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어떤 영역보다도 즉각적으로 정치적 상황에 반응한다. 풍자와 희화화를 통해 불합리한 상황을 비판하는 것이다. 지난달 27일 개막한 연극 <비선실세 순실이>도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의 국정 농단을 풍자와 희화화를 통해 비판한다.

실명 연극인 <비선실세 순실이>에서 주로 다뤄지는 극 중 인물은 비선실세 최순실과 그녀 주변의 사람들이다. 이 연극은 ‘청와대 언니(대통령)’의 든든한 후원만 믿고 나랏돈을 자신의 돈으로 여기며, 딸 ‘정유라’의 부정입학을 위해 온갖 조작과 로비, 매수를 행하는 ‘최순실’의 부정을 유머를 담아 풍자한다. 1막 ‘비밀의 방’과 2막 ‘최순실의 집’에는 최순실 일당의 범죄행위들이 나온다. 정치 관련 뉴스를 통해서만 접했던 이야기를 연극으로 보는 것은 관객들로 하여금 씁쓸한 웃음을 짓게 만든다. 1막과 2막에서 가장 초점이 되는 것은 이야기의 흐름이 아닌 인물의 성격이다. 국민들이 위임한 권력을 사유화하고 국민들을 우롱하면서 즐거워하는 그들의 내면을 바라봄으로써 관객들은 분노를 느낀다.

만약 국정 농단 가해자들이 사법부에 유죄 선고를 받아도 그들에 대한 증오심이 풀릴 수 있을까. 3막 ‘꿈속의 무대’에서는 이와 같은 근본적인 분노를 풀 수 있도록 국민들을 대신해 가해자들을 심판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무대는 ‘나국민’의 꿈이다. 나국민은 국정 농단을 주도한 대통령 및 일당들을 징벌하는 국민의 대리자이다. 나국민이 저승사자로 나오는 꿈속의 감옥에서 최순실 일당들은 죄수복을 입고 있다. 나국민은 그들의 죄를 나열하며 엄중한 처벌을 내린다. 심지어 최순실에게는 목줄을 걸곤 개처럼 짖게 한다. 최순실 일당들을 모조리 칼로 베어 죽이고 촛불을 극 중 배우들이 드는 것으로 연극은 막이 내린다. 이러한 ‘상상의 복수’는 현대사회의 모순에 지친 대중으로 하여금 통쾌함을 느끼게 한다. 싸이코패스 재벌, 부패한 정치인이 악역으로 등장해 민중적 영웅에 의해 벌을 받는 것은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연극 <비선실세 순실이>는 민중의 처벌을 더 잔인하고 극단적으로 표현한다. 절대적인 부를 가지고 있는 못된 소수의 권력과 그들에게 철저히 속은 국민. 드라마 같은 일이 현실로 벌어졌으니 말이다.

▲ 연극 <비선실세 순실이>에서 국민의 대리자 나국민이 최순실 일당에게 벌을 주고 있다.
연극 <비선실세 순실이>의 제작자 강철웅 씨는 “국정 농단을 저지른 권력자들에 대한 국민의 마음을 담은 통쾌한 복수를 하고 싶었다”며 “악은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기 때문에 역사 교훈극으로서의 <비선실세 순실이>를 상연함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문제의 심각성을 일깨우게 하고 싶었다”고 연극을 제작한 이유를 밝혔다.

그렇지만 연극을 기획하고 만들고 상연하는 일은 순탄치 않았다고 한다. 강 씨는 “지인 작가에게 작품 대본을 부탁했지만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거절을 당했다”며 “오디션에 응시한 배우들도 적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강 씨는 연극 대본을 직접 집필한 뒤, 극에 참여하려는 용기 있는 소수의 사람들과 함께 고군분투하면서 연극을 제작했다고 말했다.

강 씨는 “모 티켓 판매대행 사이트는 작품이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티켓 판매를 거절했다”고 전했다. 문화예술은 창작자가 주장하고 싶은 정치에 대한 견해를 다양한 표현방식으로 자유롭게 담을 수 있어야 한다. 작품이 정치적이라는 것은 문화와 정치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고려해볼 때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정치적인 색을 담았다는 이유로 작품이 상연되는 것을 거절하는 것은 아직 우리 문화계가 성숙한 단계에 와 있지 않다는 것을 방증한다.

문화예술은 그 당시 시대상황을 비추는 거울로서 작용한다. 문화예술가는 암울하고 권력에 의해 부패한 시대상황을 파악할 줄 아는 시선으로 여러 사회문제와 이슈를 꼬집어야 한다. 이렇듯 정치적으로 의도해서 문화계를 억압하려는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같은 일이 실제로 있었다는 점과,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일당이 구속됐음에도 문화를 위협하는 정치담론이 아직 남아있는 시대상황을 고려할 때 <비선실세 순실이>는 저항의 목소리를 내려 하는 그 자체로 우리에게 교훈이 되지 않을까.


오성묵 수습기자 sungmook123@uos.ac.kr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