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이룰 수 없는 사랑>은 12세기 블라예 공국의 왕자 ‘조프레 루델’이 동방에 있는 이상형 ‘클레망스’를 연모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면서 시작된다. 왕자는 직접 ‘클레망스’를 만나기 위해 트리폴리로 향하지만 그의 간절한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탈리아어로 된 구슬픈 노래가 울려 퍼지는 이곳은 외국의 극장이 아닌 ‘영화관’이다. 

최근들어 연극이나 오페라 등의 공연을 촬영해 스크린으로 앙코르 상영을 하는 극장들이 주목 받고 있다. 메가박스의 경우, ‘@MET: LIVE IN’ 이라는 기획을 통해 3대 오페라 극장으로 일컬어지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서 상연된 공연의 촬영물을 상영하고 있다. 국립해오름극장에서도 지난 1월 29일까지 ‘NT라이브’를 통해 해외 영국 국립극장에서 상연된 화제작을 상영했다.

 
공연 영상화는 연극의 본고장에서 유명한 외국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싶은 공연 팬들의 마음을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 메가박스 목동에서 오페라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관람한 김영숙(45) 씨는 “평소 오페라를 좋아해 외국 여행을 간다면 오페라를 관람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았다”며 “하지만 경비를 생각하면 꿈도 못 꿀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메가박스에서 본토의 대극장에서 공연되었던 유명한 외국 배우들의 오페라를 볼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보러오게 됐다”고 관람 동기를 말했다. 평소 연극을 좋아하는 이전형(23) 씨는 “우리나라에도 번역된 유명 해외 연극들을 대학로 등지에서 관람할 수 있지만 연극을 좋아하다보면 외국에서 가서 외국 배우들이 열연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로망이 있다”고 말했다.  

관람료 또한 싼 편이다. @MET: LIVE IN의 관람료는 3만원이며 NT라이브는 1만 오천원이다. 대형 연극이 평균적으로 5만원을 호가한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싼 가격이다.

외국에서 공연을 본다면 언어에 대한 걱정이 들 수 있지만 공연 영상화에서는 걱정할 필요 없다. 공연의 영상화에는 굉장히 세밀한 번역도 동반돼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연극은 일반 상업 영화보다 문학적인 표현이 들어가기 때문에 이를 번역하는 것은 까다로운 작업이다. 오페라도 마찬가지다. 운율이 담긴 노랫말 속에서 번역하기 어려운 시적인 표현은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오페라의 대부분은 이태리어를 사용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번역팀에서는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영화를 번역하는 데 평균적으로 걸리는 시간은 일주일인 반면, 이들 공연 영상화를 위한 번역은 그 이상의 노력이 들어간다고 한다. 국립극장 공연기획부 공연기획팀 김영숙 PD는 “대본 번역과 한글 작업에만 두 달 가까이 소요된다”며 “여러 번의 감수를 통해 한국 관객이 공감할 수 있도록 번역하는 데 신경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 오페라 <이룰 수 없는 사랑>에서 조프레가 숨을 거두고 있는 장면. 고화질로 상영해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은 3월 31일까지 상영된다.
공연의 매력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을까

공연의 영상화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상식에 의문을 제기한다. 관객과 배우가 반드시 무대를 사이에 두고 상호작용해야하는 것인지, 원전인 무대의 복제에 불과한 스크린은 진정으로 힘이 없는 것인지 말이다. 이러한 의문을 풀기 위해 몇 가지 논의를 짚어 보자.

독일 철학자 벤야민은 ‘아우라’라는 개념을 통해 원전의 힘을 역설했다. 예술의 아우라는 직접 보고 듣는 데에서 비롯하는데, 스크린 앞에 놓인 관객들은 정작 그 아우라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살아있는 공연의 매력이 반감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연극의 4요소는 배우, 무대, 희곡 그리고 관객이다. 배우는 연기에 집중하기 위해 관객에게도 동일한 집중을 요구한다. 배우와 관객의 상호작용은 필연적이다. 관객이 없는 배우의 독백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관객 또한 마찬가지다. 스크린은 무대와 엄연히 다르다. 물조차 마실 수 없던 무대 앞과는 달리 관객은 이미 녹화돼 있는 영상을 본다. 스크린 앞에서는 음료를 마시기도 하며 팝콘을 먹을 수도 있다. 배우와 관객은 단절돼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공연과 영상의 결합은 기존의 연극이 줄 수 없는 색다른 느낌을 준다.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는 ‘시뮬라크르’ 개념을 통해 복제품의 권위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는 복제품은 그 형상이 나오는 순간부터 원전과 같아지지 않고 새롭고 독립적인 지위를 같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새로운 가치 정립을 통해 관객과 배우의 관계는 재정립되고 무대와 스크린은 동등한 위치에 놓이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공연의 영상화는 무대만큼의 효과를 줄 수 없을지 모르지만 기술 발전을 통해 스크린이 무대의 시뮬라크르로서 무대와는 또 다른 즐거움이나 의미를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 연극 <제인에어>의 한 장면. 주인공의 고뇌가 느껴진다.영화인지 연극인지 구분이 안 간다.
공연에 영상적 요소를 결합했다는 사실이 또 다른 즐거움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극장에서 연극을 볼 때, 우리의 시야는 무대의 전체를 향하게 된다. 대사를 말하는 배우의 표정뿐만 아니라 몸짓, 상대배우의 반응, 배경 등을 종합적으로 살피게 된다. 하지만 영상에서는 카메라가 장면 마다마다의 중요한 부분을 짚어주는 안내자 역할을 한다. 인물이 대사를 말할 때는 인물을 클로즈업해 인물의 표정 하나하나를 볼 수밖에 없게 만든다. 무대를 비출 때는 롱쇼트로 잡는다. 김 PD는 “배우의 섬세한 연기력은 물론 세밀한 움직임을 다양한 각도로 설치된 카메라의 근접 촬영과 편집 기술을 통해 실제 객석에서 보는 것보다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영화같은 연극을 본다는 것도 색다른 매력으로 다가올 것이다.

한편으로는 기술 발전에 따라 스크린이 무대와 다를 바 없이 느껴지는 날이 올지 모른다. 메가박스 조인정 대리는 “최신식 영상 기술과 음향 기술로 상영해 실제로 보는 것처럼 몰입감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높은 해상도와 사운드를 제공하고자 최신식 장비를 도입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실제와 비슷한 환경을 제공하려 하는 것이다. 수많은 영화들에서 현실과 가상 세계의 구분이 사라진 미래를 그리고 있는데, 실현될 날이 머지 않아 보인다.

극장의 외연 확장도 눈여겨 볼만 하다. 메가박스에서는 오페라뿐만 아니라 연극, 오케스트라 공연까지도 스크린을 통해 관객들과 만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조 대리는 “메가박스가 공연 콘텐츠의 상영을 시작하게 된 것은 가치 있는 콘텐츠를 소개함으로써, 고객들에게 다양한 영화적 경험을 선사하기 위함이었다”며 “단순히 영화를 상영하고 관람하는 공간을 넘어 문화적인 체험이 확장되고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영화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국립극장들도 마찬가지다. 김PD는 “현재 NT Live의 차기 상영작을 검토하고 있고, 작품은 2017-2018 국립극장 레퍼토리시즌이 오픈되는 7월 중 공개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승인 기자 qkznlqjffp44@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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