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에 맞춰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최종 결론은 나오지 않았지만 작년 가을부터 이어진 뜨거운 역사의 한 시기가 일단락을 맺으려 한다. 바로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시작된 시민 혁명 얘기다. 우리는 매 주말 광장에 모여 촛불시위를 열었고 그 힘으로 국회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어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 탄핵만으로 이 시민 혁명은 끝이 나는 것일까? 시인 김수영은 1960년 4.19 혁명 직후 <기도>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시를 쓰는 마음으로/꽃을 꺾는 마음으로/자는 아이의 고운 숨소리를 듣는 마음으로/죽은 옛 연인을 찾는 마음으로/잊어버린 길을 다시 찾은 반가운 마음으로/우리가 찾은 혁명을 마지막까지 이룩하자// 물이 흘러가는 달이 솟아나는/평범한 대자연의 법칙을 본받아/어리석을 만치 소박하게 성취한/우리들의 혁명을/배암에게 쐐기에게 쥐에게 살쾡이에게/진드기에게 악어에게 표범에게 승냥이에게/늑대에게 고슴도치에게 여우에게 수리에게 빈대에게/다치지 않고 깎이지 않고 물리지 않고 더럽히지 않게”

그렇지만 우리 모두가 역사를 통해 알고 있듯이 그 1년 뒤 맞이한 것은 새로운 희망의 시대가 아니라 5.16 군사쿠데타였다. 4.19 혁명으로 수립된 제2공화국은 수많은 국민들의 개혁 열망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정파간 정쟁을 일삼다가 결국 군부에 그 권력을 넘겨줘야 했다. 1987년 6월 항쟁도 마찬가지였다. 야권의 분열로 신군부는 도리어 대통령 직선을 통해 그 권력을 합법적으로 연장할 수 있었다. 바로 지금 이 시기에 역사의 데자뷔를 느끼고 있다고 한다면 괜한 우려일까? 

이번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단순히 권력 최상부의 비정상적이고 우발적인 일탈로만 바라보기는 힘들다. 하도 많은 충격적인 뉴스에 지쳐있기는 하지만 일련의 사건들을 복기해보면, 이 사건은 재벌, 권력, 언론, 법조계, 문화예술계, 대학 등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 전반에 누적된 모든 모순들과 연관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 문제는 단순히 대통령 한 명을 탄핵하는 것으로 그리고 일부 권력집단을 갈아치우는 것만으로 종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물 위에 떠있는 빙산의 일각을 깎아버린다고 해도 수면 아래 더 커다란 부분이 남아있는 한 빙산은 다시 그 고개를 물 밖으로 내밀 것이다. 이번에 모두가 인지하게 된 그 오래된 한국 사회의 모순들을 일거에 해결할 수는 없을 지라도 자신의 일상으로 가져와 계속해서 성찰하고 고쳐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정말 더 긴 시간이 걸리고 온갖 난관에 맞닥뜨리게 될지라도 시인의 말대로 시를 쓰는 마음으로 꽃을 꺾는 마음으로 잊어버린 길을 다시 찾은 반가운 마음으로 우리가 찾은 혁명을 마지막까지 이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반쯤은 현실이 된 ‘헬조선’이라는 비유가 정말로 현실로 도래할 것이기에...


하남석(중국어문화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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