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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쿠노에서 경계를 바라보다<코리아타운>
국승인 기자  |  qkznlqjffp44@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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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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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영토에 네 배에 달하는 일본이지만, 기자의 첫 행선지는 단숨에 정해졌다. 일본 오사카에 작은 한국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곳이 바로 ‘이쿠노 코리아타운’이다. 이쿠노 코리아타운은 약 100년 동안 재일 교포들이 정착해 살고 있는 재일 교포 밀집 지역이다. 

오사카의 츠루하시역에서 내리면 ‘KOREA TOWN’이라는 커다란 대문이 관광객들을 반긴다. 코리아타운에는, 한국의 식재료들을 파는 음식점과 불고기, 순두부 등을 파는 음식점이 즐비해있다. 일본에서 “김치”, “맛있어요! 드시고 가세요”라는 한국말을 들을 수 있는 신기한 곳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기자의 이목을 끈 것은 끊이지 않고 들려오는 한국 노래였다. 기자가 방문한 1월에는 아이돌 그룹 빅뱅의 ‘에라 모르겠다’가 상점가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최근에는 한류열풍이 불면서 K-pop 굿즈와 음반을 파는 매장들이 늘어나고 있다. 코리아타운에서 K-pop 매장을 운영하는 김호정 씨는 “이쿠노 코리아타운이 관광지로서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건 한류열풍부터였다”며 “한국인 관광객보다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일본인 관광객이 더 많다”고 설명했다.

신나는 K-pop이 들리고 관광객들도 많았지만 코리아타운은 전반적으로 개발이 되지 않은 지역이었다. 츠루하시역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것은 어두침침한 골목들로, 대도시인 오사카에서 보기 드물게 칙칙한 분위기를 띠는 곳이다. 코리아타운의 역사는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에 ‘히라노강’에 운하를 만들기 위해 징집되거나 자발적으로 온 한국인들이 모여 ‘이카이노(현재 이쿠노 지역) 집단촌’을 구성했다. 이후 해방이 되면서 조선인들은 하나둘씩 조국으로 돌아갔지만그곳을 떠나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이곳에 뿌리를 내린 뒤 약 100년 동안 조선인의 국적을 가진 채 혹은 일본에 귀화해 살아가고 있다. 

해방 이후 조국으로 돌아가지 않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해방 당시 한국을 임시 통치하고 있던 미국은 1000엔 이상의 돈을 들고서는 한국에 입국할 수 없다는 정책을 펼쳤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으로 건너간 대부분의 이유는 먹고살기 위해서였다. 일본에서 열심히 일해 번 돈을 한국으로 가져갈 수 없다는 것은 곧 경제적으로 불확실함을 의미했다.

또한 해방 이후 매우 불안정했던 한국의 정세도 재일 교포들의 발목을 붙잡았다. 급기야 제주도에서는 공산주의 체제를 옹호하는 자들을 처단한다는 명목으로 3만명 이상의 제주도민들을 학살하는 4·3사건이 일어났다. 이때 제주도민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배를 타고 오사카로 돌아와 숨어 지내게 됐다. 이처럼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 폭풍전야의 정세에서 재일 교포들은 좀처럼 한국으로 귀환할 수 없었다.     

이후 재일 교포들은 기피직종인 토목 공사, 돼지 사육, 고물상 등을 통해 근근이 생계를 이어나갔다. 이후 요식업을 통해 한국 전통 식재료들을 판매하고 현재 일본 내 인기 음식인 ‘야키니쿠(소고기 구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소소하게나마 부동산, 금융업을 지나 현재에는 한류열풍의 관광지가 된 것이다.

이처럼 현재의 코리아타운을 있게 한 것은 재일 조선인들의 고군분투였다. 재일 교포들은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끊임없이 소외돼왔다. 오사카를 가로지르는 강을 사이에 두고 나뉜 일본인과 조선인의 거주 지역은 차별의 증거다. 일본인은 재일 교포들과 섞이려 하지 않았다. 
   
   
 
   
▲ 이쿠노 코리아타운 안에 위치한 반찬가게, 다양한 한국 반찬을 팔고 있다. 인기가 많다
한국에도 일본에도 섞일 수 없는 경계인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재일 교포들은 밀집촌에서 벗어나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재일 교포들의 삶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일본인들과 섞여 살아도 그들은 지속적으로 차별당했다. 연구자들은 그들의 삶을 주목했는데, 이를 ‘재일 디아스포라’라고 부른다.

디아스포라란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이산 유대인’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산’이라는 이별과 분리의 단어는 유대인으로 한정 지을 수 없는 말이 되었다. 근대의 상처로 불리는 노예무역, 식민지배, 난민, 세계대전 등의 사건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이산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먹고 살아갈 희망이 보이지 않는 조국을 떠난 반강제적 이민도 디아스포라의 일부분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일제강점기의 상황에서 강제징집을 당하거나 먹고 살기 위해 일본으로 이주했다.

재일 교포들이 느끼는 고통은 일본인들의 차별만이 아니었다. 집에서는 조선인으로서 전통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밖에서는 일본어를 쓰고 일본식 교육을 받는 부조화 안에서 그들은 끊임없이 자기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 적을 둘 수 없는 정체성 부재는 신체적 괴롭힘보다도 더욱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그들은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속할 수 없는 ‘경계인’이다. 재일 교포들은 한국에서도 차별받는다. 1970년대에는 부산대학교로 유학 온 재일 교포들이 간첩단이라는 혐의를 받아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들은 모국에 대한 동경으로 한국어라도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바다를 건너 온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그들을 간첩단으로 만들며 이데올로기 정치의 희생양으로 삼았다. 그들은 약 40년이 지난 최근에야 무죄 선고를 받았다.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이승진 박사는 “재일 교포 중에 오히려 한국에 대해 적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며 “모국이라는 곳에서 자신들에게 자행한 간첩 조작 사건들은 재일 교포들에게 커다란 상처와 불신을 줬다”고 설명했다.

재일 디아스포라는 오늘날에도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현재 일본은 아베 정권에 들어와 강한 우경화 정책을 펼치고 있다. 특히 우익 단체들은 ‘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재특회)’이 결성했다. 이들은 재일 교포들이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페이크 뉴스를 만들어 일본에서 내쫓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일본인과 함께 100년을 살아온 재일 교포들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는다. ‘혐한’이라는 단어는 한국인이보다도 재일 교포들에게 칼날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한국은 재일 교포들의 입국을 지속적으로 불허하고 있다. 아직까지도 재일 교포들이 북한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명목으로 말이다. 이 박사는 “재일 디아스포라는 경계인으로서 한국과 일본 양쪽을 모두 비판할 수 있는 카운터컬처가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민족이라든지 국가라든지 하는 근대적 사고에 갇혀있는 오늘날의 한국과 일본에게 ‘너희 국가들은 대체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지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문화 사회로 변하면서 우리나라에도 곳곳에서 다른 민족, 인종에 대한 차별이 나타나고 있다. 디아스포라의 문제는 건전한 다문화 사회가 되기 위해 해결해야할 숙제와도 같다.


 글·사진_ 국승인 기자 qkznlqjffp44@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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