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일본인으로 분장한 백인 배우
“놔랏 말 쐄이~” 톰 크루즈가 곤룡포를 입고 집현전에서 훈민정음을 독창하고 있다면 어떤 느낌일까. ‘왜 백인인 톰 크루즈가 동양인 세종대왕 역할을 하지?’라는 의구심이 들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실제로 할리우드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다음해 개봉예정인 <만리장성>(원제: The Great Wall)에서는 맷 데이먼이 중국 장수를 연기해 논란이 일은 바 있다.

동양인 역할을 백인으로, 화이트워싱  

위와 같은 현상을 ‘화이트워싱’이라고 부른다. 화이트워싱이란 동양인이나 흑인의 역할을 백인으로 바꾸거나 백인 배우가 동양인이나 흑인인 것처럼 연기하는 것을 일컫는 표현이다. 화이트워싱은 언제나 인종차별 논란을 가져왔다. 동양인의 이주가 활발하기 전에는 동양인의 역할을 백인으로 각색하거나 백인 배우가 동양인처럼 연기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동양인 역할을 연기할 수 있는 동양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양인의 미국 진출이 활발하고 아시아계 미국인 배우들도 유명세를 타는 오늘날에도 화이트워싱은 계속되고 있다. 인종평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오늘날의 화이트워싱이 인종차별이라고 맹렬히 비판하고 있다.

동양에 대한 프레임을 고착화시킨다

화이트워싱은 기회의 불평등의 차원을 넘어 인종에 대해 프레임을 씌운 전형적인 인종차별이라는 비판도 제기돼 왔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1961년에 개봉된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이 있다. 이 영화에 출현한 백인 배우는 찢어진 눈과 뻐드렁니를 강조한 분장을 한 채 일본인 역을 연기했는데, 이 모습은 서양인들이 동아시아인에게 갖고 있던 눈이 찢어져 있고 발음이 이상하다는 편견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외형뿐만 아니라 인물 성격묘사까지도 서양의 일방적인 프레임을 답습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영화에서는 ‘교활하고 뻔뻔한 사람’으로, 언제나 일본인 복장을 하고 다니며 항상 화를 내는 사람으로 묘사한다. 서양의 잘못된 편견은 영화 <300>, <엑소더스 - 신들의 전쟁> 등에서도 아랍권, 인도권에 사는 사람들까지 대상으로 한다.

비교문학자 에드워드 사이드는 그의 저서 <오리엔탈리즘>을 통해 서양에서 동양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각을 비판했다. 서양은 동양적 문화를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단어로 표현하면서 제국주의적 시각으로 동양을 바라봤기 때문이다. 사이드는 서양에게 있어서 동양을 이해하는 것, 다시 말해 오리엔탈리즘은 동양의 나라를 침략하고 잘 지배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동양과의 비교를 통해 서양과 정반대되는 것으로서의 동양을 만들어냈다. 영화에서도 이러한 요소들이 종종 발견된다. 영화 <300>에서는 스파르타 군대(서양)와 대척점에 있는 페르시아(동양) 군대를 폐쇄적이고 기이하고 여기저기에 피어싱을 한 사람들로 그리고 있다. 이처럼 서양에서 만들어내는 신비롭지만 과학적이지 않은 동양의 모습은 과학적, 이성적, 현실적인 서양의 속성들을 만들어내는 데 일조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오리엔탈리즘을 통해 만들어진 서양의 문화적 우위는 동양에 대한 차별로 이어졌다.

동양에도 화이트워싱이?

화이트워싱이 서양만의 문제일까. 사실 동양에서도 백인을 따라하는 유사 화이트워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동양인임에도 불구하고 백인에 가까운 흰 피부와 다양한 색의 눈, 평균키가 훌쩍 넘는 신장을 가진 주인공이 애니메이션, 웹툰 등에 나타나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또한 성형외과에서는 쌍커풀, 콧대 높이기 등의 서양인을 따라하는 성형수술도 유행이 된 지 오래다. 이는 우리에게 높은 코, 큰 눈 등이 ‘서구적’이라는 표현을 통해 서구인의 보편성으로 각인된 것이다.

서구적에서 통용되는 미는 어느 순간 동양에서도 추구되는 미가 된 것이다. ‘인문사회와 글쓰기’를 강의하는 함종호 교수는 “서구제국주의에 의해 서구의 미의식이 어느새 무의식적으로 동양인에게 각인된 것”이라며 “미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잘못된 세계화 논리처럼 서구적인 미가 보편적인 미라고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부적합하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서구의 미를 추구하는 것은 문화제국주의의 한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문화제국주의와 오리엔탈리즘에 의해 ‘서구의 미’와 ‘동양의 미’는 각각의 정형성과 보편성을 띠게 됐다. 하지만 오늘날 개개인의 개성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서양에서도 눈이 크지 않거나 코가 높지 않은 배우들도 개성에 의해 인기를 얻고 있으며 이는 동양에서도 마찬가지다. 개성을 인정하고 각자의 장점을 살려 나가야 할 것이다.

 
국승인 기자 qkznlqjffp44@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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