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갓 지났다. 봄에서 여름으로 바뀌는 시기일 터인데, 벌써 한여름이 온 것 같다. 최고 기온이 30도가 가까이 되는 깜짝 더위 속에서 작년보다 조금 일찍 에어컨을 킨 교실의 풍경이 새삼 신기하다. 가정에서는 먼지가 쌓인 선풍기를 꺼내어 닦고 있을 것이다.

요사 부손은 유독 사계절을 사랑했던 고전 시인이었다. 그가 일본 전역을 돌아다니며 풍경을 묘사한 봄·여름·가을·겨울의 각 시들은 현대에서도 두루 사랑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뜨거운 여름에 걸맞은 시 한편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사랑하는 여인이 새하얀 부채를 부치고 있다. 부채의 새하얀 색에 시선을 뺏기지만 부채 끝으로 보이는 것은 님의 우아한 모습일 것이다. 군계일학. 아름다운 님을 보고 있으면서 화자는 속으로 흐뭇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보기 좋아라’라고.

선풍기조차 없었던 1700년대 에도시대는 그야말로 부채의 시대였다. 섬나라 일본의 여름은 더울 뿐만 아니라 매우 습하다. 모든 사람들은 꼭 부채를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색이 곱고 아름다운 무늬가 그려진 부채는 에도 ‘패셔니스타’의 필수품이었다. 일본의 유명한 고전소설인 『겐지모노가타리』에서도 주인공 히카루 겐지가 부채에 시를 써 사랑하는 무라사키 부인에게 전달해준다. 과거의 부채가 가지는 의미는 현대와 사뭇 다른 듯싶다. 부채를 아름답게 부치는 법도 전해졌다고 하니, 부채는 하나의 문화적 상징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현재는 부채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을 찾기 힘들다. 합리성을 추구하는 시대에서 부쳐야 팔만 아프고 별로 시원해지지도 않는 부채는 비효율적인 것이 돼버렸다. 그럼에도 부채를 들고 나가보는 것은 어떨까. 부채가 가지고 있는 운치와 멋은 아직 남아있을 테니까.

국승인 기자 qkznlqjffp44@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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