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8시를 갓 넘긴 시간. 홍대입구역 출구는 사람들로 붐볐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저마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역 앞에서 일행을 기다렸다. ‘홍대 걷고 싶은 거리’를 취재하기 위해 혼자 역 앞에 선 기자는 머쓱해졌다. 걷고 싶기는커녕 재빨리 취재를 마치고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서울시가 1998년에 ‘걷고 싶은 거리 만들기’ 정책을 추진한 이래 많은 지역구에서 하나 둘씩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들어 왔다. 홍대 걷고 싶은 거리 역시 이러한 정책의 일환이다.

걷고 싶은 거리에 들어서자마자 한 목소리가 들렸다. “제가 지금 물구나무를 서려고 하는데 다리를 받쳐주실 수 있나요?” 자신을 인터넷 개인방송 진행자라고 소개한 한 여성이 말했다. 스마트폰의 중계 화면을 향해 길 한복판에서 물구나무를 서자 댓글이 줄줄이 달리기 시작한다. 잠시 후 자리에 앉은 여성은 “홍대 걷고 싶은 거리는 매일 온다. 사람이 많아서 좋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과 함께 춤도 추면서 방송을 진행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과연 여성의 말대로 거리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거리 곳곳에서는 사람들의 주의를 끄는 공연으로 가득했다. “이것 보세요. 살아있는 원숭이입니다. 사람을 아주 좋아해요. 와서 만져보세요.” 한 마술가는 원숭이 인형을 들고 천연덕스럽게 행인들을 불러세웠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있는 곳에 가보니 ‘버스킹’공연이 한창이었다. 거리 곳곳에서 음악가들은 여행용 캐리어를 발 앞에 둔 채 노래를 불렀다. 긴 시간이 흐른듯 음악가 옆에는 빈 물병들이 여럿 놓여 있었다. 노래가 들리는 곳에는 사람들도 큰 원을 이뤘다.

▲ 혼잡한 인도를 피해 사람들이 도로로 걷고 있다.
하지만 거리를 즐기는 것은 순탄치 않았다. 입간판이라는 불청객이 거리 곳곳에 있기 때문이다. 서울특별시 옥외광고물등 관리조례에서는 보행자 통로에 입간판 설치를 금하고 있다. 조례를 비웃듯 입간판은 거리를 가로지르며 통행을 막고 있었다. 심지어 거리에 쓰러져 있기도 했다. 사람들은 간판을 이리저리 피하며 걷고 싶은 거리를 돌아다녔다. 때로는 그 과정에서 도로로 걷기도 했다. 걷고 싶은 거리 주차 관리원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거리가 혼잡해 사람들이 도로를 많이 침범한다”며 투덜댔다.

거리의 공기 역시 음악 소리로 포화상태였다. 거리의 좌우를 둘러싼 상가에서는 제각각 음악을 크게 틀며 버스킹을 위협했다. 사방에서 여러 노랫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면서 노래를 하나하나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합쳐진 음악소리는 소음에 가까웠다. “너무 시끄러운데. 노래가 하나도 안 들려.” 한 남성이 기자를 지나치며 데이트하는 여성에게 말했다. 사방에서 너무나 많은 노래가 큰 소리로 들려와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음악소리가 바뀌었다. 걷고 싶은 거리에서는 ‘짬뽕 노래’만을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음악소리에 지칠 무렵 고개를 드니 ‘밤 9시 이후 길거리 공연을 자제하여 주시길 바랍니다’라고 쓰인 현수막이 보였다. 마포구청에서는 홍대 걷고 싶은 거리는 상업지구가 아니기 때문에 저녁 이후 거리 공연을 자제할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현수막의 문구는 거리의 현실과 맞지 않았다. 9시는 거리가 본격적으로 열기를 띠기 시작하는 시간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음악가 주위로 구경꾼들도 점차 늘었다. 공연을 구경하던 최정우(19) 군은 “보통 저녁 식사를 하고 9시가 지나면 본격적으로 구경을 하러 돌아다닌다. 이때부터 볼거리가 많다”며 현수막의 문구에 의문을 표했다.

밤이 깊어지면서 집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걸어가자 시끄러운 상가의 음악소리, 많은 입간판, 혼잡한 사람들로부터 멀어져 점차 마음이 평온해졌다. 서울시에서는 이달부터 11월까지 거리 문화 활성화를 위해 홍대 걷고 싶은 거리를 폐쇄하고 공사를 시행할 계획임을 밝혔다. 새롭게 태어나는 거리는 정말 ‘걷고 싶은 거리’이기를 바란다.   


글·사진_ 최진렬 기자 fufwlschl@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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