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LG유플러스 고객센터에서 현장실습생 텔레마케터로 일하던 고3 여학생이 스트레스로 인해 자살한 사건이 얼마 전 알려졌다. 그녀는 해지 요청 고객을 상대하는 부서에서 상품 해지를 막는 업무를 맡았다. 해당 부서는 2년 전 경력자조차 자살한 사건이 있었던 곳이다. 퇴근시간이 지난 그녀에게 아버지가 전화하자 “아빠, 나 콜수 못 채웠어”라는 문자만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텔레마케터는 대표적인 감정노동자 직업 중 하나다. 미소를 지으며 친절하게 고객을 대해야만 하는 감정노동자들은 언제 어디서나 고통받고 있다.

감정노동이란 고객만족을 위해 자신의 영혼과 감정을 자본에 예속시키는 행위로, 서비스업이 대표적인 감정노동이다. 위 정의에 따르면 전체 노동자 중 80%가 감정노동자에 속한다. 과거에 감정노동자로 분류됐던 직업은 콜센터의 텔레마케터, 마트 백화점의 직원, A/S센터, 간호사, 스튜어디스, 은행원 등 서비스업종 근로자에 그쳤다. 그러나 현대사회에는 갑, 을 관계로 일하는 모든 직장인들, 직장 상하관계까지 모두 감정노동의 영역에 속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감정노동자들의 건강 상태는 매우 열악하다. 지난 2010년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서비스직 감정노동자의 26.6%가 심리상담이 필요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는데, 이는 징계 해직자 우울증 비율(28.5%)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서울대 의대 김인아 교수의 ‘감정노동실태와 건강영향 정책방향’에 따르면 감정노동 업계 근로자는 그렇지 않은 근로자들에 비해 2주 연속 우울감을 느낀 확률이 남성은 3.4배, 여성은 3.9배 높았다. 또한 최근 1년간 자살을 생각한 비율도 남녀 각각 3.7배, 2.9배 높았다.

 
감정노동은 고객만족과 관계가 깊다. 30년 전만 해도 고객만족이라는 개념은 없었다. 고객만족경영이 모든 기업이 추구하는 최고의 기업가치도 아니었다. 고객만족이라는 개념은 1980년 유럽에서 만들어졌다. 생산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상품의 품질로는 경쟁우위를 차지하기 어려웠던 당시의 기업들은 ‘친절’이라는 이름의 상품을 팔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는 한국고객만족도가 외환위기 이후 도입돼 고객만족경영 붐이 일기 시작했다. 그러다 참여정부가 중앙부처·공공기관·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공공기관 고객만족도’를 조사해 경영 평가에 반영하면서 공공부문 또한 고객만족 열풍에 휩싸이게 됐다.

감정노동연구소 김태흥 소장은 인천공항이 고객만족 열풍에 힘입어 성공한 대표적인 기업이라며 “기업의 성장은 비정규직 감정노동자들의 희생 위에서 이루어진 성과”라고 전했다. 인천공항은 비정규직 87.4%로 대부분의 분야를 용역업체에 하청을 주어 노동자들을 간접고용하고 있다. 인천공항에 근무하는 노동자의 평균 근속년수는 7.4년이지만 대부분 1년마다 근로계약을 새로 맺으며 근속수당도 없는 실정이다. 하지만 인천공항 직원들의 친절도는 세계적이다. 기획재정부의 고객만족도 평가에서 인천공항공사는 최고 등급인 우수 평가를 받았다. 김 소장은 “언제 해고당할지 모르는 처지에서 오늘도 고객 앞에서 웃음과 친절을 팔고 있다”고 전했다. 고객만족경영은 이 같은 감정노동자들의 희생 위에서 쌓아올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감정노동자는 미스터리 쇼퍼와 같은 부당한 제도들로 인해 가중된 고통을 받고 있다. 미스터리 쇼퍼란 고객을 가장해 기업과 매장 직원들의 서비스나 상품지식 등을 평가하고 고객만족도를 조사하는 전문가를 뜻한다. 고객만족경영이 확산되면서 고객 입장에서 기업의 서비스를 평가하는 미스터리 쇼퍼의 역할이 커졌다. NC백화점은 미스터리 쇼퍼 제도를 이용해 매주 직원들의 화장·두발 상태, 인사 자세 등 약 90개 문항에 이르는 평가항목으로 직원을 감시했다. 미스터리 쇼퍼의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은 직원들은 사유서를 쓰고 특별 교육을 받았고 심한 경우에 해고를 당하기도 했다. 금융권에서는 미스터리 쇼퍼 제도가 매장 직원을 평가하는 방식이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며 제도를 폐지했지만 여전히 많은 업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많은 기업이 감정노동자에게 고객의 요구를 거부할 권리를 주지 않아 감정노동자들은 매번 곤욕을 겪는다. 콜센터의 텔레마케터에게 전화를 먼저 끊을 수 있는 권리를 주는 회사는 10%가 채 되지 않는다. 욕설·폭언·성희롱 민원만을 전화를 먼저 끊을 수 있는 악성 민원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설령 업무에 관련 없는 전화가 걸려온다 하더라도 먼저 전화를 끊을 수 없다. 또한 모든 직원들의 전화응대 상황, 전화를 먼저 끊었는지 여부는 모두 컴퓨터로 집계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비정규직의 비율이 높은 감정노동자는 회사의 명령을 거부할 경우 인사상 불이익을 당하기 쉽다.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감정노동자의 72.8%가 ‘고객의 폭언이나 성희롱에 고객응대를 거부할 수 있는 감정노동자의 권리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김 소장 또한 “비정규직과 계약직, 아웃소싱 인력들이 결국 고객인 우리의 접점이 되는 만큼 이들의 인권을 보호해주는 길이 기업의 이익이며 시대적 요구”라며 “이들을 내편으로 끌어들여야만 기업이 존속할 수 있다”며 감정노동 3권의 도입이 시급함을 밝혔다. 감정노동 3권은 △악성고객이 지속적으로 괴롭힐 때 그 자리를 피할 권리 △고객의 불만 접수에 일방적인 불이익을 받지 않을 권리 △회사의 방침에 대해 정당하게 설명할 권리이다. 김 소장은 “감정노동자가 부당한 고객의 요구를 거절하고 그 이유를 정당하게 설명할 수 있도록 회사가 방침을 정해 뒷받침해야 한다”며 “최소한의 인격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주시는 콜센터의 텔레마케터와 매장 판매원 등의 근로환경 개선과 인권보호를 위해 ‘전주시 감정노동자 보호 조례’를 마련했다. 조례는 △감정노동자 보호를 위한 정책목표 및 방안 △일터의 노동환경 개선 △인권보호 및 인식개선 등을 담았다. 전주시의회 백영규 의원은 “감정 노동자의 인권침해 사례가 점차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의 인권과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가 마련됐다”며 “빠른 시일 내에 정착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노동자의 대부분이 감정노동자인 상황이지만 그들의 고충과 민원을 해결해줄 국가공인기관과 집단이 전무하다. 감정노동 관리사 자격증은 작년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정식 등록됐다. 하지만 감정노동 관리사 자격증은 국가공인자격증이 아닌 민간자격증이라는 한계가 있다. 공기업과 일반기업은 민간자격증 소유자를 주로 채용하지 않기 때문에 기업 내에서 감정노동자들과 소통하며 치유해주기 힘들다. 소비자원의 조사에 따르면 기업 채용에서 민간자격증이 필수자격증과 우대자격증으로 포함된 채용건은 전체 31건 중 단 한건도 없었다. 김 소장은 “이제라도 감정노동 전문가를 국가적 차원에서 양성해야 할 것”이라며 “감정노동 전문가 양성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라고 전했다.

김 소장은 “고객만족이란 개념도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종업원을 존중해야 한다. 감정노동자란 결국 다른 사람이 아닌 내 가족이다. 나와 내 가족을 죽이는 ‘감정노동의 폭탄 돌리기’를 끊어내자”며 국가와 기업뿐 아니라 소비자들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전했다.


글·삽화_ 김도윤 기자 ehdbs7822@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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