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우했던 재일 교포들의 삶을 가장 절절하게 느낄 수 있는 수단은 바로 그들의 문학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애환을 글로 적었다. 연구자들은 그들이 쓴 문학을 ‘재일 디아스포라 문학’이라고 부른다. 재일 디아스포라 문학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세대(중간 세대) 작가들부터다. 이회성이 재일 코리안 작가 중 최초로 아쿠타가와상을 받았으며 이양지, 김학영 등의 작가들도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재일 교포 2세대 문학은 각각의 개성을 지니지만, 그 심층 저변에는 자신들이 가진 정체성의 모순을 발견하고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보편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이승진 박사는 “이들은 머릿속에 자신이 재일 조선인이라는 의식이 있지만 현실에서는 ‘과연 재일 조선인이란 무엇인가’라는 끊임없는 갈등 양상을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관념으로서의 조국은 한반도에 있지만 그들의 현실은 일본의 땅을 밟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부조화 속에서 그들은 그들 나름의 타협점을 찾아간다.
약 100년 동안 추적된 재일 교포 문학 중 유명한 작품들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우리대학 중앙도서관 보존서고에 잠들어 있는 한 권의 책을 꺼냈다. 바로 유명 재일 교포 작가 ‘이양지’의 『해녀』이라는 단편 소설집이다. 그 안에서 수록된 『나비타령』은 일본에서 아쿠타가와상 후보로 선정될 만큼 작품성을 인정받은 바 있다.

주인공 아이코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재일 교포다. 부모는 10년 동안 이혼소송 중이다. 그는 자신의 부모에 환멸감을 느끼고 가출한다. 교토의 한 여관에서 종업원으로 취직한 그는, 다양한 군상의 인물들을 만난다. 그중에서 조선인 여성 ‘오지카’는 여관 주인에게 ‘조센징’이라는 말을 들으며 핍박당한다. 아이코에게 있어 ‘조센징’이라는 표현은 듣기만 해도 심장이 철렁거리는 단어다. 아이코는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조선인임을 들킬까봐 전전긍긍한다. 그렇게 조심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코는 결국 조선인임을 들키고 집으로 돌아간다. 

『나비타령』은 이양지의 자전적 소설이다. 이양지는 부모님의 이혼소송 중에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교토의 여관집에서 일을 한다. 그의 부모님은 일찍이 귀화해 그에게 조선에 관한 교육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밖에서 일본인들에게 ‘조센징’이라는 표현을 들으며 차별당했다. 이 박사는 이러한 지점에서 이양지가 특별한 위치에 있다고 말한다. 그는 “조선에 관한 가정에서의 인식 부재는 아이러니하게도 그에게 정체성의 혼란을 초래했다”며 “이것이 어렸을 때부터 가정에서 자신이 조선인임을 교육받으며 살아온 다른 재일 작가들과 다른 점”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부모가 모국에 대해 가르쳐주지 않은 것이 민족과 조국에 대한 궁금증으로 발전한 것이다.

 
결국 그는 ‘모국’을 직접 체험하기 위해 한국 유학을 결정한다. 그를 치유해 주는 것은 ‘가야금’이다. 『나비타령』에서도 마찬가지다. 집으로 돌아온 아이코는 여전히 진행 중인 부모의 이혼소송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술에 의존하게 된다. 더군다나 스무 살 차이나는 유부남 ‘마츠모토’와 외도를 저지른다. 큰 오빠가 혼수상태에 빠지고 작은 오빠의 죽음을 겪으면서 그의 혼란은 극에 달한다. 어지러운 그의 마음을 달래준 것은 가야금이다. 가야금을 켜고 있을 때마다 그의 마음은 모국의 소리로 가득 찬다. 그는 일본에서 찾지 못한 자신의 정체성을 한국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을 품고 유학을 결정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에서 그는 다시 차별을 당한다. ‘모국’을 찾아 한국에 왔지만 한국은 그를 밀어냈다. 어색한 발음은 판소리를 배우는데 장애물이 되고 한국인들은 그를 비웃기 일쑤다. 그는 일본에서도 이방인이지만 한국에서도 이방인이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어느 때보다도 편안하다.

『나비타령』은 재일 교포로서 겪는 정체성의 혼란을 묘사하는 데 치중한다. 결국 소설은 완전한 극복을 그리지는 못하고 가능성을 열어둔 채로 끝을 맺는다. 재일 교포는 일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사람들이지만, 결국 ‘모국’과 떨어질 수 없다. 『나비타령』 이후의 문학에서 이양지는 일본과 모국의 조율을 통해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모습을 보인다.

2세대 작가들은 나름의 타협점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하지만 결국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이 박사는 이에 대해 ‘한국이냐, 일본이냐’라는 이분법적인 시각 자체에 문제를 제기한다. 그는 “재일 디아스포라는 사실상 한국에도 일본에도 속할 수 없는 존재들”이라며 “국가와 민족이 근대적 개념이라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 근대적 개념들을 탈피하면 재일 교포들은 ‘디아스포라’ 안에서 있는 그대로 살아 숨쉬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양지의 작품은 한국인이냐 일본인이냐를 떠나 둘의 조율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자신을 받아들이고자 한 것에서 그 의의를 둘 수 있다. 결국 이들의 고민은 독자로 하여금 근대적 사고에서 탈피해 모든 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시사점을 주는 것이다.


국승인 기자 qkznlqjffp44@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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