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온라인 커뮤니티 ‘서울시립대대나무숲’(이하 대숲)에 학과내에서 발생한 주거침입 사건의 제보글이 올라왔다. 방학 중 장기 중국 여행을 떠나게 된 갑은 학과 동기인 병과 정에게 애완 물고기 관리를 맡기면서 자취방의 비밀번호를 알려줬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을은 병과 정으로부터 비밀번호를 알아냈고, 단체 메신저방에 비밀번호를 공개했다. 이후 을, 병, 정 이외에도 동기 및 선배 다수가 갑의 허락을 받지 않고 갑의 자취방을 빈번히 드나든 것으로 밝혀졌다. 갑이 돌아왔을 때 자취방에 있던 음식들과 통조림은 모두 사라진 상태였다. 게다가 방이 심하게 어질러져있었고 벽에는 커다란 얼룩 자국까지 남아있었다.

또한 병과 정에게 부탁했던 물고기 중 한 마리는 죽어있기까지 했다. 이 사건에 대해 윤영철 법인권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갑의 사전 동의를 받은 병과 정을 제외한 자들이 갑의 방을 이용한 행위는 형법상 주거침입죄(제319조 제1항)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윤 연구위원은 “비밀번호의 유출로 인해 발생한 손해와 무단침입으로 인한 재산상 손해가 있다면 모두 민사상 손해배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숲 제보가 큰 주목을 받자 지난 13일 철학과 학생회에서는 긴급 학생총회를 발의했다. 학생총회에서는 ▲가해자의 사과문 발표 또는 대자보 게시 ▲사회봉사 요구 ▲진정성 있는 사과 요구 ▲신입생들을 위한 멘토링 프로그램 강화 등의 처벌 및 재발방지 방안이 논의됐다.

학생총회에는 가해자 일부가 참석했으며 피해자는 참석하지 않았다. 피해자의 발언 및 요구사항은 학생회장을 통해 전달됐다. 피해자는 ‘가해자 학생들에게 학과 차원에서 가할 수 있는 최대한의 처벌’과 ‘모든 수업에서 가해자 학생들과의 분리’를 요구했다.

규모가 작은 철학과의 특성상 분반이 이뤄질 수 없기 때문에 수업의 분리를 위해서는 사실상 가해자들이 수강 포기를 해야 한다. 윤 연구위원은 “피해자는 가해자들에게 수강포기를 요구할 수 없다”며 “수강권은 가해자들의 불법행위와는 무관한 개인의 권리이므로, 피해자는 이 권리를 침해하거나 제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철학과 학생총회는 정족수 미달로 성사되지 못했다. 철학과 학칙 상 학생총회가 성사되려면 20명 이상의 학생이 참석해야 한다. 학생총회 시작에는 충분한 인원이 참석했지만 마지막 안건 상정 때 정족수를 채우지 못했다.

학생 개개인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긴급학생총회를 발의한 것이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학생총회 당시 철학과 학생회 오지원 회장은 대숲에서 공론화가 되고 있는 글이 철학과 내부에서 일어난 일이었기에 불가피하게 학생총회를 열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학생총회에 참석한 A씨는 “상담센터와 징계위원회 등 학생총회 이외에도 이번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창구는 학내에 다양하다”며 “개인의 문제를 학생회 차원에서 논의한다는 것에 수긍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더불어 학생총회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학생총회에서 학생회의 탄핵 및 파면 이 외의 처벌로서 의결된 안건들은 강제력을 갖지 않으며 권고 수준에 그치기 때문이다. 윤 연구위원은 “학생총회에서 자율규제의 차원에서 사후처리에 관한 논의 및 사과문, 봉사, 멘토링 프로그램 등을 가해자들에게 요구할 수는 있다. 하지만 학생회 차원에서의 이러한 요구는 강제성을 가질 수 없다”며 “처벌의 이행 여부는 전적으로 가해자들의 의사에 달려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이 대학 전반에 만연해 있는 동기들의 자취방 공유 문화와 맞닿아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물리학과에 재학중인 B씨는 “실제로 대학가에서는 동기의 자취방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그것을 당연시 여기는 문화가 있다”고 말했다. 학생상담센터 김상수 팀장은 “친분을 이유로 동기의 자취방에 자유롭게 드나드는 것은 예전부터 이어져온 대학가의 문화”라며 “이 문화 속에서 자신의 것과 타인의 것의 경계에 무감각해져 지켜야할 선을 넘어도 의식하지 못하게 되기 일쑤”라고 설명했다. 김 팀장은 이런 분위기와 관계 속에서 배려 의식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제언했다.

윤 연구위원은 “이번 사건은 타인의 자유에 대한 존중 의식,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가치관 등의 결여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사료된다”며 “이러한 의미에서 학교차원에서는 법뿐만 아니라 윤리 교육도 병행해 해결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국승인 기자 qkznlqjffp44@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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