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송합니다’라는 말을 아시나요? ‘문과라서 죄송합니다’의 줄임말인데요, 문과계열 학생들의 취업률이 낮다보니 생겨난 웃지 못 할 신조어입니다. 고용노동부는 문송한 문과생들을 위해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인문사회·예체능 계열의 40여개 학과를 선정해 ‘대학 전공별 진로가이드북’을 발간했습니다. 전공학과 별로 진출할 수 있는 주요 직업 및 유망 직종 등을 소개한 취업 가이드북입니다. 하지만 추경 예산 20억원이 투입된 고용노동부의 프로젝트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진로가이드북은 황당한 내용이 포함됐다는 이유로 발간 직후에 주목을 받았습니다. ▲서어서문학과-플라밍고 댄서 ▲철학과-웨딩플래너 등 학과와는 관계가 없어 보이는 직업군을 각 전공의 주요 직업으로 꼽았기 때문인데요. 황당한 직업들을 제외하고는 ▲국어국문과-방송작가 ▲영어교육학과-영어마을교사 등과 같이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을 만한 직업들이 가이드북에서 소개됩니다. 예산이 20억이나 투입됐는데 정말로 청년들의 취업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 듭니다. 우리대학 취업경력개발센터의 한 관계자는 “취업을 목전에 둔 대학생들보다는 중·고등학생의 진로 상담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 지적했습니다. 당장의 취업이 급한 대학생의 입장에서 학과 별로 어떤 직업에 진출할 수 있을지 단순히 소개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의 이용득 의원은 “청년 고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추경 예산까지 받아가며 진행한 사업이 오히려 인문계열 청년들을 우롱한다”며 강하게 비판합니다.

지나친 예산이 투입됐다는 비판도 거셉니다. 진로가이드북 제작에 편성된 20억원의 예산 중 절반에 가까운 9억 2천여만원이 인쇄비용으로 사용됐기 때문입니다. 한국고용정보원은 40여권의 학과별 가이드북을 700부 인쇄해 전국의 대학교에 배포했습니다. 책자의 권수로만 따지면 대략 3만권쯤 되는데요, 이를 인쇄하는 데 9억원이 들었다고 하니 계산해보면 책자 한 권 당 약 3만원의 인쇄비가 든 셈입니다. 우리대학 인근 인쇄업체 두 곳에 진로가이드북을 들고 가 인쇄비를 문의해봤습니다. 결코 한 권에 3만원의 인쇄비가 들 수 없다고 혀를 차며 입을 모읍니다. 예산 낭비가 의심되는 대목입니다.

우리대학 취업경력개발센터에도 40여개의 학과를 위한 진로가이드북이 배포돼 있지만 이 중 우리대학에는 없는 학과를 소개한 책이 13권이나 됩니다. 그 학과들이 신설되지 않는 한 그 책들을 참고해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없겠지요. 때문에 취업경력개발센터 관계자는 “e북 또는 PDF 파일을 통해 진로가이드북을 배포하는 것이 더욱 효율적일 것”이라 제언했습니다. 일괄적으로 인쇄된 책자를 배포하는 것이 아니라 각 학과별로 필요한 파일을 받아 사용하도록 하면 인쇄비가 낭비되는 일도 없을 것이라는 지적입니다. 취업상담센터 등을 통해서 주로 배포가 됐기 때문에 실질적 접근성이 떨어지기도 합니다. 학생들에게 홍보가 제대로 됐는지도 의문입니다. 진로가이드북이 발간 된 지 약 2개월이 지났습니다만 지금까지 취업경력개발센터에서 이것을 이용한 상담사례는 한 차례도 없었다고 합니다.

진로가이드북이 문송한 문과생들을 문행(문과라서 행복합니다)하도록 만들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입니다. 어떤 직업이 있는지를 몰라서 수많은 청년들이 취업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세계적인 불황과 불합리한 사회구조가 청년들의 취업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요. 이용득 의원은 “고용노동부는 구직자들이 원하는 정보를 파악해 제대로 된 취업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청년들의 피가 되고 살이 될 진짜 ‘가이드’가 만들어지길 기대해 봅니다.


김수빈 수습기자 vincent0805@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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