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맥락 파악 불가능해
‘회색지대’ 판명
학생들, 쉽게 문제제기 못해
학교 측의 조정 노력 필요해


 
모 교수의 성희롱 의혹에 대한 조사는 학교에서 모 교수에게 사실상 비공식적인 징계를 내리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학교 측에서는 모 교수의 행위를 명확하게 성희롱으로 규정할 수 없는 ‘회색지대(gray zone)’에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총학생회와 학교 측에서 자체적으로 수집한 증언으로는 모 교수의 행위에 대한 성희롱 여부를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판단에 따라 성희롱 의혹을 입증하기 위한 공식적인 절차는 진행되지 않았다.

학교와 총학 측의 조사 결과, 학생들이 모 교수의 행위에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고 밝혔다. 본 사건의 조사를 총괄한 전인한 자유융합대학장은 “불쾌감을 느끼는 학생들이 있다는 것을 학교에서도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행정상 가해자의 고의성을 입증할 만한 의도를 증명해야 한다”며 “학생들은 모 교수의 행위에 대해 불쾌하다, 혹은 잘 모른다 등 다양한 의견을 제기했다. 학생들의 다양한 의견들을 종합했을 때 일반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기 힘들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전했다. 학생상담센터 김상수 팀장은 “‘치킨을 먹으러 가자’ 등의 개인 메시지를 보낸 것만으로는 상황의 전체적인 맥락을 판단하기가 어렵다. 이러한 증거 자체로는 성희롱 여부를 판단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노선이 활동가는 “성폭력 의혹이 일 때 증거를 통해 혐의를 확실히 입증하기는 어렵다. 그렇기에 피해자들의 상황을 누군가가 판단했을 때 설령 피해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지라도 피해자들의 이야기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성희롱 문제에서 회색지대라는 표현을 지양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했다. 노 활동가는 “회색지대는 어느 정도 판단을 유보하는 어휘다”며 “학교 측에서 본인들의 책임과 판단을 유보하는 하나의 기제가 된 것 같다”고 입장을 전했다. 노 활동가는 모 교수의 행위에 대해 “강의를 하고 있는 교육자의 사회적 직위를 이용해 부적절한 행동들이 행해졌다. 차후 재발을 막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성적상의 불이익에 대한 학생들의 우려도 드러났다. 모 교수의 초대에 불응할 경우 입게 될 성적상의 불이익에 대한 우려가 ‘총장에게 바란다’에 제기됐다. 교수와 제자 간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수업과 성적평가를 매개로 연결돼 있어 학생들은 교수의 부적절한 행동에 대해 문제제기 하기 어려운 입장이다. 학내에서 학생들은 교수의 행위에 대한 자신들의 반응이 향후 자신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 고민하는 입장에 놓여있다. 이에 대해 김 팀장은 “일방적으로 학점을 부여할 수 있는 교수의 권위에 학생은 지레 겁먹어 신고를 꺼리게 된다. 대학가 저변에 위치하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서울시립대신문에서는 교수-제자 간에 이뤄지는 성폭력 사안에 대한 제보를 받았다. 제보자 A 씨는 “학과 남교수가 학과 남학생들을 대상으로 부적절한 성추행을 일삼았다. 불편해하는 학생들이 일부 있었지만, 아무도 문제제기를 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A씨는 “요즘처럼 학점이나 스펙 관리가 중요한 시대에 학생들이 교수에게 직접 문제제기를 하거나 사건을 신고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전했다.

우리대학은 성폭력 관련 학칙이 잘 정비돼 있다.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피해자의 요청에 따라 성폭력예방대책위원회도 소집할 수 있다. 성폭력예방대책위원회는 학생위원, 여성위원의 비율이 높아 피해자에게도 불리하지 않다.

그러나 제도적으로 사건에 대한 고발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충족됐더라도, 가해자와 피해자 간에 상하관계가 성립하고 여러 이해관계가 개입됐을 경우 피해자들이 문제제기를 하기는 어렵다. A씨는 “피해자가 공식적으로 나서야 하는 상황에서는 규정이나 법도 큰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 더불어 학과 규모가 작아 교수와의 관계가 친밀할 수밖에 없는 학생들의 경우에도 불편함을 느낀 사안에 대해 쉽게 문제제기를 하지 못한다”고 전했다.

A씨는 “수업 중 성차별, 성폭력적 발언을 하지 않도록 교수들에게 교육을 제공하고, 학생들이 사건을 신고하고 문제제기 했을 때 학교 측이 피해자 편에 설 것이라는 확신을 줄 필요가 있다”며 “교수들에게 무엇이 성폭력이고, 어떤 경우에 학생이 위협을 느낄 수 있는지에 대해 충분히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생각을 전했다. 

학교 측에서 직접 학생들을 대상으로 정기적인 조사를 진행할 필요성도 제기됐다. 학교가 정기적인 통계조사를 통해 상황을 판단하고, 비슷한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방지하는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노 활동가는 “강의실 안에서 일어나는 교수와 제자 간의 다양한 성폭력 사건을 예방하기 위한 장치를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며 “강의평가 내용에서 강의 중 강사의 부적절한 행위에 대한 여부를 익명으로 고발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전했다. 


박소정 기자 cheers710@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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