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문제로 한중관계가 시끄럽다. 지난 15일 중국정부는 한국의 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으로 ‘한국 여행상품 판매금지령’을 내렸다. 이후 언론에서는 유커들을 주요 고객으로 삼는 명동 상권이 죽어가고 있다는 보도를 쏟아냈다. 사드 문제가 발생하기 이전의 명동거리를 떠올려보면 양손에 쇼핑백을 가득 들고 다니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정말로 명동이 텅 비었을까? 지난 일요일, 궁금한 마음을 품고 지하철에 올라탔다.

오후 5시 30분. 4호선 명동역 개찰구를 통과하자마자 만난 사람들은 중국어를 쓰는 외국인 관광객이었다. 중국에서 온 사람들인지 같은 중국어를 사용하는 홍콩이나 대만 관광객인지 알 수 없었지만 중국인이 사라진 명동을 상상한 기자에게는 뜻밖의 만남이었다. 주말 오후여서인지 명동을 찾은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뉴스를 통해 연일 보도되는 휑한 모습은 볼 수 없었다. 한 손에는 여행용 캐리어를, 다른 한 손에는 길거리에서 파는 음식을 든 외국인 관광객은 여전히 명동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노점상에서 판매하는 모자나 액세서리를 구경하는 내국인 관광객 역시 많았다. 외모만으로는 내국인인지 외국인 관광객인지 확실히 구별하기가 힘들어 사람들의 말소리에 귀를 기울여 봤다. 일본어부터 영어, 그리고 아랍어까지. 다양한 국적의 관광객들이 일요일 저녁 명동을 찾고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중국어는 많이 들리지 않았다.

명동거리 구석구석에서는 호객행위를 하는 상인들을 만나볼 수 있다. 유커들이 줄고 상대적으로 일본인 관광객의 수가 많아져서일까. 음식점과 화장품 가게 앞에서 대부분의 상인들은 일본어로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1시간 30분 동안 명동거리를 돌아다녔지만, 명동에 자리한 수많은 가게들 중 중국어로 호객행위를 하는 가게는 단 두 곳밖에 보지 못했다. 복잡한 명동거리를 빠져나와 큰길을 건너면 롯데백화점 본점이 있다. 백화점 건물 가장 위층에 위치한 면세점은 평소 유커들이 줄을 서 물건을 사기로 유명한 곳이다. 그러나 명품 가방이나 시계 등을 파는 구역에는 물건을 구경하는 손님보다 점포를 지키는 직원이 더 많았다. 김이나 홍삼 등 한국 특산물과 건강식품을 파는 구역에서만 지갑을 여는 외국인 관광객을 겨우 볼 수 있었다.

▲ 일요일 오후 5시 30분의 명동. 이전보다 거리가 한산하긴 하지만 여전히 명동을 찾는 관광객들은 많았다.
중국에서 우리대학으로 교환학생을 온 등정정(국문 15) 씨는 “중국인들이 아예 한국에 올 수 없는 건 아니지만 예전에 비해 많이 준 것은 사실”이라며 “많은 (중국)친구들이 외교 문제로 인해 한국 브랜드와 상품을 거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명동 상인들은 정말로 유커들이 줄어든 것을 체감하고 있을까. 명동거리 가장 중앙에 위치한 한 화장품 가게에서 일하는 정향원(29) 씨는 “외교 문제로 명동을 찾는 중국인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매출이 떨어지는 등의 문제는 아직 발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화장품 가게의 직원 A씨 역시 “유커들이 많이 줄기는 했다. 대신 일본이나 동남아 쪽 관광객들이 이전보다 많이 가게를 찾는다”며 “유커의 구매력과 다른 국적 관광객들의 구매력이 크게 차이는 나지 않는다. 오늘 오전만 해도 일본인 관광객이 물건을 다량으로 구입해갔다”고 밝혔다.

“외국인들이 확실히 줄긴 줄었다. 이제 걸어 다니기 편하네” 사진을 찍고 있는데 지나가는 행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거리에 찬바람이 분다’, ‘장사가 되지 않아 문을 닫는 가게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난다’, ‘명동의 봄날은 없다’ 등 명동 상권의 위기를 강조하는 뉴스 보도를 선뜻 믿기 힘들만큼 명동을 찾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았다. 명동을 방문하는 유커들이 줄기는 했지만 그 빈자리를 일본과 동남아에서 온 관광객이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론에서 명동이 ‘죽어가고 있다’고 표현할 만큼 위기가 찾아온 것은 아직 아닌 모양이었다.


글·사진_ 김수빈 기자 vincent0805@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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