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김구 선생의 말에 따르면 문화는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는 힘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창조 행위를 통해 남에게도 그 행복을 전달하는 것, 그로 말미암아 사회 전반이 행복 바이러스로 전염된다. 이를 위해서는 누구나 자유롭게 창작하고 표현할 수 있는 권리를 누려야 하고 국가는 이를 보장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문화 정신을 무시한 채 문화를 억압하려 한 사건이 우리나라에 있었다. 바로 ‘문화계 블랙리스트’ 이다.

문화계 블랙리스트란 정부가 박근혜 정권을 비판했던 일부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을 정부의 지원에서 배제하고자 만든 목록을 뜻한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문화예술인들은 광화문 광장에서 블랙리스트 작성과 관련된 책임자를 처벌하라는 시국선언과 더불어 ‘블랙리스트 예술가 캠핑촌’을 설치하기도 했다.

이렇듯 정부의 정책 기조에 반대하거나 정부를 비판한다고 지원금을 끊는 정부의 행위는 옳은 것일까. 또 과연 문화는 정치권력에 저항하고 비판하면 안 되는 것일까. 예술가들은 정치적인 행동을 취하면 안 되는 것일까. 이러한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문화의 속성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 촛불 집회 당시 국민들의 염원을 반영한 ‘광화문 구치소’ 퍼포먼스
사실 우리나라 역사를 돌이켜봤을 때 정권이나 정책에 저항했던 문화적 움직임들은 그리 낯선 것은 아니다. 일제강점기에 수많은 문인들이 일제의 억압과 횡포에 저항하고자 저항 소설과 저항 시를 썼다. 이렇듯 ‘저항문학’이라는 장르가 새로이 나타날 만큼 수많은 문인들은 일본제국주의를 향한 비판의 자세를 취했던 것이다. 이는 60~80년대의 독재정권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독재정권에 반대하고 민주주의 운동에 앞장서고자 ‘참여문학’, ‘민중문학’이라는 명명 하에 작품을 내놓은 문화인들도 많았다. 잘못된 정치권력을 비판하고 이를 바로잡고자 했던 노력은 우리의 문화사 속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외국의 상황은 어떨까. 미국에서는 60년대 미국, 소련의 냉전 속에서 이데올로기적 전쟁에 반발하는 ‘히피 문화’가 생겨났다. ‘히피’들은 기성세대에 반항하면서 평화와 사랑, 자유를 슬로건으로 반개발주의, 반전쟁 운동을 전개해냈다. 그들은 화려하고 독특한 복장을 입은 채 춤과 음악을 향유하는 개성적의 문화를 만들어 나갔다. 친환경 음식, 대규모 음악 페스티벌 등 오늘날에도 히피 문화의 유산들은 많이 남아 있다. 무엇보다 정치권력을 견제하면서도 이러한 견제행위 자체를 즐기는 히피 문화의 저항적 정신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작년 냉전 체제와 미국의 호전성을 비판한 저항의 아이콘, 가수 밥 딜런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것 또한 저항문화의 가치를 인정받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위의 예시들을 통해 지배담론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봤다. 이탈리아의 마르크스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는 ‘헤게모니 이론’을 통해 이러한 문화의 저항성을 설명했다. 헤게모니란 한 집단의 문화가 다른 집단의 문화를 지배하는 문화적 권력을 이르는 말이다. 현대 대중문화는 헤게모니로서의 지배문화와 피지배문화가 지속적으로 투쟁하는 장이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에는 성, 세대, 지역 등 다양한 계층들이 있고 이들은 자신들의 논리를 합리화하려는 지배문화와 이를 전복시키고자 저항하는 피지배문화 간의 갈등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를테면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유지하려하는 기성세대와 이러한 기성세대를 ‘꼰대’라 칭하며 비판하고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려하는 청소년 세대의 투쟁이 그러하다. 우리대학 철학과 서도식 교수는 “오늘날은 여러 계층들로 분화된 사회”라며 “그람시가 오늘날에 주는 시사점은 헤게모니에 의해 억압을 받고 있는 성소수자, 여성 등의 문화를 해석함과 동시에 억압을 향한 저항의 힘을 불어넣어줄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말했다. 이어 서 교수는 “사회에서 특정 헤게모니에 의해, 정치적 이유로 억압당하는 문화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사회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끊임없는 저항이 이뤄져야 한다”며 한 사회가 발전할 수 있는 동력을 얻기 위해서라도 문화적 다양성을 보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촛불 집회에서 만들어진 이재용, 박근혜를 풍자한 조형물
탄압도 창조의 원동력이 되는 생명의 문화

오늘날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통해 흥미로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문화가 자신을 억압하는 정치권력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저항하고 이를 희화화시킨다는 것이다. 지난 1월에는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기획으로 시국비판 풍자 전시회 ‘곧, 바이!(soon bye)’전이 열리기도 했다. 이 전시회에서는 프랑스 화가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를 패러디해 박근혜 전 대통령을 누드로 풍자한 ‘더러운 잠’이 전시됐다. 

촛불집회도 마찬가지다. 촛불집회에서는 박근혜 정권을 비판하고 탄핵을 촉구하는. 촛불집회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 등을 풍자하는 포스터들이 붙기도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진과 죄수복을 합성해 감옥 속에 구속돼 있는 조형물을 만들기도 했다. 심지어는 박 전 대통령의 조형물을 불태우는 퍼포먼스까지 이뤄졌다. 우리대학 철학과 서도식 교수는 “문화예술이 잘못된 정치권력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며 “이러한 행위들이 이뤄지고 현상들을 그 사회의 활력 지표로 봐야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학과 이동연 교수는 “우리가 블랙리스트 예술가라는 집단적 커밍아웃은 역설적이게도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고, 역으로 블랙리스트 명단에 실수로 포함되지 않은 예술가들에게 매우 심리적 스트레스를 주었다”며 “역설적이게도 블랙리스트라는 전제군주적 억압은 오히려 예술가들을 광장의 최전선에 서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문화 억압은 아이러니하게도 문화 억압을 풍자하고 비판하는 새로운 원동력이 됐다는 것이다.

“내 역할은 창조적인 기후를 조성하는 것이지 문화적 집권을 하는 것은 아니다.” 1971년 프랑스의 문화부 장관 자크 뒤아멜의 말이다. 자크 뒤아멜은 프랑스의 일류문화국가로 기여한 정치인으로 평가받는다. 이어 문화비평가 허민 씨는 「블랙리스트와 서명의 정치」를 통해 ‘문화의 역량은 필요한 제도적 원호와 더불어, 제도화 될 수 없는 부분에 대한 자율성을 인정해줄 때 비로소 창출될 수 있다’며 ‘문화의 발전을 말하기 전에, 관리와 통제에 불응하는 문화의 불온한 정수를 보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문화적 성취는 지배에 대한 저항에서 싹터왔다고 강조했다.

문화는 정부의 것도, 정치인의 것도 아니다. 문화는 국민과 예술가의 것이다. 정부의 문화부처는 예술가를 정책의 수혜자가 아닌 주체로서 존중하고 자유롭게 예술작품을 창작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줘야 한다.


국승인 기자 qkznlqjffp44@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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