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떠나가는 것들에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나를 떠난 연인을 대신할 또 다른 사람을 찾아야 할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멀어질 사람과의 관계는 또 어찌해야 할까.

고등학교 철학 교사인 ‘나탈리’는 떠나가는 것들에 대해 고민한다. 남편 ‘하인츠’는 다른 사람이 생겼다며 갑작스레 이별을 통보하고 나이든 어머니는 불안증으로 인해 자살시도 후 요양원에 들어간다. 오랫동안 같이 일하던 출판사는 철학 교재 개편 작업에서 그녀를 제외한다. 이렇게 자신의 곁을 점점 떠나는 것들에 대해 나탈리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미아 한센-러브 감독의 영화 <다가오는 것들>에서는 노년의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다른 작품들과 다르게 캐릭터에 대한 고민이 느껴진다. 노년의 삶에 다가온 갑작스런 위기에 빠진 주인공을 소비하듯 그리지 않기 때문이다. <버킷리스트>처럼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을 정하지 않고,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처럼 외국으로 훌쩍 떠나 사랑에 빠지려고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위기에 처할수록 자신이 있었던 자리를 지킬 뿐이다. 이 작품이 더욱 매력적인 이유는 남편이 누구와 새로운 사랑에 빠졌는지에 대해 영화도 나탈리도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영화에서는 남편의 새로운 사랑에 대해 묘사하지 않는다. 남편의 결별 선언 이후 영화는 오히려 공원에서 낮잠을 자는 나탈리를 비춘다.

▲ 나탈리와 파비앙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렇다고 하인츠와 끝난 로맨스를 파비앙과의 로맨스로 대체하지도 않는다. 영화를 보면서 관객은 나탈리와 젊고 매력적인 제자 파비앙과의 로맨스를 기대하게 되지만 감독은 관객의 기대를 보기 좋게 무시한다. 파비앙은 나탈리에게 신념과 철학에 대해 토론을 벌일 좋은 상대일 뿐 로맨스의 상대가 아니다. 더구나 그는 나탈리가 떠나온 신념을 대변하는 존재이다. 과거에 나탈리는 공산주의자를 옹호하는 좌파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파비앙은 그런 과거의 나탈리를 닮았다. 파비앙과의 로맨스는 나탈리가 떠나온 세계로 재진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과거로부터 너무 먼 길을 떠나온 나탈리에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확실한 것은 과거뿐이고 미래에 확실한 것은 오직 죽음뿐이다’ 철학자 에리히 프롬이 저서 『사랑의 기술』에 남긴 말이다. 나탈리는 자신이 읽었던 책과 그동안 해왔던 사유에 자신을 맡긴다.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책 『난감한 자유』를 유심히 비추는 카메라 그리고 파스칼의 『팡세』가 길게 인용되는 장면은 자유를 얻었지만 그것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나탈리의 ‘난감한’ 상태와 혼란스러운 나탈리의 감정을 대변한다. 그녀가 평생 철학을 가르치는 일에 몸 담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바로 그 철학에서 삶의 위기를 대처하는 방향을 찾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영화 <다가오는 것들>은 ‘떠나가는 것’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다가오는 것’들을 용기 있게 마주하는 태도에 관한 영화이며 동시에 철학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는 영화다.


김준수 기자 blueocean617@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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