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대학의 동맹휴업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1990년대 이후에도 몇 차례 동맹휴업을 했다.

1991년 5월 9일, 당시 정권의 부당함에 대해 규탄하고 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동맹휴업이 이뤄졌다. 서울시립대신문 제331호(1991.5.9.)의 「오늘 (9일) 범국민대회 예정 대부분 학과 동맹휴업 결의」에 따르면, 동맹휴업의 의의에 대해 당시 총학생회장 최동민(법학 88)은 “6공이 그간 행한 탄압에 대해 백만청년학도가 투쟁의 결의를 높이고 더욱 굳건하게 하는 계기”라고 밝혔다. 당시 학생들은 교내에서 출정식을 가진 후 신설동 로터리까지 평화행진을 하고 범국민대회에 참여했다. 1995년에도 동맹휴업이 있었다. 당시 우리대학을 포함한 전국 204개 대학은 1995년 9월29일부터 이틀 동안 일제히 동맹휴업에 들어가기로 결의했다. 우리대학 학생들은 1995년 9월29일 동맹휴업을 하고 5·18 관련 특별법 제정과 관련자 처벌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 학생들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외치며 교내를 행진하고 있다.
단과대 차원의 동맹휴업도 있었다. 2003년 4월11일, 당시 존재했던 법정대 학생회는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기 위해 동맹휴업을 선포했다. 서울시립대신문 제508호(2003.4.14.)의 「지난 11일 법정대 학생회 ‘전쟁 반대, 파병 반대’ 동맹 휴업」에 의하면 당시 심상덕(법학 99) 법정대 학생회장은 “많은 대학이 11일 동맹휴업을 추진한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대학에서도 함께 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아쉽게도 중앙운영위원회의 합의가 되지 않아 법정대만 추진하게 되었다”며 단과대 단위로 동맹휴업을 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동맹휴업이 투표율 부족으로 부결된 상황도 있었다. 2008년 미국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동맹휴업 투표를 실시했지만 투표율 부족으로 부결됐다. 대신 당시 총학생회는 촛불집회에 참가하는 등의 활동을 이어갔다. 서울시립대신문 제580호(2008.6.10.) 「아쉬운 동맹휴업, 시대인 ‘촛불집회’현장으로」에 따르면 장경태(행정 04) 당시 총학생회장은 “동맹휴업은 부결됐지만 30%가 넘는 학생들이 투표를 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린다. 또한 우리대학도 동맹휴업 투표에 참여해 대학의 집회참여에 한 흐름을 만들었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장한결 기자 uiggg@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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