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어영문학과 임종성 교수편

인문학의 진입장벽을 낮춰주는 ‘가벼운 인문학’ 열풍이 지속적으로 불고 있다. 바쁜 삶과 직장 일에 치여 인문학을 공부하기 힘든 사람을 위한 마중물로써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자칫 사유가 없는 인문학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사유의 출발점은 독서가 아닐까. 서울시립대신문에서 세 명의 교수를 만나 독서의 의미와 좋은 책을 추천받았다. 3개 호에 걸쳐 연재된 이 기획은 이번호를 끝으로 마무리 한다. 아래 책에 대한 내용은 교수와의 대화를 바탕으로 기자가 정리한 내용이다.  -편집자주-

 

 
왜 학생들은 책을 읽어야 할까

인문학 시대라고 이야기하지만 인문학을 흥밋거리로 이용하는 시대다. 학생들이 제대로 인문학을 하려면 결국 독서를 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독서와 취업이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토익이나 스펙 쌓기에 더 집중한다. 그런데 독서는 엄청난 가치가 있다. 명문대인 시카고대는 로버트 허친스가 총장이 돼 독서나 인문학적인 가치를 강조하기 시작하며 바뀌기 시작했다. 총장은 학생들에게 고전 100권의 책을 읽게 했고 이를 읽지 않으면 졸업을 못하게 하는 ‘시카고 플랜’을 시행했다. 시카고 플랜이 대학을 어떻게 바꾸겠느냐고 생각하겠지만 2000년에 이르기까지 시카고대 졸업생들은 73개의 노벨상을 수상하는 성과를 보여줬다. 이러한 사례는 독서가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언론계에 나간다고 할 때도 지식이 있어야 한다. 지식이 없으면 좋은 글을 쓸 수 없다. 시야가 넓어야 좋은 글을 쓴다. 이코노미스트 저널에서는 독일의 딜레마와 관련한 글을 쓸 때도 막스 베버의 이론을 인용한다. 학생들은 하루하루가 바쁘고 힘들겠지만 잠자리에 들기 전이라도 책을 읽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지루하고 당장의 이익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해보면 굉장히 유익하다.

인문학 열풍이다. 진짜 인문학은 무엇인가

시시콜콜한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의 시야를 열어주는 것이 참된 인문학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왜 다른 인종보다 위대했으며 다른 종족을 지배했는지 궁금하면 <사피엔스>를 읽어 보면 된다. 과학 서적에서도 새로운 시야를 얻을 수 있다.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에서는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차이점을 알 수 있다. 뉴턴은 지구와 목성, 수성에서의 시간은 같다고 말한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상대성 이론을 생각해냈다. 허블은 별을 관찰하며 별의 색깔이 변한다는 것을 알아냈고 우주가 팽창한다는 것도 알아냈다. 인류가 이제까지 어떻게 변해 왔는지, 또 인류의 관점이 어떻게 변했으며, 이것을 실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도와주는 것이 인문학이라 생각한다. 문학·역사·철학에 국한되지 않고 새로운 시야를 얻게 해주는 모든 분야가 인문학이다. 단지 표현 도구가 다를 뿐, 새로운 것을 보려고 하는 시도는 같다.

독서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독서는 세상을 열어준다. 독서를 하기 전에는 지구가 어떤지, 인간이 어떤지 등 세상에 대해 몰랐다. 세상에 대해 모른다면 숲길도 정글이 된다. 지도가 없고 나침반이 없으면 우리가 위치한 곳이 어딘지 모른다. 그런데 지도가 있고 좌표를 알게 되면 우리의 위치뿐만 아니라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다. 길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독서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을 알려주는 일종의 나침판이나 지도같은 역할을 한다.

독서할 때 주의할 점이 있을까

독서할 때 주의할 점은 글을 눈으로만 읽지 말고 하나의 상황이나 그림처럼 묘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어떤 생각이나 단어를 머릿속에 그림으로 저장하기 때문이다. 이는 과학적으로 입증됐다. 동창회에서 친구를 만나면 얼굴을 기억나는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은 경우와 같다. 독서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림으로 생각하고 상황으로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다. 또한 이를 통해 글을 더 빨리 이해할 수도 있게 된다.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김영사, 2015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어떤 존재이고 어떻게 살아왔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를 보여주는 책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왜 다른 인종보다 위대한지, 그리고 어떻게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인류의 가장 큰 힘은 언어이다. 인류가 언어를 통해 추상적인 내용을 구체화시키는 능력을 얻게 되면서  다른 종족보다 우월하게 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언어는 의사소통의 수단이지만 동시에 인간의 지식을 담는 그릇이다. 이 책은 언어와 더불어 글자의 가치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글자는 지식을 담는 언어의 속성을 발전하게 만들었고 이는 인간 발전의 토대가 되었다. 우리는 인류라고 하는 종족집단이기에 인류에 대해 알아야 하는 의무가 있다. 따라서 이 책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총, 균, 쇠
재레드 다이아몬드   문학사상사, 2005

현재 문명의 역사는 최후 빙하기의 끝단에서 시작해 1만 3천 년 동안 발전해왔다. 몇억 년에 걸친 지구의 역사에 비한다면 굉장히 짧은 시기다. <총, 균, 쇠>는 이 1만 3천 년 동안 지구에 어떤 일이 벌어졌고 인류는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류는 수차례에 걸쳐 중요한 변화의 순간을 맞닥뜨렸다. 인류는 초기만 해도 채집생활하며 동물과 비슷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점차적으로 발전해 메소포타미아에서 처음으로 문명의 싹을 틔우고 글자를 탄생시켰다. 농업 혁명과 산업 혁명을 거치며 정보화 혁명까지 인류는 숨 가쁘게 달려왔다. 이 책은 이러한 혁명들을 일어나게 만든 중요한 도구를 알려준다. <사피엔스>와 같이 읽으면 호모 사피엔스의 시작부터 지금의 인류까지 그 거대한 맥락을 한번에 살펴볼 수 있다. 두꺼운 책이지만 비교적 쉽게 서술돼 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사기열전
사마천   을유문화사, 2004

<사기>는 본기와 열전으로 나뉜다. 그 중 열전은 <사기>의 백미라 불릴 정도로 재미있다. 이 책은 춘추전국시대, 진나라시대가 끝나고 도래한 한나라시대 초에 사마천이 쓴 책이다. <사기열전>에서는 제자백가를 비롯한 사상의 흐름을 볼 수 있다. 이 책은 당대의 철학과 종교뿐만 아니라 건축, 문화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결국 ‘동양 사상은 무엇인가’ 그리고 ‘동양 사람들의 생각은 무엇인가’에 관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서양에 법과 철학이 있었다면 동양에는 인(仁)과 예(禮)가 있다. 이외에도 정치인들이 반드시 읽어봐야 할 내용들이 일화를 통해 보여진다. <사기열전>에는 무당과 관리들이 협력해서 강에 사는 용왕에게 처녀를 바쳐야한다고 마을 주민들에게 거짓말하는 일화가 나온다. 자신의 자식이 제물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주민들은 관리에게 뇌물을 줘야했다. 결국 가난한 주민만 피해를 보게 되는데 이는 각종 규제들이 백성을 위한 것인지, 공무원과 관리들을 위한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이 책에는 이런 다양한 이야기들이 포함돼있다.


서양미술사
에른스트 곰브리치   예경, 2003

대학교 1학년때 처음 봤던 책으로, 도서관에서 이 책을 읽으며 굉장히 충격 받았던 기억이 있다. 고대 이집트의 그림을 보고 대단함을 느꼈다. 그들이 세상을 생각하는 방법과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보며 감탄했고 그림을 보는 다양한 시점에 대해 배웠다. 그림과 사물은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서 그 의미가 달라진다. 이 책은 인류가 이제까지 사물을 어떻게 봐왔고 어떻게 구현하려고 했는가에 대한 집합체이다. 동굴벽화부터 오늘날 볼 수 있는 그림까지 다루며 알기 쉽게 정리했다. 고대 이집트인의 그림을 처음 보면 우습게 보일 정도로 평면적이고 낙서같이 느껴진다. 그 안에는 주목할 만한 기술과 철학이 담겨있다. 이집트인은 사물의 가장 대표적인 성질을 나타내주는 부분을 그렸다. 얼굴은 옆얼굴을, 가슴은 앞모습을 그린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가끔씩 추상화 등을 보면서 ‘이런 그림은 나도 그릴 수 있겠다’고 말하는데 이는 굉장히 실례되는 말이다. 예술을 알았을 때 감상하는 힘이 생기고 이런 힘은 실례를 범하지 않게 해준다.

정리_ 김준수 기자 blueocean617@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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