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작과 끝은 누구의 시점인가

이: 영화는 누군가의 시선으로 시작한다. 시선은 주인공인 앤드류에 집중하고 있다. 카메라가 앤드류에게 점점 다가가는데 시점의 주체가 누구인지 영화는 바로 알려주지 않는다. 앤드류와의 거리가 많이 좁혀지고 나서야 시선의 주체가 플래처라는 것을 관객에게 보여준다.

김: 영화의 엔딩도 플래처의 시점 쇼트이다. 오프닝과 엔딩이 플래처의 시점으로 돼있고 이것이 수미상관 구조를 이루고 있기에 플래처의 시선으로 영화가 포박돼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결국 앤드류가 플래처의 손안에서 놀아난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만든다. 이런 점에서 오프닝 장면이 영리하다고 생각됐다. 이 영화가 어떻게 흘러갈지 간략하게 보여주는 장면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앤드류가 연습하는 곳에 플래처가 들어오더니 동물을 조련하듯이 대한다. 앤드류도 플래처에게 사정없이 휘둘린다. 플래처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말이다.

 
2. 영화 속 영화는 뜻을 품고 있다.

김: 앤드류가 아버지와 영화를 보러 간 장면에 대해서도 말해야 할 것 같다. 앤드류가 극장에서 본 영화는 <리피피>다. 이 영화는 1955년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작품인데, 프랑스 범죄 영화의 걸작 중 하나로 뽑힌다. 은행을 완벽하게 털 수 있는 계획을 세우지만 인간의 약한 본성 때문에 최종적으로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 줄거리다. <위플래쉬>를 보면 약한 본성은 위대한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것처럼 보인다. 이런 점을 강조하기 위해 <리피피>를 영화에 집어넣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 속에 다른 작품을 삽입하는 데 있어서 되도록 본 영화와 관계가 있는 것을 선정하기 때문이다. 플래처는 위대한 예술가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리피피>의 주제를 생각해보면 플래처의 생각과 절묘하게 맞는 부분이 있다고 볼 수 있다.

 
3. 인물은 가치를 대변하는 상징적 존재

김: 앤드류가 여자친구인 니콜과 대화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니콜은 가족이라는 가치를 대변하는 인물처럼 보여진다. 집이 그립다고 말하거나 다른 친구들이 집이 그립지 않다고 말하는 걸 보면 짜증난다고 말하는 것이 그렇다. 이런 대사를 보고 있으면 니콜은 가족적인 가치를 대변하는 인물로 보인다. 결국 앤드류가 니콜과 헤어지는 것을 선택했다는 것은 가족이라는 가치를 버리고 예술가의 길을 택한 것이다. 가족과 식사를 하는 장면에서도 인물들의 가치관에 대해 살펴볼 수 있다. 앤드류의 아버지도 니콜처럼 평범하고 가족적인 가치를 지향하는 사람이다. 평범하고 문제없이 긴 인생을 사는 것을 성공의 기준으로 세운 사람이다.

이: 이와 정반대에 있는 인물이 앤드류와 플래처일 것이다. 식사 장면에서 앤드류는 자신이 생각하는 성공의 기준을 짧더라도 유명세를 누리는 인생이라고 말한다. 또한 흥미로운 것은 앤드류가 니콜에게 데이트하자고 고백하는 장면이 플래처에게 발탁되고 난 후의 상황이라는 거다. 마찬가지로 니콜에게 헤어지자고 한 장면은 경쟁에서 지고 난 이후의 상황이다. 이처럼 앤드류에게 예술가의 길은 모든 가치를 대변할 수 있는 절대적인 가치이다.

김: 엔딩 연주 장면에서 앤드류는 아버지와 포옹하고 다시 드럼을 치러 간다. 그리고 아버지는 열정적으로 연주하는 앤드류를 걱정하는 눈빛으로 바라본다. 앤드류는 아버지보다 플래처를 선택해 가족이 아닌 예술가의 길을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
 

 
4. 인물의 변화를 살펴보는 재미

김: 초반의 앤드류는 건포도를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때문에 팝콘에 뿌려먹을 정도로 착한 캐릭터였다. 그런 캐릭터가 점차 성공을 위해 뻔뻔해지고 날카로워지는 것을 보는 것도 인상적이다. 첫 번째 경연에서 앤드류가 밴드 메인 드러머의 악보를 잃어버리는 상황이 생긴다. 메인 드러머는 악보가 없으면 연주를 할 수가 없기에 최악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앤드류는 자기가 악보를 다 외웠기 때문에 연주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가족 식사 자리에서도 그렇다. 가족들이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으니까 역으로 쏘아 붙인다. 미식축구를 하는 친척에게는 3부 리그라며 깎아내리고 모의유엔을 하는 친척에게는 학생회장이나 하라고 말한다. 이전의 앤드류의 태도와는 정반대다.

김: 가족 식사 이후에는 라이언이라는 보조 드러머가 등장하면서 앤드류는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결국 드럼에만 매진하려고 여자친구와 헤어지려 한다. 그런데 헤어지는 방식이 플래처 같다. 가령 ‘나는 성공을 원하는데 너는 걸림돌이 될 것이다’라고 말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타인의 신경을 쓰지 않고 내뱉는다. 이 영화의 모든 장면에 앤드류가 나온다. 앤드류의 행적을 따라가니 자연스럽게 관객들은 앤드류에게 몰입할 수밖에 없게 된다. 앤드류가 느끼는 피곤한 경쟁들을 관객이 같이 느끼게 되지만 변해가는 앤드류의 모습에 관객들은 살짝 놀라워 할 것 같다.

- 영화의 주제는 무엇인가.

김: 이 영화가 흥미로운 이유는 여러 가지로 해석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는 몇 가지 딜레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첫 번째로 ‘좋은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좋지 못한 수단을 사용해도 되는가’ 이다. 이는 위대한 예술가를 만들기 위해 플래처가 폭력과 폭언으로 학생들에게 심리적 압박을 주는 장면에서 두드러진다.

이: 플래처가 혹독하게 연습시키는 이유도 연습이 곧 실력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음악을 한 적이 있는데 ‘연습이 곧 실력’이란 소리를 많이 들었다. 무대 위로 올라가면 연습 때 실력이 나오기 마련이다. 플래처가 몰아치면서 연습을 시키는 것이 이해가 되더라. 그리고 플래처의 입장에서는 가장 실력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지 특정 인물이 필요한 게 아니다. 악단을 살리기 위해서는 메인 드러머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경우 대신할 만한 인물이 반드시 필요하니까. 하지만 인종이나 젠더 같은 약점을 골라 학생을 압박하는 것은 선을 넘었다고 본다.

김: 두 번째는 ‘이러한 방식으로 탄생한 위대한 예술을 인정할 수 있느냐’는 딜레마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를 앤드류의 성공담으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성공담으로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위대함에 대한 강한 집착이 만든 자기 파괴 같은 느낌이었다. 먼저 마지막 장면에서 앤드류의 멋진 드럼 연주를 듣는 관객들의 리액션 장면이 없다는 점을 이유로 들 수 있을 것 같다. 복면가왕이나 불후의 명곡 같은 예능프로그램을 보더라도 노래를 듣는 관객들의 반응을 보여주기 마련이다. 관객들은 한결같이 황홀하다는 표정을 짓고 노래가 끝나면 박수를 친다. 하지만 <위플래쉬>에서는 그렇지 않다. 영화가 끝나고 박수소리는 들리지 않고 앤드류의 연주를 듣는 관객들을 비추는 장면도 없다. 영화 속 관객의 반응이 중요한 이유는 실제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자신의 감정을 관객들과 동일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일시할 대상이 없으니 관객들은 영화가 끝나고 개운한 느낌을 받지 못한다. 또한 앞에서 말한 것처럼 플래처의 시점으로 끝이 난다는 점도 영화를 앤드류의 성공담으로 봐야할지 의문을 자아내게 한다.

 

정리_ 김준수 기자
blueocean617@uos.ac.kr
사진_ 김수빈 기자
vincent0805@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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