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평화와 희망의 상징이었다. 각종 행사에 초청돼 자리를 빛내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지금은 거리를 방황한다. 배를 채우기 위해 쓰레기를 뒤지기도 한다. 가끔 길에 버려진 음식을 보면 횡재한 날이다. 기구한 팔자다. 누구의 이야기냐고. 바로 비둘기다.
88올림픽을 전후로 시행된 비둘기 날리기 행사 이후로 비둘기들은 도심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터가 바뀌었지만 비둘기들은 훌륭히 대처했다. 무서운 속도로 개체수를 늘리며 도시에 적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서울에만 4만 5천마리가 넘는 비둘기가 서식하고 있다.

하지만 2009년 환경부에서 비둘기를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하면서 처지가 급변했다. ‘비둘기가 스스로 먹이를 찾아 생태계의 당당한 일원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비둘기의 개체수를 줄이기 위해 종로구에서 내건 현수막 문구다. 사실 비둘기들은 당당하다. 무일푼으로 타향에 끌려와 성공적으로 번식한 비둘기를 누가 비난할 수 있을까. 뒤바뀐 자신의 처지에 주눅이 들 법도 하지만 비둘기는 몸을 뒤뚱거리며 거리낌없이 거리를 활보한다.

비둘기는 청년들에게 묘한 동질감을 불러일으킨다. 날지 못하는 비둘기는 조롱의 대상이다. 푸르지 못한 청년 역시 마찬가지다. 청년들이 푸르지 못한 이유는 단연 취직난 때문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기준으로 청년 중 실제 실업자는 111만명으로 추산된다. 전체 청년의 22.4%가 취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혹자는 이런 청년들에게 ‘모이’를 줘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스스로 먹이를 구하는 청년만이 ‘사회의 당당한 일원’이기 때문이다. 모이는 도덕적 해이를 일으켜 청년이 사회의 당당한 일원이 되는 것을 방해한다고 주장한다. 청년수당에 대한 비판 역시 이러한 흐름과 맥을 같이 한다. 

과연 모이를 먹은 청년은 당당하지 않을까? 글쎄 잘 모르겠다. 사실 모를 수밖에 없다. 모이를 먹어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다만 비둘기를 보고 추측할 뿐이다. 그래서 오늘도 길에서 비둘기를 보면 반갑다. 머리를 흔들며 땅에 뿌려진 쌀알을 주워 먹는 비둘기는 너무나 당당해 보이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지난 19일 보건복지부의 청년수당 직권취소를 대법원에 제소했다. 대법원의 판단은 청년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어쩌면 청년들은 모이를 먹으면서도 당당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할 기회를 얻을지도 모른다. 아무쪼록 좋은 결과를 기대한다.   
     

최진렬 편집국장
fufwlschl@uos.ac.kr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