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문제가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지난달 24일 제13차 인구포럼을 열어 저출산 대책을 논의했습니다. 당시 발표를 한 원종욱 선임연구원은 저출산의 원인으로 낮은 혼인율을 꼽았습니다. 원종욱 선임연구원은 청년들이 불필요하게 교육에 투자하는 시간을 줄이면 혼인율이 올라갈 것으로 봤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불필요한 스펙 쌓기가 취업에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사실을 공공기관과 기업에 고지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시립대학교 이윤석 교수는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고 일축했습니다. 기업에서 고스펙 지원자를 취직에 불리하게 대하도록 정부가 강제할 수단이 없을뿐더러 개인 문제인 혼인을 이유로 고용에 관여하는 것도 부적절하기 때문입니다.

혼인에 소요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열정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원종욱 선임연구위원은 가상공간에서 배우자를 탐색할 수 있는 가상현실 기술을 대학에 보급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과연 가상현실 기술이 혼인율을 올리는 데 크게 도움이 될지는 의문입니다. 리서치 전문기업인 마크로밀엠브레인이 지난해 만 19~59세 남녀에게 최근 비혼족이 증가한 이유를 묻자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미혼남녀의 증가”를 답한 사람이 71.2%를 차지했습니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먹고 살기 힘든 게 결혼을 피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인 것입니다.

이외에도 원종욱 선임연구원은 여성이 하향 선택결혼을 하도록 유도해 혼인율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여성이 자신보다 소득이나 학력이 낮은 남성과 결혼하도록 유도해 결혼의 기회를 확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낮은 혼인율은 사회적 문제인데 왜 여성이 하향 선택결혼을 해야 할까요. 여성의 높은 소득이나 학력보다 남녀 임금격차가 출산율을 낮추는 주요인이라고 지적하는 연구가 있어 눈길을 끕니다. 연세대학고 김영미 교수가 작년에 발표한 논문인 ‘출산과 성평등주의 다층분석’에 의하면 남녀 임금격차가 클수록 출산율이 떨어졌습니다. 이때 여성이 고학력이면 감소폭이 더 커졌습니다. 정부에서 정말로 출산율을 높이기 원한다면 고스펙 여성을 차별하기보다 남녀 사이의 과도한 임극격차를 줄이는 게 더 바람직해 보입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여성이 직장생활하기에 쉽지 않은 나라입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우리나라를 OECD 국가 중 여성의 유리천장이 가장 심한 나라라고 꼽았습니다. 이 교수는 “안정적인 직장을 잡기가 어렵게 되면 당연히 경제적인 지원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을 결혼 상대로 찾을 수밖에 없다. 사회구조적 측면에서 볼 때 여성은 상향 선택결혼을 할 수밖에 없다”며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문제의 원인을 보지 않고 해결하겠다는 자세”를 보였다고 말했습니다.

잘못된 대책이 시행돼 출산율을 높이기는커녕 여성들에게 피해만 주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합니다. 원종욱 선임연구원은 발제문에서 ‘단순한 홍보가 아닌 대중에게 무해한 음모수준으로 은밀히 진행될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무해한 음모수준이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음모를 은밀히 진행하기 위해 일부러 어렵게 설명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는 해당 자료를 보도자료로 배포하며 언행불일치를 보였습니다. 은밀히 진행해야 된다며 공개적으로 떠벌린 셈입니다. 여러 언론에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출산율 재고 정책을 비판하자 많은 사람들이 해당 내용을 알게 됐습니다. 지금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책임자 사퇴를 촉구하는 항의글이 끝없이 게시돼 있습니다. 무해한 음모인데 사람들은 왜 이렇게 화를 내는 걸까요. 국어사전에 무해를 쳐봤습니다. 이런 무해의 다른 뜻이 있네요. ‘거짓으로 꾸며 해롭게 함.’ 모든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최진렬 기자 fufwlschl@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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