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이 안 된다. 한 일간지에서는 아예 남학생은 10~12학번, 여학생은 12~14학번이 취업이 어려울 거라 콕 집어주기도 했다. 좌절하는 청년들에게 자기계발 서적이 외친다. “자기계발로 경쟁력을 키우자.” 하지만 미키 맥기의 『자기계발의 덫』에 따르면 이는 독자에 대한 기만이다.

1970년대의 오일쇼크로 시작된 경제 불황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불황과 경제적 불평등 속에서 저임금 노동자로서의 삶은 고단하다. 21세기로 넘어오면서 자기계발서는 노동자들이 예술가가 될 것을 주문한다. 자기계발서 저자들은 노동을 통한 생산물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보라고 말한다. 이를 통해 고단한 노동은 창조적 행위가 된다. 수동적인 노동자들이 능동적인 예술가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이 가지는 가장 파괴적인 힘은 저임금의 정당화다. 노동자는 예술가가 되면서 물질적 초연함을 요구받는다. 오늘날 열정페이라는 표현이 등장한 것도 노동자에 대한 재정의와 무관하지 않다. 예술가는 돈보다 창조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존재다. 노동자들은 터무니없이 낮은 임금에도 노동에 만족할 것을 요구받는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월세를 벌기 위해 한국대중음악상 트로피를 경매한 인디뮤지션 이랑의 퍼포먼스는 예술가도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저임금 정당화 풍조에서 나타나듯 자기계발서는 현실에의 순응을 종용한다. 고용의 유연화와 소득불평등이 점차 심각해지는 시대에 자신을 맞추기 위해서는 혹독한 노력이 필요하다. 『자기계발의 덫』에서는 이 때문에 ‘시달리는 자아’라는 현상이 발생한다고 말한다. 개인은 취업을 하기 위해서, 무의미한 저임금 노동에 창조적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이 부분에서 『자기계발의 덫』은 한병철의『피로사회』를 떠올리게 한다.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질병이 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피로사회』에서는 우울증을 신자유주의 시대의 고유 질병으로 정의한다. 우울증은 더 나은 성과를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자기 착취 때문에 발생한다. 자기 착취에서 타자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성과에 대한 욕망을 물리쳐야 한다.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일어나는 병리적 현상으로 ‘시달리는 자아’와 ‘자기 착취’를 꼽은 점에서 『자기계발의 덫』과 『피로사회』는 유사하다. 하지만 대응을 볼 때 『자기계발의 덫』은 『피로사회』보다 앞서나간다. 『피로사회』식 해법의 가장 큰 단점은 정치의 영역을 일소하는 것이다. 문제에 대한 해답은 개인 내면에 있기 때문에 타인과의 연대는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자기 착취는 과연 자발적인가. 비정규직 노동자가 계약 연장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개인의 욕망 때문일까. 성과연봉제에 대한 끊임없는 반대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노동자가 예술가가 되더라도, 즉 자기 착취에서 초연해지더라도 생활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결국 신자유주의를 날카롭게 꼬집으며 시작한 『피로사회』는 책 말미에 가서 자기계발서가 돼버린다. 자기계발의 억지 논리를 통용시키기 위해 자기계발서는 사회의 존재를 감춘다. 그리고 오로지 개인의 내면만 바라보게 한다. 이렇듯 사회의 부재는 자기계발서의 주요 특징이다. 하지만 법, 제도, 정부, 시장, 시민사회 등 사회는 우리 삶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친다. 『자기계발의 덫』에 따르면 21세기의 자기계발서는 새로운 방향으로 재정립돼야 한다. 내가 아닌 우리로.   


최진렬 기자 fufwlschl@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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