!”   
핏불테리어에게 돈을 건 사람들의 성화가 이어졌다. 그 때문에 남자도 개를 데리러 투견장에 들어가지 못했다. 나는 쓰러져 있는 불개를 바라보았다. 내 쪽을 바라보며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불개가 정말 죽을 수도 있었다. 아직까지도 불개가 죽는 장면이 상상되지 않았다. 다만 불개는 내 눈 앞에서 죽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불개가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불개가 모래에 발자국을 수놓을 때마다 피가 흘러내렸다. 낑낑대는 핏불테리어 위로 몸을 던졌다. 불개는 핏불테리어의 목을 물기 시작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남자는 몽둥이를 들고 투견장 안으로 들어섰다. 한 경기에 두 마리의 개를 잃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불개의 승리였지만, 어찌 경기에 진 것은 핏불테리어가 아닌 불개처럼 보였다. 불개는 목에 커다란 붕대를 감았다. 조금 더 치료가 늦었으면 과다출혈로 경기장에서 모래를 맞으며 죽을 지도 몰랐다. 도박의 승리자는 노인과, 나와, 용지를 잘못 체크한 어느 여성이 전부였다. 나는 승리 배당을 포함해 총 삼십만 원을 받았다. 노인이 얼마나 이득을 봤는지는 알고 싶지 않았다.

나는 삼십만 원을 집구석에 넣고 다시 나왔다. 어느새 야간 아르바이트에 가야할 시간이었다. 사장님은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다. 내가 근무해야 하는 시간은 오후 열 시 부터 오전 두 시 까지였다. 주로 하는 일은 뜨거운 연탄불과 불판을 교체하는 일이었다. 아르바이트 초기에는 자주 불판에 데여 화상이 벌겋게 남기도 했지만 익숙해진 뒤로는 불의 열기를 그런대로 견딜만 했다. 열한 시 즈음에 대학생 무리가 들어왔다. 얼핏 보아도 여섯 명은 넘을 듯 했다. 이미 한 잔을 걸치고 온 듯, 주문하는 손님의 혀가 꼬일 대로 꼬여 있었다. 나는 주문을 받으며 대학생이 되었을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학교를 자퇴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컴퍼스 이곳저곳을 새내기답게 탐험하고 있을 것이었다. 나는 카운터에 앉아 대학생의 모임을 지켜보았다. 신입생을 기념하야 벌인 모임인 듯 싶었다. 사장님과 그간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던 도중 자꾸 벨이 울렸다. 대학생 무리에서 누른 벨이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그들은 나를 보며 계속 웃어댔다.

“아, 진짜 아르바이트하는 꼬라지 좀 봐. 저게 뭐야.”
구석에서 나를 비웃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우리 안면이 익지?”
남자의 건너편에 있던 또 다른 남자가 물었다. 둘 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그들이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를 언급했고, 이 년 전 나와 엄마가 함께 고개를 숙이며 선처를 부탁한다고 애원했던 놈들이라는 것을 기억해냈다.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고 대답했다. 오른 쪽 구석에 있던 남자가 옆 남자의 옆구리를 찌르며 말했다.

“얘가 걔에요. 애비가 다른 년이랑 바람나서 도망가고, 엄마는 술에 꼴아 간암이라는 친구요.” 
그렇게 말하고는 나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현석은 매 번 나를 조롱하고는 씩 웃곤 했다. 현석과 맞은편에 있는 녀석이 함께 나를 조롱하던 어느 날, 현석은 내게 자신의 가족사진을 보였다. 남자와 여자가 있고, 그 사이에 현석과 현석의 동생이 있는 사진이었다. 평범하고, 단란하며 일반적인 가정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었다. 그것을 보이고는 씩 웃으며, 넌 이런 사진 있어? 하고 물으며 다시 한 번 씩 웃었다. 나는 그 날 앉아있던 의자를 빼들어 현석에게 던졌다. 의자 한 개를 맞고 당황하는 현석에게, 다른 의자를 하나 더 던졌다. 의자 모서리에 머리를 맞은 현석은 바늘로 머리를 봉합했고, 그 비용은 엄마가 그대로 지불했다. 현석도 잘 되었다는 듯 머리를 숙인 나에게 무시로 일관하며 합의해주지 않았다. 학교폭력 전과가 있던 나는 강전당하기 전에 자퇴하기로 했다. 내게 있어 사진은 민감한 것이었다. 현석은 그걸 알았다. 

나는 자리에 놓여있던 메뉴판을 집어 들었다. 새삼스레 이 년 전에 던졌던 의자의 감촉이 떠올랐다. 주문 없으시면 데려가 보겠습니다, 손님. 사장님이 어느덧 다가와 나를 구해주었다. 나는 아르바이트 복장을 갈아입고 식당을 떠났다. 사정을 알고 있는 사장님은 내게 아무런 언질을 하지 않았다. 나는 거리를 걷다 멈췄다. 시간은 이제 막 열두 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거리를 밝히는 가로등의 의미 없는 나열이 펼쳐져 있었고, 밤의 문화를 알리는 간판들이 줄지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어느 곳도 나를 받아줄 공간은 없는 것 같았다. 집에는 아무도 없을 터였다. 엄마가 야간 근무로 집을 비웠기 때문이었다. 나는 가로등에 머리를 기댔다. 약간 미적지근한 열기가 느껴졌다. 언뜻 철장에 머리를 기대고 있던 불개가 떠올랐다. 투견장은 지금쯤 문을 닫지 않고, 한바탕 경기를 치루고 있을 것이었다.

불개의 붉은 눈동자가 아스라이 떠올랐다. 나는 마침 다가오는 택시를 잡았다. 기사 아저씨에게 투견장이 있는 주소를 알려주었다. 마찬가지로 지도에도 검색되지 않는 장소였다. 기사 아저씨는 또 투견장을 가냐며 껄껄 웃었다. 정오에 탔던 그 택시였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저씨의 행색은 그새 조금 더 초라해진 것 같았다.

택시에서 내리자 개의 하울링이 들려왔다. 경기가 진행중인 모양이었다. 경기장을 사람들이 빽빽이 둘러싸고 있어 경기장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흙먼지가 간간히 보였을 뿐이다. 나는 인파를 거쳐 사육장으로 들어섰다. 개들은 나를 보고 다시 짖기 시작했다. 개들의 울음소리는 언제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사육장에는 불개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불개 특유의 붉은 털이 남아있는 철장이 보였을 뿐이다. 나는 혹시 몰라 경기를 대기하고 있는 개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갔다. 그곳에 불개가 있었다. 숨을 가쁘게 쉬며, 목에 두른 붕대가 빨갛게 물이 들어있는. 약의 부작용인지 검붉은 눈동자는 핏줄이 터져있었고, 검은 코는 말라붙어 있었다. 몸에 선명한 흉터는 여전했다. 불개는 나를 보며 철장을 긁어대기 시작했다. 발도 긁혀 피가 나고 있었다. 그때 알림이 울렸다. 경기가 끝났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또 왔어?”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노인은 사육장 입구 쪽에서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노인의 오른손에는 정오에 보았던 주사가 두 개나 들려있었다.
“불개를 어떻게 내보내겠다는 겁니까? 이거 봐요. 곧 죽을 것 같은데.”
노인은 작은 문을 열어 불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불개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맞아. 그거여. 죽어야지, 투견은. 이놈들은 게임에서 싸우다 뒤질 운명이여. 어차피 이 개새끼는 모가지 상처가 심해가지고 싸우지도 못해. 오늘은 뒤지는 역할인 겨. 여기서 안 뒤지면 어차피 보신탕 되는건디, 싸우다 죽는 것이 낫지.”
“그럼 경기장에서 죽게 내버려 두겠다고요?”
“그거 알여? 여기 오는 인간들은 말여, 돈을 따고 잃는 것 때문에 오는 게 아니야. 그냥 개들이 서로 물어뜯고, 피흘리고, 그러다 죽는 걸 보러 오는 겨. 넌 아녀?”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사이 노인은 작은 문을 열어 불개에게 손을 내밀었다. 불개는 몸을 떨면서도 앞다리를 내밀었다. 마냥 주인이 좋은 모양이었다. 노인은 불개에게 연달아 주사를 두 번 놓았다. 불개는 더 이상 떨지 않았다. 다만 구역질을 시작했을 뿐이었다. 

“어떻게 살릴 수 있어요?”
노인은 다음 경기를 준비하겠다며 옆 철장으로 움직였다.
“오 백. 개 몸값이여.”
다시 알림이 울림과 동시에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오백 만원을 지불할 수 없었다. 집에 있는 돈을 모두 긁어모아도 오백 만원이라는 액수에는 한참을 미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불개는 철장 안에서 꿈틀거렸다. 그러다 다른 개의 울음이 들려오기라도 하면 자리에서 일어나 따라 짖었다. 불개가 경기장에 들어서면 이처럼 상대방의 울음에 따라 짖을 것이었다. 그렇게 싸우다, 목이 물려 죽을 것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에 목이 조여 죽어가는 불개의 모습이 떠올랐다. 불개를 죽이는 것은 다른 개가 아니라, 사람들의 시선일지도 몰랐다. 다시 한 번 하울링이 들려오자 불개는 철장을 긁기 시작했다. 철장의 문이 열릴 듯 요동쳤다. 걸쇠가 문고리에 살짝 걸쳐져 있었다. 당장이라도 철장을 열 수 있었다. 나는 사육장에서 나가 노인의 동태를 살펴보았다. 경기에 몰두한 모습이었다. 나는 불개를 살펴보았다. 견고한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줄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철장의 바로 위에 놓여있었다.

경기가 절정에 올랐을 즈음, 나는 철장의 문을 열었다. 불개가 짖을까봐 옆에 놓여있던 청색 테이프로 입을 감았다. 불개는 꽤나 무거웠다. 날리는 붉은 털이 자꾸 콧등을 간질였다. 불개가 나가는 것을 보자 다른 개들이 짖기 시작했다. 개 중에는 다리에 고정대를 차고 있는 핏불테리어도 있었다. 날카로운 이를 빛내며 어느 개보다 사납게 짖었다. 불개는 몸을 경련하며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사육장과 농장의 출구까지의 거리는 그리 먼 편이 아니었으나,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고 갈 수 있는 만큼 가까운 거리도 아니었다. 화장실을 가는 행인과 마주칠 수도 있었고, 개를 나르는 건장한 남자와도 마주칠 수 없었다. 게다가 차 같은 엄폐물도 없었다. 이곳에서 도망치려면 누구에게도 잡히지 않게 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품 안에서 불개가 요동쳤다. 불개는 더 이상 달릴 수 없을 정도로 다리에 힘이 풀려 있었다. 농장이 가운데를 건넜을 즈음, 내가 있는 쪽에서 알림이 들렸다. 그에 따라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삽살개가 승리했다는 말과 무관하게, 사람들은 나를 가리켰다. 익숙한 인영이 의자에서 일어나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정단된 도로가 아닌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일반 도로로 걸으면 차에 잡힐 게 뻔했다. 날벌레가 날아와 얼굴에 부딪혔고, 나무뿌리에 걸려 오른쪽 신발이 벗겨졌다. 나는 신발을 멀리 차고는 다시 뛰기 시작했다. 젖은 흙의 촉감이 몰캉했다. 노인의 목소리가 희미해지고, 밤공기가 전보다 서늘해졌음을 느끼자 나는 불개의 입에 붙어있던 청색 테이프를 떼어주었다. 나무기둥에 앉은 뒤, 나는 불개를 끌어안고 쳐다보았다. 불개의 붉은 눈동자 안에 내 모습이 담겼다. 초라한 모습이었다.

불개는 내 목에 다가와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불개의 거칠고 뜨거운 숨이 살결에 닿았다. 바지춤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휴대폰을 꺼냈다. 엄마에게서 온 문자였다. “언제 집에 들어와?”라는 문자에 답장을 보내려던 때, 노인의 고함이 들렸다. 그때, 목에서 파삭 바스러지는 고통이 일었다. 불개는 내 품에서 뛰어올라 짖기 시작했다. 불개의 울음소리를 들은 노인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져갔다. 나는 내 목에 손을 가져다 보았다. 뜨거운 것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까슬까슬한 불개의 털도 느껴졌다. 송곳니로 물린 게 아니니, 금방 멈출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불개를 바라보았다. 불개는 토사물을 흘리며, 더욱 높은 곳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몸에 들어가지 않는 힘을 모아,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맨발에 날카로운 돌이 깊게 박혀 거동이 자꾸 흔들렸다. 왼발이 돌부리에 걸려 엎어졌다. 젖은 흙에서는 약간 짠 맛이 났다.

불개는 올라가다 멈추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자신을 쫓아오는 노인을,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도 아니라면 자신이 태어났던 농장을, 길러졌던 사육장을, 목을 물고 다시 물렸던 경기장을. 그것도 아니라면 불개가 무엇을 보고 있을 지, 나로서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불개의 하울링이 들리기 시작했다. 소백산의 늑대처럼, 길고 구슬픈 울음이었다. 붉은 눈동자에, 내 모습이 오롯이 담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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