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양교육부 박종준 교수편

인문학의 진입장벽을 낮춰주는 ‘가벼운 인문학’ 열풍이 지속적으로 불고 있다. 바쁜 삶과 직장 일에 치여 인문학을 공부하기 힘든 사람을 위한 마중물로써 역할한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자칫 사유가 없는 인문학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사유의 출발점은 독서가 아닐까. 서울시립대신문에서 세 명의 교수를 만나 독서의 의미와 좋은 책을 추천받았다. 이 기획은 3개호에 걸쳐 연재될 예정이다. 아래 책에 대한 내용은 교수와의 대화를 바탕으로 기자가 정리한 내용이다.   -편집자주-  

 
독서란 어떤 의미인가

독서는 삶을 더 즐겁게 사는 하나의 방편이라 말하고 싶다. 여기서 말하는 즐거움이란 단순히 기분 좋은 상태가 아니라 ‘충만함’과 ‘신비함’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때로 인생이 혼란스러워 보일 때, 운명이 지나치게 가혹해 보일 때, 견딜 수 없는 슬픔에 짓눌려 하염없이 눈물만 흐를 때, 원망과 미움으로 잠 못 드는 밤들. 여러 힘든 시기에 위로와 격려는 항상 책을 통해서 왔다. 이런 경우 책은 영혼을 충만하게 하는 친구처럼 느껴진다. 또한, 독서를 통한 사상들로의 여행 중에 만나는 신비함은 마치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반지원정대의 모험 중에 겪는 온갖 고난과 절망 그리고 환희를 떠올리게 한다. 절대주의에서 상대주의로, 때로는 염세주의에 이르기까지, 책에서는 온갖 사상의 면모를 맛볼 수 있다. 어떤 사상들에는 오래 머물러 있기도 하고 어떤 사상들에는 머물기가 두려워지기도 한다. 절대주의적 확신이 주는 자신감, 상대주의적 혼란함으로부터 느끼는 구토감, 염세주의의 무기력감. 이러한 감정들은 오직 책을 통해서만 경험할 수 있는 신비같다.

지난 1학기 ‘의사결정과 토론’ 수업시간에 “인문학도로서 토익 문제집을 풀기보다 하이데거의 『예술이란 무엇인가』 같은 책들을 한 번 읽어야하지 않겠나” 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하이데거의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특정해서 말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토론의 주제가 예술에 관한 것이었는데 금방 떠오른 책이라서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인문학 전공자에게만 해당하는 말도 아니다. 인문학도라고 해서 특별하게 대해야 하는 인문학 서적이 따로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공과 무관하게 인문학에 관한 관심은 항상 강조하고 싶다.

현대 사회에서 학생들에게 요구되는 학습능력 중 하나가 사고능력이다. 그런데 정작 학교에서는 사고능력만 강조할 뿐 독서의 중요성은 그만큼 강조하지 않는다. 사실 고등학교나 대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토익, 토플 등 소위 ‘스펙’을 만들기 위한 공부 말고 진지하게 사고하면서 책을 읽을 시간이 있기나 한 건지 의문이다. 우리나라 교육시스템은 사고능력을 강조하면서도 독서는 하지 못하게 한다. 독서의 이유가 ‘올바른 사고를 위함’이라면 독서 없는 사고는 독단에 가깝고, 사고 없는 독서는 맹목적일 뿐이다. 깊은 고민을 동반한 독서, 그런 독서를 동반하지 않은 사고는 독단을 만들어낼 뿐이다.

대학생으로서 책을 왜 읽어야할까

“대학생으로서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라는 말은 상당히 낯선 표현으로 여겨진다. 그것은 마치 “인간으로서 숨을 쉬어야 하는 이유” 또는 “양궁 선수로서 활을 쏘아야 하는 이유”와 같이 자명한 것을 묻기 때문이다. 대학생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대학생’이라는 개념 안에 명백히 드러나 있다. ‘대학생’이란 개념은 대(大)와 학생(學生)의 합성어인데, 그 의미는 가장 큰 학문을 탐구하는, 즉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책을 읽지 않고 진리를 탐구한다는 것은 모순에 가깝다. 그래서 가장 큰 학문을 하는 사람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독서는 동서고금, 모든 전통을 통해서 기대되는 대학생의 사회적 역할이며 그 개념을 걸치고 있는 이들에게 부과되는 존재론적 책임이다.


축의 시대

카렌 암스트롱   교양인, 2010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의 종교관이 얼마나 얕은 지식에 기반해 있었는지 깨달았다. 축의 시대는 인류 정신사에서 특별한 발전을 이룩한 아주 짤막한 400~500년 정도의 정도의 시기를 일컫는다. 인류 정신사의 근간을 두고 있는 사람들은 그 400~500년 사이에 나타났다. 이후 인류 정신사는 그 기간의 사상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 같다. 축의 시대 이후 인간의 본성은 결코 진보한 적이 없으며 오늘 날에는 파괴적인 수준에 이르렀다는 저자의 진단은 우리가 증오 때문에 보고 있지 못하는 것, 잃어버린 것들을 일깨워준다. 과학과 종교, 종교와 종교가 대립하는 암울하고 척박한 현대 사회란 땅에 이 책은 공존이라는 작은 희망의 씨앗을 심는다. 균형 있는 시각을 갖추기 위해서는 대립하는 사상들의 극단을 공평하게 저울질해야겠지만, 암스트롱의 종교에 관한 견해는 결코 극단적이지 않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당신은 인류의 지성사를 찬란하게 비추고 있는 4개의 별을 보게 될 것이다. 그 별들의 이름을 ‘인류의 스승들’이라고 해도 좋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도널드 케이건   까치, 2006

나는 이 책을 통해 전쟁에 대해 다음과 같은 통찰을 얻게 되었다. 한 번 시작된 전쟁은 인간의 판단을 초월한 자기 내적 논리를 갖게 되고 파국에 치닫기 전까지는 스스로의 논리에 따라 확대하려는 경향을 가진다. 전쟁에 대비가 되어있다는 자신감이 역설적으로 전쟁을 유발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2천년도 넘은 시절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났던 전쟁의 전말을 꼼꼼한 기록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역사가가 염려한 것은 전쟁의 자기 확장성이 아닐까. 물론 이 책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대한 단순한 역사적 기술을 넘어서는 책이다. 전쟁이라는 복잡한 사태에서 정치 지도자가 내리는 판단의 중요성을 보여줌으로써 지도자의 자질을 반성적으로 평가할 수 있고, 또한 전쟁 중에도 결코 토론을 중단하지 않는 그리스인들의 태도를 통해 민주 시민의 중요한 자질을 발견할 수 있다.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

소포클레스   숲, 2008

우리의 삶은 얼마나 운명과 우연에 취약한가? 그럼에도 우리는 운명적 비극이라는 고통의 숲을 더듬고 더듬어 헤쳐가야 한다. 개인적으로 그리스 비극 작품들을 통해서 수많은 슬픔의 시간들을 무사히 지내왔다. 그리스 비극의 세계관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어떤 비극 작품이든 누구의 인생에든 훌륭한 치료제가 될 것이다. 물론 타인의 불행을 보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거짓 위안 따위는 그리스 비극에 없다.
그리스 3대 비극작가들의 전집을 모두 추천하고 싶지만, 하나만 선택하라면 단연 소포클래스의 비극 작품들이다. 이미 2500년 전에 완성되었음에도 현대의 저명한 작가들조차 재해석에 열중하는 그리스 비극. 특히 소포클래스의 작품들은 인간의 삶에 얽혀있는 운명과 우연의 냉혹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운명과 우연이 철저하게 인간의 삶을 파괴했을지라도, 인간은 얼마나 처절하게 그것에 저항하고 부딪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던가. 이를 통해 우리는 인간 정신의 숭고함과 위대함을 느끼게 된다. 인생의 불가피한 비극을 응시하라.


행복의 정복

버트런드 러셀   사회평론, 2005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에서 러셀은 인간이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정신적 병폐인 바람직하지 않은 욕구들을 심리적으로 분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어 이런 정신적 병폐의 처방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행복의 정복>은 그 질문에 대한 러셀 스스로의 대답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의 첫 장은 “불행의 이유”, 즉 당신의 삶에서 행복이 떠나버린 이유에 대한 분석으로 시작한다. 불행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어느 한 가지 만족을 다른 만족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다. 인생은 수 천만 개의 작디작은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복잡하고 신비하며 단 한 번도 완전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어느 한 면에서의 성공이 모든 것을 보상해 줄 것 같지만 그런 생각이야말로 착각이거나 가치의 독점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경제적 성공을 유일한 행복의 기준으로 여기는 현대인들의 정신이 왜 지독한 공허함에 빠질 수밖에 없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정리·사진_ 김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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