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귄터 안더스’라는 필명을 쓴 독일 문필가가 있다.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 이론에 영향을 미친 귄터 안더스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한 매체이론가로 당시 서구 현실을 카메라, TV, 영화 등 기술미디어들이 생산한 복제 이미지들의 세계, 나아가 ‘버추얼’이 ‘리얼’이 돼버린 세계로 진단했다. 그는 가상이기도 실재이기도 한 이러한 이미지를 ‘팬텀’으로, 또 이를 모델 삼아 현실이 복제된다는 의미에서 ‘매트릭스’라고도 불렀다.

즉 우리 눈앞의 현실은 일종의 유령, 사이비 현실이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가상이 어째서 가상에 그치지 않고 실재의 지위를 갖게 되었는가? 안더스에 의하면 현대인이 기술적 이미지들을 현실에 대한 자신의 믿음과 판단을 확증하는 최종 증거로 채택하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지금 이 공화국에는 엽기적이라고 해야 할 팬텀과 이를 매트릭스로 하여 복제된 또 다른 괴이한 팬텀들이 배회하고 있다. 대통령이라는 팬텀과 또 이를 모델로 재생산된 부패한 권력 메커니즘의 팬텀들이다. 최근 이 팬텀들의 출현은 박근혜 대통령의 말과 행동, 입성뿐 아니라 몸과 영혼까지 ‘마사지’해버린 미디어, 그러니까 박근혜 대통령의 실재를 총체적으로 가상화한 미디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누구는 그 미디어를 ‘최순실’이라 하고 또 누구는 ‘최순실과 그 부역자들’이라고 한다.

대통령도 대통령이지만 대통령을 축으로 움직인 뒤틀린 권력 메커니즘도 마찬가지다. 이 유령은 대통령의 팬텀을 모델로 조직적으로 복제된 권력의존적 먹이사슬이다. 최고 권력층부터 합법과 불법을 넘나들며 국민과 기업을 상대로 협박, 회유, 갈취, 뇌물수수 등을 일삼는 왜곡된 권력 행사의 매트릭스가 있었기에 사회의 각층에서 비정상적인 갑을 관계가 정상 행세를 하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이러한 팬텀들의 존재론적 이중성이 우리에게 제기하는 아포리아다. 대통령은 가상이지만 실재이고, 또 그 복제물인 부패 권력의 메커니즘 또한 가상이면서 실재다. 그리고 이들 모두가 우리에겐 엄연한 현실이다. 안더스에 따르면 팬텀과 매트릭스는 이처럼 분명한 현실적 효과를 갖기에 세계를 총체적으로 지배하고, 우리의 사고와 행동, 삶 전체를 구속한다. 최순실과 그 패밀리 및 박근혜 정권의 ‘홍위병’들로 구성된 희대의 미디어가 생산해낸 박근혜 게이트가 온 국민에게 엄청난 공포와 분노를 가져온 까닭이 여기에 있다.

벌건 대낮에도 대통령과 그를 둘러싼 부패권력의 팬텀들이 배회하고 있는 이 총체적 난국의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가? 팬텀과 매트릭스로서의 박근혜와 그를 호위하는 부패권력층인가? 이들을 마사지해버린 미디어로서의 최순실과 그 일당들인가? 혹 가상과 실재를 혼동해버린 ‘순진한’ 수용자인 국민에게도 있는가? 안더스는 현실에서 팬텀과 매트릭스를 걷어낼 규범적 토대를 찾지 못해 염세주의로 빠졌지만, 그래도 우리의 공화국은 “당신의 침묵보다 우리의 분노가 더 아름답다”고 외치는 수백만의 ‘촛불’이 있기에 아직은 희망적이다.


서도식(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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