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나라의 국가재정 상태가 빠르게 악화되면서 사전에 정해진 준칙에 따라 재정건전성을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2015년 관리대상수지가 38조원에 이르러 8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고, 국가채무의 증가율도 OECD 국가 중에서 매우 빠르다는 점을 고려할 때, 재정총량제약 부과를 위해  재정준칙 도입을 제안한 것은 미래의 재정위험에 대비하고 재정건전성을 관리하기 위한 노력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재정준칙의 설계에서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지표의 선정이나 법률적 위상의 부여보다 현실에서 준칙이 지켜질 것인가의 문제라는 점이다. 즉, 제도적 요소를 충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준칙의 법제화를 단순히 준칙의 실행으로 이해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경험을 보면, 세제 운영과 재정의 관리를 제한하는 법적 조항은 현실에서 잘 충족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조세감면율 상한제가 법제화되어 있었으나, 현실에서 이 조항은 단지 가이드라인 정도로만 기능하였다. 추경편성 또한 법으로 제한하였음에도 취지에 맞게 운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법적으로 구속력 있는 제재조치를 어떻게 설계할지 숙고해야만 한다.

재정준칙 도입의 배경과 관련한 우리나라의 특수성도 강조하고 싶다. 현재 우리나라의 국가채무의 절대적 수준이 낮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우리의 경우에는 ‘예방적 차원’에서 재정준칙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고령화의 빠른 진행과 연금제도의 성숙화, 정치적으로 확실시 되는 복지확대를 전제하면, 향후 우리나라에서 지출확대는 불가피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방 차원의 재정준칙 도입은 사실상 미래 시점의 증세정책이나 공적연금 및 건강보험의 개편을 의미한다. 문제는 이러한 정책결정을 재정준칙의 도입에 따른 자동적인 결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대규모 증세는 재정준칙과 유사한 수준, 또는 더 높은 차원의 국민적 의견수렴 과정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큰 폭의 증세정책 또는 연금제도 개편과 재정준칙 준수 중 어느 것이 정책결정의 관점에서 우선순위에 있는지 논의가 필요한 이유이다.

재정준칙의 적용수준과 관련해서도 현실적인 접근을 주문하고 싶다. 다양한 상황 전개를 사전에 모두 고려한 세밀한 형태의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 과연 우리나라 상황에서 가능하고 바람직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강력한 대통령제, 정부주도의 경제운용이 일반화된 상황에서, 제도 도입 초기부터 정책 구속력이 높은 세밀한 제도의 설계를 주장하는 것은 재정준칙 도입의 장애로 작용할 수 있다. 재정준칙 제도에 대한 현실적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점진적인 과정을 거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예로, 우리나라의 경우 중기재정운용계획에 대해 사전예산 편성에 준하는 법적 구속력을 부여하는 방안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 국회 심의과정에서의 엄격한 감독과 견제가 전제된다면, 재정총량에 대한 중기적으로 안정적인 관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김우철(세무학과 교수)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