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은 읽어봐야 할 것 같은데, 어렵고 고리타분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요.” 보통 고전에 대해 가지는 생각이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우리는 수도 없이 많은 고전들을 보고 듣고 체험하고 있다. 작년에 큰 화재를 모았던 드라마 ‘도깨비’의 김은숙 작가는 우리나라의 고전 설화인 도깨비 설화를 모티브로 가져왔다고 밝힌 바 있다. 이렇게 고전은 여러 방식으로 변형되기도 하는데, 그 중 흥미로운 유형들을 살펴보자.

우선 고전을 현대의 배경으로 재생산하는 유형이 있다. 영화 <전우치>와 <홍길동의 후예>등이 대표적이다. 홍길동의 후손인 주인공 ‘홍무혁’이 낮에는 평범한 직장인이지만 밤에는 정의로운 도둑이 되어 부패한 정치·경제계의 인사들의 재물들을 훔치는 이야기다. 홍길동의 후손을 전면에 내세우지만, 정작 홍무혁의 역할과 홍길동의 역할은 같다.

이런 고전의 현대화는 시대와 배경 자체가 아예 바뀌는 것이기 때문에 원전의 구조를 그대로 따라갈 수는 없다. 예를 들어 홍길동전처럼 첩을 둘 수 있는 제도도 없으며 신분제 사회도 아니다. 하지만 부패한 상위계층을 의적이 벌준다는 주제의식은 그대로 계승된다. 조선시대에 횡행한 탐관오리들의 부정부패는 현대로 넘어와도 여전하다. 이에 따라 이들을 벌을 줄 영웅이 지속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우리대학 국어국문학과 서유경 교수는 “(멋진 도술이나 케이퍼 무비적 요소가 있지만) 옛 것을 그대로 두면 대중은 재미없어 한다”며 “이러한 부분들을 현대의 의미로 이끌어내고 싶은 욕구가 창작자들에게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영화 <방자전>에서 방자는 주인공으로서 춘향과 연애한다
고전 자체를 새롭게 해석하는 경향도 있다. 영화 <방자전>이 그 경우다. 본래 춘향전에서 방자는 이몽룡의 몸종에 불과하며 캐릭터도 뚜렷하지 않은 주변적 인물이었다. 하지만 <방자전>에서는 방자가 주인공이 된다. 방자에게 캐릭터가 부여될 뿐만 아니라 춘향과의 러브라인도 형성된다. 이는 ‘이몽룡과 춘향이 사랑에 빠진다’는 당연한 논리를 깨부수는 것이다. 영화 <마담, 뺑덕>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영화에서 주인공 심청은 주변 인물로 밀려나고 주변 인물이었던 심봉사와 뺑덕 어멈이 중심인물이 된다. 서 교수는 “중심인물을 바꿔치기하는 것은 독자들로 하여금 신선함을 준다. 이러한 독자들의 반응을 노리는 창작자의 욕구라고 볼 수 있다”며 “한편으로 이는 주인공뿐만 아니라 주변인물, 보통 사람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모던한 관점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춘향은 신분상승을 위해, 이몽룡은 유명해지기 위해 철저히 이해타산적인 태도로 연기를 한다. 방자전이 가지고 있는 또다른 흥미로운 특징은 배경은 비록 조선시대이지만 인물들의 논리가 다분히 현대적이라는 것이다. 권력에 대한 욕심으로 거짓 연애를 하는 것이 정절, 순수한 사랑을 강조하는 고전 소설의 일반적인 논리와는 다르다.  
고전을 변용하면서 고전은 세련된 콘텐츠가 된다.

하지만 고전이 아무리 각색돼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 보편적 정서다. 이는 우리나라 특유의 정신이다. 고전 소설에서 시련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고전의 배경은 탐관오리들이 부정을 저지르고 전쟁과 기아가 수도 없이 발생하는 시대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고전은 이러한 비극적 상황에서도 웃음을 지으려 한다. 해학과 풍자, 해피엔딩은 우리나라 고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김대행 교수는 이를 ‘웃음으로 눈물 닦기’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현대 대중문화에도 마찬가지다. 서양의 비극과 달리, 우리나라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해피엔딩을 바라곤 하며 실제로 해피엔딩으로 끝을 내는 경우가 대다수다. 서 교수는 “우리 고전 안에는 한은 서려있는데 극도의 슬픔으로 끝내지도 않는다는 역설이 녹아 있다”며 “악을 벌줘야 속이 후련한 윤리적인 의식, 사랑은 결국 이뤄져야 한다는 소망. 이러한 ‘행복한 세계관’이 그나마 고대부터 전해져온 우리의 공통된 정서”라고 설명했다.

현대 대중문화에서 고전은 창조의 모티브가 되기도 하고, 재해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또한 고전에서부터 내려오는 우리나라만의 정서를 알려주는 중요한 바탕이 되기도 한다. 드라마 도깨비도 마찬가지다. 도깨비가 불로장생하여 현대까지 살아있다는 것을 가정해 멋진 현대극으로 풀어냈으며, 저승사자라는 주변적 인물에 멋있는 설정을 부여해 중심인물로 끌어들였다. 그와 더불어 주인공 커플은 행복한 결말을 맞게 된다. 서 교수는 “진부하다는 생각보다는 예나 지금이나 반복되는 인류의 역사로서 고전을 바라보면 좋을 것 같다. ‘고전’이라고 할 때 오래됐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현대에 향유해도 가치가 있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국승인 기자 qkznlqjffp44@uos.ac.kr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