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애니메이션 최대 흥행작 ‘마당을 나온 암탉’(2011)의 주인공 초록이(좌)와 그의 엄마 잎싹이(우)
최근 ‘달빛 궁궐’, ‘카이 - 거울호수의 전설’, ‘서울역’ 등 한국 애니메이션들이 속속 개봉했다. 달빛 궁궐은 서울애니메이션센터의 공모전 ‘애니프렌즈’의 1회 지원작이며 카이 ? 거울호수의 전설은 애니메이션계의 거장 이성강 감독이, 서울역은 최근 천만 관객을 돌파해 화제를 모은 실사 영화 ‘부산행’과, 독립애니메이션 ‘돼지의 왕’ 등으로 유명한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복귀작으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한국 애니메이션이 화제를 모으고 있는 지금, 한국 애니메이션의 속사정을 들어보자.

도전의 역사, 한국 애니메이션 영화

한국 애니메이션의 역사는 1967년 영화 ‘홍길동’을 시작으로 50년을 맞고 있지만 한국 애니메이션 영화의 위상은 그리 높지 않다. 2013년 기준 한국 애니메이션 영화 관람객 수는 외국 애니메이션의 10분의 1 수준이다. 또한 한국 애니메이션 영화는 ‘어린이용’이라는 편견으로 평가 절하되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

기획력과 스토리텔링의 부족함은 한국 애니메이션 부진 이유로 지적되는 단골손님이다. 한국애니메이션예술인협회 김재호 부회장은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은 일본이나 미국 같은 애니메이션 강국으로부터 외주 제작을 통해 기술력은 확보했지만 기획이나 스토리텔링을 담당하는 인력 양성은 도외시했다”며 “기술은 좋아도 정작 작품의 재미나 완성도가 떨어져 관객에게 외면당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기획력과 스토리텔링의 부족함에 대해 여실히 느끼게 된 시기는 90년대부터다. 당시 한국 애니메이션계는 실험과 도전의 시기였고 독창적이고 개성적인 콘텐츠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아쉬운 스토리텔링과 낮은 퀄리티로 많은 작품들이 흥행에서 쓴맛을 봤다.

성인용 애니메이션의 도전은 1990년대 한국 애니메이션의 색다른 시도로 꼽힌다. 이러한 시도가 이뤄진 대표적 작품은 ‘블루시걸’(1994)이다 이 작품은 본격적인 성인물로 국내 최초의 19세 이상 관람가라는 파격적인 시도를 보여줬다. 하지만 블루시걸은 작품 자체의 낮은 퀄리티로 혹평을 받았다. 이외에도 청소년과 성인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애니메이션들이 나타났지만 모두 의미있는 성적을 보여주지 못했다.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대규모 자본의 애니메이션도 등장했다. ‘원더풀데이즈’(2003)는 150억이라는 이례적인 제작비로, 제작 기간만 7년을 투자했다. 투자한 만큼의 기술력은 화려했지만 스토리텔링이 지루하고 단편적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 흥행에서 실패했다. 한국애니메이션학회장은 “당대의 한국 애니메이션 시장은 시도의 장이었다. 하지만 실패했다. 연령대를 높인 결과 아동들은 못보고 정작 타겟인 성인이나 청소년들은 보지 않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라며 “이런 시도를 통해 애니메이션은 아동용으로 고착화됐고 한국 애니메이션 시장도 다양성의 측면에서 축소됐다”고 설명했다.

▲ 블루시걸(1994)의 두 주인공. 하일(우)이 채린(좌)을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 원더풀 데이즈(2003)의 주인공 수하(좌)와 제이(우)가 서로 총을 겨누고 있다.
▲ 동화 ‘눈의 여왕’을 모티브로 해, 동서 문화의 적절한 융합을 이룬 ‘카이 – 거울호수의 전설’(2016)의 한 장면.
한국 애니메이션의 제작 문제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다양한 시도들의 실패 이후로 애니메이션에 대한 투자는 줄어들고 애니메이션 제작 환경은 더욱 열악해졌다. 해외 애니메이션의 경우 제작비는 1000억 원에 달하는 것에 비해 한국 애니메이션의 평균 제작비는 30억 원 안팎이다. 한창완 한국애니메이션학회장은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은 20~30억 원이라는 굉장히 적은 제작비에서 이뤄진다. 이에 따라 높은 수준의 퀄리티 구축이 어려워진다”며 “이마저도 정부의 지원이 없다면 투자를 받지 못해 만들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적은 제작비는 낮은 임금, 열악한 근무 환경으로 직결된다. 한창완 한국애니메이션학회장은 “현재 우리나라의 애니메이션 제작 규모에서 고급 인력을 쓸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다”며 “낮은 임금은 능력 있는 애니메이터들도 다른 직업으로 전향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미국과 같은 애니메이션 강국들과 비교할 때 나타나는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의 문제점은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수 있는 효율적인 토대가 없다는 점이다. 애니메이션은 제작 과정 상 여러 분야의 작업을 감독이 유기적으로 연결해야하기 때문에 고도의 팀워크를 요구한다. 한국애니메이션학회장은 “스태프들의 팀워크와 제작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대부분 인력을 계속 끌고 가는 스튜디오의 형태가 돼야한다”며 “이런 스튜디오들이 초기에는 시행착오를 겪다가 노하우가 쌓여 대박 작품을 만들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매달 막대한 금액의 인건비가 발생하게 되기에 이러한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는 우리나라에 없는 실정이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가능성

이러한 현실에서 흥행에 성공하거나 평단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들도 있다. 우리나라 최초로 220만 관객을 불러 모은 ‘마당을 나온 암탉’(2011)은 한국 애니메이션 시장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한국 애니메이션이 나아가야할 길을 제시했다고 평가받는다. 이는 한국 애니메이션의 고질적 문제인 배급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제작비뿐만 아니라 배급 비용도 적은 한국 애니메이션 특성상 메이저 배급사의 투자를 바랄 수 없기 때문에 스크린 수 확보뿐만 아니라, 홍보 및 마케팅에서도 불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마당을 나온 암탉의 경우 영화사 ‘명필름’의 공동 제작 시스템으로 완성된 작품으로, 명필름이 가지고 있는 영화계 입지와 흥행 공식이 적절하게 매치됐다는 평을 받고 있다.

또한 마당을 나온 암탉은 ‘가족 영화’로서의 애니메이션 가능성을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입시 경쟁 등 한국 사회가 정해놓은 테두리에 갖힌 청소년들을 어린 닭으로 비유함으로써 남녀노소 모두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김재호 부회장은 “종래의 어린이용과 청소년용, 성인용을 구분짓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해야 한다”며 “가족 모두 즐길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기획한 것은 의미가 깊다”고 설명했다. 충분한 자본과 노하우를 가지고 기획 및 배급이 이뤄진다면 한국 애니메이션도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저예산 애니메이션들은 한국 애니메이션의 미래에 큰 밑거름이 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돼지의 왕’(2011), ‘사이비’(2013) 등이 있는데, 이들 독립 애니메이션은 기술력보다는 각본과 연출에 집중한다. 또한 사실주의적 묘사를 통해 한국 사회를 비판하는 등 정치비판적 요소는 애니메이션 팬으로 하여금 좋은 평을 받고 있다. 한국애니메이션학회장은 “저예산 애니메이션들은 젊은 한국 애니메이션 감독, 시나리오 작가들에게 도전과 실험의 장이 되고 있다”며 “젊은 애니메이터들과 애니메이션 관련 학과들이 많아지는 등 패기 넘치는 젊은 인력들을 중심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작지원 또한 한국애니메이션학회장은 “수요자들은 새로운 기술, 새로운 캐릭터를 통한 애니메이션의 혁신을 기대하고 있지만 현재 지원 사업으로는 차별성을 개발할 수 없다”며 “고정된 적은 예산은 애니메이션 시장의 시도와 혁신을 막는 주범”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한국 애니메이션의 부족한 점들을 보완하기 위해 시나리오 작가, 기획자, 감독의 양성이 중요하며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국승인 기자 qkzulqjffp44@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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