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결혼을 하지 않는 남녀를 모두 싱글, 혹은 미혼자로 불렀다. 그러나 최근 들어 미혼이라는 용어보다는 비혼이라는 용어가 더욱 많이 보인다. 미(未)혼과 비(非)혼. 언뜻 비슷해 보이는 두 단어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미혼이라는 단어 속에는 성인이 돼서도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담겨있다. 반면 비혼이라는 단어는 자신의 의지로 결혼을 하지 않음을 강조한다. 자의적으로 결혼을 거부하는 비혼이 사회적으로 확산되자 배우자 없이 홀로 웨딩드레스를 차려입고 웨딩촬영을 하는 여성들도 늘었다.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비혼식’을 올리는 사람들도, 자신이 지금까지 친구들의 결혼식에서 냈던 부조금을 돌려받는 문화도 생겨났다.

한국의 혼인율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통계청은 작년의 혼인율이 42년 만에 역대 최저치를 달성했다고 발표했다. 평균 초혼연령은 2015년에 남녀 모두 30세를 넘었다. 사람들이 점점 결혼을 기피하게 되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먼저 경제적인 어려움이다. 결혼을 하기 위해 들어가는 돈이 너무 많은데 이를 감당할 만한 경제적 여유가 청년 세대에게 없다. 우리대학 도시사회학과 이윤석 교수는 “경제적인 불황이 결혼을 기피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청년들이 제대로 된 일자리도 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결혼을 할 수나 있겠냐”고 반문했다. 작년의 청년실업률은 9.8%로 역대 최고치를 달성했을 만큼 오늘날 청년세대의 실업 및 고용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개인주의의 확산 역시 2030세대가 결혼을 기피하는 이유 중 하나다. 한국여성정책연구소 김영란 연구위원은 결혼이 결코 개인과 개인의 만남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고 꼬집는다. 김 연구위원은 “결혼은 친인척 관계가 확장되는 결과를 낳는 등 가족과 가족 간의 만남이며 더 나아가 사회끼리의 결합”이라며 “명절에 친척들만 만나도 사생활을 묻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 상태인데 결혼을 통해 관계가 확장되면 내 가족이 아닌 다른 가족으로부터 사생활을 간섭 당하게 된다. 개인을 존중하지 않는 집단 중심적인 문화가 결혼을 기피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리서치 전문 기업 마크로밀엠브레인이 작년에 실시한 비혼 관련 설문조사에서 ‘새로운 가족관계에 대한 부담’ 때문에 결혼을 기피한다고 대답한 비율은 여성이 58%, 남성이 27.4%로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경제적 어려움과 개인화되는 사회 분위기만으로 비혼주의자들이 늘어나는 이유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비혼의 이유는 다양하다. 가부장 질서에서 비롯되는 불편함, 차별, 부당한 대우를 피하기 위해서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특히 여성에게 있어 결혼은 가부장 질서로의 편입이다. 결혼을 선택함으로서 발생하는 기회비용이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다. 결혼 이후에 가사노동 혹은 육아의 책임을 대개 여성이 부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결혼제도가 남성에게 무조건적인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도 아니다. 가부장 질서 아래에서 남성은 가정을 꾸리고 난 후 경제적 책임을 부담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결국 현대의 결혼제도가 남녀 모두에게 이익이 되지 않기 때문에 결혼을 기피하게 되는 것이다. 이에 비혼주의자들의 결혼에 대한 거부, 특히 비혼 여성들의 등장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가부장제에 대한 상징적인 저항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한 결혼을 반드시 해야만 하냐는 근본적인 물음이 비혼을 선택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과거에는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 ‘비정상’으로 취급되는 결혼 중심적 사회였지만 오늘날의 청년세대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통계청이 작년에 실시한 ‘결혼에 대한 견해’ 사회조사에 따르면 ‘결혼을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고 답한 사람은 42.9%로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답한 12.5%의 3배가 넘는다. 이렇듯 오늘날의 2030세대에게 결혼은 더 이상 일생일대의 과업이 아니다. 결혼은 개인의 성향과 가치관에 따라 선택해도 되고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하나의 옵션이다. 이 교수는 “비혼이라는 것은 아주 특별한 선택이 아니다. 그냥 결혼 하지 않는 것을 선택한 것일 뿐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비혼주의자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과거에 머물러 있다. 비혼주의자가 스스로 비혼주의자임을 밝혔을 때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외롭겠다” 혹은 “아직 짝을 못 만나서 그래”처럼 당사자의 비혼 의지를 무시하는 발언들이라고 한다. 이는 비혼에 대한 부족한 이해에서 비롯되는 오해다. 비혼은 홀로 살겠다는 독신주의나 연애를 하지 않겠다는 것과는 다르다. 제도적인 결혼을 거부하더라도 연인과 같은 집에서 함께 살 수 있고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며 자녀를 출산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의 가족제도는 여전히 법적으로 혼인한 부부와 그들의 미혼 자녀로 이루어진 전통적인 가족상에 한정돼있다. 한국 전체 가구 중 가장 많은 27.2%를 차지하는 가구 형태는 1인 가구이지만 여전히 교과서에 나오는 전형적인 가족의 모습은 부부와 미혼 자녀로 이루어진 형태다. 이미 변화하고 있는 가족상을 반영하지 못하는 현재의 가족제도와 결혼제도를 보완하기 위해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동반자 등록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동반자 등록법은 동성 커플, 미혼모 가정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의 법안이다. 김 연구위원은 “국가가 나서서 결혼을 해라, 이런 가정을 꾸려라 등 개인의 선택을 강요할 권리는 없다. 그러나 가정의 형태로 인해 사회적 불이익을 당한다면 그는 분명히 국가가 시정해야 할 부분”이라며 “정형 가족의 형태라는 것을 상정해서 차별을 줘서는 안 된다. 내가 결혼을 하든 하지 않든, 어떤 가족의 형태를 선택하든, 어떤 가정에서 태어났든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지금보다 비혼에 대한 논의가 더욱 많이 이뤄지고 비혼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사회는 어떻게 변화할까. 이 교수는 “결혼제도를 포함해 굉장히 많은 가족관련 제도들이 유연화 되고 다양한 가족형태의 출발점이 마련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수빈 기자_ vincent0805@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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